머리 말_1
  [프롤로그]

존경하는 바우형!

저녁놀이 서산에 비껴나가는가 하면 어느덧 샛별이 지고 종달새가 뜹니다. 만산홍록(滿山紅錄)이 2월화(二月花)를 이기는가 했더니, 어느새 가을바람에 그 잎이 떨어집니다.

천지를 하얗게 뒤덮는 눈이 내려 겨울인줄 알았더니, 금세 또 봄은 와서 새로운 잎으로 녹색을 풀어냅니다.  

바우 형, 그렇습니다!

만유(萬有)는 이처럼 문틈에서 바라본 번개처럼 신속한 유전(流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있어서 만유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처음과 끝이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바우형, 나는 어느덧 이 유전의 수레를 타고 더위잡아 지천명(知天命)의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동안에 겪어왔던 붉으락푸르락한 온갖 일이 지금 내 눈썹 끝에서 멀미가 나도록 그네를 뜁니다. 모든 것을 잃고 맨주먹으로 실의에 빠져 고궁의 돌각담을 타박타박 끼고 돌던 일이며, 용이 여의주를 얻은 듯 어깨로 바람을 끊으며 종로를 달리던 일이 지금은 똑같은 삶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저울에 달수 없는 그 낙망과 희망의 사연들이 오늘처럼 옛일을 돌이켜보는 밤이면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리움의 마음자리를 차지해온 바우 형!

보이지 않는 바람이 지나가도 자취가 남는 법인데, 어찌 유난히 파란만장(波瀾萬丈)하고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남다른 내 오십 평생에 자취가 없겠습니까? 바우 형, 나는 공직의 제복을 벗고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마다 경문왕(景文王) 때의 관장이를 떠올리곤 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일화 말입니다. 간약하게 내용을 간추려보기로 하겠습니다.

임금님의 관을 만들던 관장이는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구처럼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비밀이 새나갈까 봐서 임금님은 전임자를 모두 죽이곤 했는데, 결코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거듭 언약하면서 간청하는 바람에 관장이를 살려주게 되었습니다.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관장이는 남이 모르는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비밀을 독점하려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려고 하는 이율배반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입니다.

관장이가 임금님과 굳은 약속을 했는데도 결국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도림사(道林寺) 대숲을 향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이 이런 속성을 벗어날 수 없었던 까닭이겠지요. 사족(蛇足)이지만 관장이의 외침으로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임금님은 오히려 덕치(德治)를 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비밀은 이제 비밀로서의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자연히 임금님도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므로,
 
▲ 저자의 이름 판제(判濟)는 고향 마을 뒷산에 우뚝 선 이 고장 장군바위에 명을 팔았다는 뜻의 판자와 항렬(行列)로 지어졌다. 그래서 저자는 이 바위를 형이라 부른다

바우 형. 이제 내가 관장이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인용한 이유를 아시겠습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달리 희귀한 경험을 하면 그것을 사진이나 기록으로 남기거나 말로써 남에게 알리고 싶은 간절한 내심(內心)의 욕구가 일어나는 법이고, 사람마다 살아온 경험은 남다르고 특이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도 여러 빛깔의 의미로 주저리주저리 하고 얽히고 설킨 지나온 오십 평생의 역정을 글로 써보겠다는 욕심을 냈습니다. 이 책을 내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바우 형! 원래 회고록이나 자서전은 명성이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정치가나 기업가나 영웅호걸이나 학자나 예술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써내려가면서 주눅이 들어 몇 번이고 펜을 놓기도 했고, 나처럼 녹록(碌碌)한 둔재가 분수를 망각하고 당돌한 짓을 하는 것 같아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혹시라도 책을 읽게 될 사람들이 주제넘은 짓을 했다고 나무라기라도 한다면 우리나라의 과소비를 두고 아직은 때가 아닌데 한국인들은 샴페인을 터뜨린다며 외국 언론들이 비웃고 힐난하던 경우와 다를 바 없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우 형!

나는 이 책을 굳이 명사들의 회고록이나 자서전에 견줄 생각은 애당초 없었기에 끝까지 써낼 수가 없었습니다.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쓰는 유명인이나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습니까만, 이런 말을 들먹이는 것조차 나의 소심한 자격지심이 아닐런지요?

벽촌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그나마도 몰락한 가정환경을 탓하지 않고 한 장 한 장 바벨탑을 쌓아올리며 나름대로 꾸준히 인생을 계획하고 개척해온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도 지나온 삶의 기록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감히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적었습니다. 장자(莊子)도 쉰이 되어야 마흔아홉 살의 잘못을 안다고 했듯이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는 기회를 마련하여 여생을 더 풍부하게 살아가는 계기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책을 내는 둘째 이유입니다.

배움의 시기를 돌이켜 본 내용은 물론이려니와 공직생활의 기록까지도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정리하는 앨범이요 필름이므로 옛날 사관(史官)의 사초(史草)처럼 진솔하게 치부까지도 굴절 없이 적나라하게 엮으려고 애썼습니다. 결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고 자식들에게 애비의 살아온 내력을 진솔하게 밝혀두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것이 책을 내는 셋째이유입니다. 따라서 금석문(金石文)이나 주도문처럼 사실을 도장하거나 일부러 꾸미려고 분을 바를 수는 없습니다.
 
고향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불러보는 바우 형!

이런 계획아래, 특히 내 자식들에게 읽히려고 쓰는 책이라 내가 일찍이 어른들로부터 듣고, 독서를 통해 터득한 동서고금의 숱한 고사(故事)와 명구(名句)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만, 결코 현학적인 취미거나 박람강기(博覽强記)라는 영예를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오랜 시대와 많은 사람들로부터 걸러지고 선택된 인생의 철학이자 위대9한 진리이기에 좀 더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자는 뜻과 함께 오늘을 사는 우리 인생에 접목시켜보자는 의도였습니다. 말하자면 선형도 생활인이라는 것이지요.

바우 형! 백이숙제(伯夷叔齊)는 주나라 곡식을 안 먹겠다고 수양산(首陽山)에서 고사리를 캐먹다가 그 고사리도 주나라 고사리라는 말을 듣고는 굶어죽었답니다. 나는 펜을 놓으면서, 백이숙제처럼 그런 모자람이 있지 않을까 하여 두려움이 앞섭니다. 그러나 비록 노아의 홍수가 다시 오거나 소돔과 고모라의 불비가 또 다시 내린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는 저 스피노자처럼, 나도 인생의 바벨탑을 쌓는 일에 조금이라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렵니다.
 
1991년 가을에 이미 원고를 써두었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제 책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바우 형, 늘 감싸고 격려해주셨듯이 앞으로도 남은 인생에 촛불과 깃발이 될 수 있는 따스한 충언과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1993년 봄, 당신께 명을 판 판제 아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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