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활동과 진로에 대한 고민 (22회)
  제3장 추풍령 울고 넘은 청운의 뜻

2학년 때는 주ㆍ야간 통합 학생회의 총무부장이 되었고, YMCA의 소년부 ‘골드클럽’ 회장직을 맡았으며, 나중에는 YMCA 덕수상고 연합회 회장이 되었다. 이 연합회 주최로 ‘연예의 밤’을 성대리에 개최하기도 하고, 도봉산 다락원에서 전국 YMCA 소년부 캠프대회가 열렸을 때는 덕수상고 연합회 대표로 이 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특히 이 캠프대회에선 모의UN총회가 열렸는데 여기에 나가 우리 농촌도 덴마크의 농촌을 따라야 한다는 주제를 발표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 당시 유달영(柳達永) 선생이 덴마크의 농촌에 대해서 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기에 그 주제를 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내 평생을 따라다니던 역신은 내 이 광영을 시샘했던지 내게 세 번째로 큰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즐거운 캠프 생활의 마지막 날이었다. 먹음직스러운 참외파티가 열렸다. 과일에 굶주렸던 나는 게걸스럽게도 참외를 내 식도에다 너무 많이 공급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참외맛은 내 왕성한 식욕을 부채질했다. 

문제는 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그날 한밤중에 일어났다. 마치 날선 비수로 배안을 휘젓는 듯 동통(疼痛)이 일어났다. 마름 땀이 흐르며 입이 딱 벌려졌다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 못했다. 이 실랑이를 치자 이튿날 여의도의 공군병원에서 짚차가 나를 데리고 갔다. 

판명이 된 내 병명은 급성맹장염이었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조금만 더 늦었어도 맹장이 파열되어 사망했을 거라고 했다. 어처구니 없는 날벼락이었다. 객창(客窓)의 하늘이 이때처럼 서러운 적은 내 평생에 없었다. 수술비는 다행히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침 공군병원이어서 공군 정훈감실의 인쇄연락사무소에서 근무한 혜택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이 악몽의 해가 저물고 마침내 고3이 되었다. 앓던 이가 빠진 듯 지난해의 일을 돌아보기조차 역겨웠다. 생각만 해도 이에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시름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철이 지난 데는 풀도 안 난다더니, 청소년 시절엔 곰비임비로 달려드는 시련 때문에 어린 가슴은 늘 시름으로 충만했다. 인간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숙명적으로 벗지 못하는 시름의 노예인 것을 실감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중세 신화가 퍼뜩 머리에 떠올랐다.  
 
▲ 덕수상고 YMCA의 소년부 ‘골드클럽’ 회장으로서 연단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필자

옛날 근심걱정을 맡은 수정(愁精)이 어느 날 냇물을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수정은 강바닥에 어떤 물체가 하나 있어 건져보니 그것은 진흙구덩이였다. 수정은 그 진흙으로 어떤 물체를 만들었다. 그때 마침 영혼을 주재하는 주피터가 그곳을 지나갔다. 수정은 그 주피터에게 냇바닥에서 건져 만든 물체에게 영혼을 불어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주피터는 그 진흙덩이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 순간 진흙덩이의 그 물체는 하나의 생명체가 되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그 생명체의 이름을 뭐라 붙이느냐 였다. 수정과 주피터는 서로 제 이름을 붙여야겠다고 주장했다. 수정은 그 물체를 자기가 처음에 건져서 만들었으니 제 이름대로 해야겠다고 주장했다. 주피터는 주피터대로 자기가 그 물체에다 영혼을 불어넣었다며 제 이름대로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로 옳다며 옥신각신 했으나 결말을 내지는 못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토지신에게 가서 그 판결을 내려달라고 했다. 토지신은 천만 뜻밖에도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 진흙덩이는 원래 제 몸흙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니 제 이름대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빡빡 우겨댔다. 

수정과 주피터는 어이가 없었다. 마치 혹 떼러 갔다가 혹 하나 더 붙인 꼴이 되어 매우 실망했다. 수정과 주피터의 토지신은 한참을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하고 입씨름을 하다가 마침내 시간신(時間神)에게로 가서 최후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시간신은 그들의 주장을 다 듣고 나더니 실로 저 ‘다니엘’과 같은 명 판결을 내렸다. 

“너희들 주장을 잘 들었다. 지금부터 내가 공명정대하게 판결을 내릴 테니 잘 들어라. 알겠느냐? 
 이 물체는 토지신 네 말대로 분명 네 몸에서 떨어져 나간 흙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이 물체가 죽으면 토지신 네가 이 물체를 도로 받아 차지하라. 주피터 너에게 말하겠다. 너는 이 물체에다가 영혼을 불어넣어 주었으니 이 물체가 죽으면 그 영혼을 네가 도로 받아 가거라. 자 그러면 이 물체가 죽고 난 뒤의 처리가 해결이 다 된 셈이지? 그러나 이 물체가 살아있는 동안은 수정 네가 차지하라. 그리고 이 물체의 이름은 흙 즉, 휴머스(humus)라고 해라."
 
이 이야기에서처럼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은 근심걱정을 맡은 저 수정이 늘 차지하고 있어서 인간은 평생토록 근심걱정이 떠날 날이 없다. ‘휴머스’도 그 뒤 와전되어 ‘휴먼’은 곧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고3이 되어 찾아온 고민이나 근심걱정을 두고 늘 이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때 내가 고민하고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문제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졸업 후의 거취를 결정짓는 진학반과 취업반의 선택문제였다. 졸업 후 진학을 하느냐, 일선의 직업전선으로 나아가느냐가 문제였다. 확률은 2분의 1이었지만, 실로 나에게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였다. 

사양길에서 헤매고 있는 우리 집안을 저울질에 맞추면 해답은 응당 취업반으로 가야했다. 그러나 내 불타는 향학열에 저울추를 맞추면 단연 진학반이 두 손을 들고 환영했다. 나는 두 해답을 미결함에다 놓아둔 채 몸이 꺼칠하여 체중이 내리도록 고민했다. 어둡고 긴긴 터널 끝에서 한줄기 빛을 잡았다. 그 빛은 전광석화처럼 나를 몰고 갔다. 거기에는 진학반의 문이 있었다. 

“상고를 나와 기껏 은행에 취직하기 위해서 그 험난한 각고의 길을 걸어왔던가? 아니다. 눈을 떠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문을 두드려야 열리는 법이다. 대지(大地)를 품어라. 그러고 너의 바벨탑을 높이높이 쌓아가라.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 안 만큼의 하늘밖에 못 본다. 팔이 잘려야 할 판국에 피 한 두 방울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네 가슴에 고동치는 피의 뜨거움을 여기서 식게 할 수 없지 않느냐!”

이 중대사를 나 혼자 결정해놓고 부모의 의견을 물었더니, 천길만길 더 뛰었다. 취직을 하고도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야간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데, 하필이면 주간대학이냐는 것이었다. 반대에 부딪히자 국어사전에 있는 가장 적당한 말만 골라 끈덕지게 진언을 드렸다. 마침내 반승낙을 얻어냈다. 

일이 여기에 이르자 공군인쇄소 본부에서도 내 불타는 학구열에 감동했던지 가급적이면 일을 적게 시키고 덜어주었다. 그동안 학생활동 때문에 들떠 있던 분위기를 가라 앉히고 차분히 계획을 세워 책과 씨름했다. 내 자신의 확충은 물론 곁 사람들의 사랑과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스스로를 채찍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덕수상고 진학 (21회)
  고려대 상대 합격 (2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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