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늪에서 (35회)
  제5장 봉정만리의 여권을 쥐고

그녀는 거의 한 달에 두 번 정도 불고기와 부식을 싸와서 내 굶주린 식도에다가 기름칠을 해주었다. 가뜩이나 산사에서 사람이 그리운 법인데, 그것도 인연이 찾아왔으니 나는 정신이나 육체적으로 선도 높은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고적한 절에서 고시공부에 시달리는 나에게 군청색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찾아오는 그녀의 모습은 구원의 여신과도 같았다. 우리는 숲에 앉아서 미래의 꿈을 얘기하고 가끔 입맞춤을 나누며 애정을 확인했다. 

나는 효종의 북벌정책에 따라 승병의 총사령부 역할을 했다는 장경사 경내를 그녀와 거닐며 다음날의 활력을 충전했다. 게다가 첫사랑에 실패한 나는 사랑의 다리를 조심스레 건너야 한다고 안간힘을 쓰면서도, 그녀에게 내가 뒷날 떳떳이 설수 있는 길은 오직 고시 합격의 깃발을 잡는 길밖에 없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나는 경상계통을 전공했으므로 볍률과목에 대해서는 강의를 들어본 적이 없어 부득이 독학하는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읽고 법률사전을 찾고,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같이 공부하는 법률전공 수험생에게 묻고는 했다. 그러나 그 방대한 분량에 대한 처음 1회독으로는 땅띔도 못했고, 2회독을 해도 무어가 뭔지 아리송하기만 했다. 4, 5회독 때부터 비로소 자신이 붙기 시작했고, 진도가 가속이 되었다. 

이러는 가운데 마침내 시험일이 다가왔다. 시험 전날 나는 내가 대학시절에 공부하던 청량리 근처의 사설 법률연구원이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행정법의 예상문제를 30문제만 간추려 달라고 해서 그것을 손에 넣었다. 훑어보니 거의 내가 이미 대비해놓은 문제들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 ‘공물(公物)관리와 공물경찰’은 내가 등한시한 문제였다. 사실 이 문제는 해방 후 사법, 행정 두 시험 어디에도 출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이번에 출제될 확률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제를 시험당일 아침에 정신이 맑을 때 한번 쭉 훑어보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총복습을 하고 자리에 누웠으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경이 쓰여 잠이 오지 않았다. 옛날 문경서재를 넘어 과거를 보러 온 시골선비가 과거 전날 나와 같은 이런 불안 초조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는 둥 마는 둥 그날 밤을 보내고 마침내 운명의 그날을 맞이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어제 숙제로 돌려놓은 그 ‘공물관리와 공물경찰’에 대한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서 그런지 머릿 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주인집 코찔찔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울고불고 법석을 쳐 도저히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고시장으로 가서 그 문제의 마무리를 지으려고 일치감치 집을 나섰다. 하늘을 쳐다보니 무심한 듯 어제의 태양이 다시 솟아있고, 남산도 아랑곳없이 그대로 태연스럽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전투장으로 가는 병사처럼 마음이 태연할 수가 없었다. 

일찍이 배를 타러 바다로 나가는 어부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로 싸우러 나가는 전사는 두 번 기도한다고 들었다. 나는 그날 아침 고시장으로 가면서도 세 번, 네 번 기도했다. 나와 나의 가문이 볕을 보느냐 영영 어두운 그늘 속으로 가라앉느냐 하는, 실로 막중한 결전일이었다.

고시장에 닿자 이내 설사기가 있어서 화장실로 직행했다. 화장실 안에서 미루어 온 그 문제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려 했다. 예로부터 술에 취하면 화장실 벽토를 긁어 먹어 술이 깨게 했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암모니아는 자극력이 강해 인간의 잡념을 떨쳐버리기 때문에 머리가 가장 맑게 된다고들 했다. 그러나 화장실 안이 어두컴컴한데다가 마음이 조급하여 쭈욱 한 번 훑어보기는 했어도 도무지 머리에 들어온 것 같지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필이면 그렇게도 신경을 썼던 바로 그 문제가 두 번째 문제로 출제되었다. 참으로 운명의 여신이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는 듯이, 공교롭게도 그 문제가 출제되어 나는 적잖이 놀랐다. 첫 번째 문제는 충분한 준비가 있었던 문제였으나 두 번째 문제는 조금 전 화장실에서 한번 훑어보긴 했으나 설마 이 문제가 나오랴 싶어, 건성으로 읽었기에 자신이 없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작문을 짓는 식으로 답안을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 연애시절의 아내와

여러 사람들이 시험이란 시운(試運)이 따라야 한다더니, 이렇게도 예상문제가 적중되었는데도 이것을 제대로 살려서 빛을 내지 못했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나는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동양사상을 오래도록 지배해왔던 저 주역사상 또한 완전히 거부하지 않는다. 나의 이런 상황을 두고, 시운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구나 하고 푸념하기도 했다. 시험이 끝난 뒤 다른 과목에 대한 기대도 있고 해서 다소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으나 낙방이었다. 이른바 미역국을 마신 것이다. 

대체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고등고시는 평균 60점 이상이면 합격인데, 그때 내 성적이 59.25였다고 했다. 불과 평균 0.75점만 더 땄으면 간신히나마 합격될 수 있었는데 아쉽게 낙방이 되고 말았다. 

속설에 “놓친 고기가 크다”란 말이 있지만, 이때의 실망은 엄청나게도 컸다. 모든 것이 나와는 다 무관한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다 나를 날카로운 송곳으로 마구 찌르는 것만 같았다. 고진감래라는 신화가 와르르 무너지는 그 역겨운 소리를 들었다. 천하를 내게 준다고 해도 나는 엄청난 좌절감과 자기혐오증 때문에 눈썹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희랍의 비관시인들이 “우리 인생의 제1의 행복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요, 제2의 행복은 가급적 빨리 죽는 것”이라고 한 말이 큰 열풍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좌절과 실의는 다행스럽게도 쉬 조섭(調攝)이 되었다. 그 기폭제가 된 것은 “인생은 현실이요, 진지한 것이지 묘지가 인생의 목표는 결코 아니다”고 한 롱펠로우의 인생 송가였다. 내가 일찍이 배웠던 맹모의 단기지계(斷機之戒)나 한석봉 어머니의 가래떡 이야기도 기폭제가 되었다.

맹자가 어릴 때 객지로 나가 공부하다가 어머니와 집이 그리워서 학업을 중도에서 폐하고 돌아왔다. 그때 맹모는 마침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었다. 맹자로부터 돌아온 사유를 듣자 맹모는 가위로 짜던 베를 싹둑 잘라 아무짝에도 못쓰게 해버렸다. 그러고는 학업을 중도에서 폐하는 것도 이 베를 다 짜지 않고 지금 잘라버린 것처럼 아무 쓸모가 없다고 슬기롭게 타일렀다. 

맹자는 어머니의 그 깊은 뜻을 깨치고 다시 공부하던 곳으로 되돌아가 학업에 더욱 열중하여 마침내 천하의 이름난 학자가 되었다.

한석봉도 어릴 때 절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학업을 중도에서 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떡장수인 어머니는 그때 마침 가래떡을 썰고 있었다. 석봉이 돌아온 연유를 들은 석봉의 어머니는 갑자기 방안의 불을 껐다. 그러고는 석봉에게 지금까지 공부한 글 중 어느 것이든 외워 쓰라고 지필묵을 내어밀었다. 동시에 가래떡을 썰기 시작했다. 이윽고 석봉의 어머니는 불을 다시 켰다. 그러고는 석봉이 써 놓은 글자를 한 자 한 자 점검했다.

“이것 보아라. 네가 쓴 글씨는 고르지 못하구나. 혹은 크게 혹은 작게 썼지 않느냐. 이 에미가 썬 가래떡을 보아라. 불을 켜 놓고 썬 떡 조각이나 불을 끄고 썬 떡 조각이나 꼭 같지 않느냐. 석봉아, 네 공부는 아직도 멀었다. 다시 되돌아가서 열심히 글씨 공부를 해라. 중도에서 폐하면 아니함만 같지 못하느니라.”

이 말을 듣고 석봉은 크게 뉘우치고 다시 절로 되돌아갔다. 더더욱 글씨 공부에 힘써 마침내 천하의 명필이 되었다.

 
  고등고시의 길 (34회)
  아버님의 작고(作故) (3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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