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이룬 고시의 꿈 (39회)
  제5장 봉정만리의 여권을 쥐고

마침내 시험이 있는 4월이 왔다. 시인 엘리어트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지만 나는 이 4월이 꽃피는 화사한 4월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시험장으로 갔다. 온 가족 특히 내자의 그날 아침의 눈빛이 내게 큰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워낙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나는 그 무언의 뜻을 눈빛에서 능히 읽을 수 있었다. 

시험을 다 마치고 고사장을 떠나는 날, 하늘을 바라보며 후우 한숨을 내어쉬었다. 어깨가 착 까부러지며 맥이 탁 풀렸다. 이 시험을 위해서 기창처럼 뛰어온 고생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망하지는 않았다. 시험의 결과를 어느 정도 낙관할 수도 있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인사대천명! 이제 5월의 그 발표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확률은 반반이지만 두 번 다시 낙방이란 어두운 골짜기를 생각하기 싫었다. 그럴수록 그 한 달이 너무나도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느껴졌다. 한 달이란 시간은 어느 때나 정확한데도 사람에 따라선 그 한 달이 황소걸음이 되기도 하고, 쏜살같이 흐리기도 하는 법임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겐 그 한 달이 지겹도록 마냥 길기만 했다. 

그 동안에 여러 번 꿈을 꾸었다. 어느 때는 돌아가신 이승만 박사와 비행선을 타고 안개가 자욱한 바다 위를 몇 바퀴 돌기도 했다. 어떤 때는 합격통지서를 받기도 했고, 점수까지 꿈에 나타나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꿈은 그 사람의 잠재의식이 자고 있는 사이에 폭발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이 프로이드의 꿈 분석은 “마음에 있으면 꿈에도 나타난다”는 우리네 해석과도 맥을 같이한다. 즉 어떤 일을 골똘히 생각하느라 신경을 쓰게 되면 그 일이 곧잘 꿈에 나타난다는 이야기이다. 프로이드적으로 그때의 내 꿈이 왜 그렇게 꾸어졌느냐를 살펴보면, 그만큼 내가 그때 시험 결과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내 5월! 라일락이 향그러운 향기를 날리고 붓꽃이 다투어 피는 5월이 왔다. 계절의 여왕답게 일기는 이 땅에 화창한 날씨를 보여주었다. 발표 전날이 되었다. 꼭 송곳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불안과 초조가 전신의 신경 구석구석까지 곤두섰다.

견디다 못해 총무처 고시과에 찾아갔다. 원서 접수 때 낯이 익은 분에게 시험 당락을 미리 좀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분은 나더러 복도에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퍽 고마운 친절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얼굴이 달아오르며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합격’ ‘실패’는 그 확률이 반반이지만 그 결과를 기다리는 마음은 언도 재판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매우 긴장되었다. 입김을 불어넣는 고무풍선이 터지느냐 안 터지느냐 하는 그 한계점에 있는 듯 한 그런 절대적인 순간이었다. 

몇 분이 지났는지 몇 시간이 지났는지 가늠도 못한 채 다시 그분이 얼굴을 내밀 도어만 응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그분이 문을 열고 나왔다. 나의 눈은 얼음 위에 넘어진 황소 눈처럼 화들짝 열렸다. 그 분은 웃으며 내게로 다가오더니 내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축하합니다. 합격입니다.”
“예?”
“합격이라니까요!”

이 소리를 확인하자 내 가슴은 터질 듯이 풀무질을 했다. 그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기가 무섭게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발부리가 어디에 닿는지조차 몰랐다.

“아, 드디어 해냈구나!”

한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마다에 그 기쁨을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큰소리로 ‘합격’이라고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 감격의 시간이 지나자 이상하리만큼 담담해졌다.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렸던 합격소식이었건만, 만약 떨어졌다면 엄청난 절망이었을 테지만, 막상 합격되었다고 하니 기쁜 반면에 맥이 탁 풀리는 듯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 나는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쓴 <시지프스의 신화>의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느님을 욕한 시지프가 천벌을 받아 큰 바위덩이를 혼신의 힘을 다해 산비탈을 밀고 올라간다. 그 바위가 어떻게나 크고 무겁던지 조금만 힘을 빼도 그 바위에 깔려 죽을 지경이다. 그는 이 고된 천벌 끝에 정상에 닿았을 때 다 올라왔다는 행복감이 아니라 이제는 더 오를 곳이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고 만다. 행복을 오히려 산비탈을 밀고 오르던 그 고되고도 지겨운 작업 속에 있었다고 깨닫는다. 마치 운동회는 기다리는 때가 행복하지, 막상 운동회를 마친 그날 밤은 허탈감이 인다는 그의 심정과 통한다. 
 
▲ 신혼 시절 아내와

나는 이 시지프식 엄청난 부조리 사상을 그때 느꼈음에 틀림없다. 어떻든 이 합격소식을 어느 누구보다도 맨 먼저 알려야 할 곳이 있었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내자한테였다. 부랴부랴 택시를 불러 타고 남가좌동 집으로 쏜살같이 달렸다. 

‘참으로 기뻐할 거야. 내 시험 뒷바라지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결혼 전에는 내 사기와 건강을 위해 그 가파른 남한산성의 장경사엘 드나들었고, 결혼 후에는 신혼의 감격과 행복감이 채 고물도 묻기 전에 막을 내렸다. 실업자가 되어 기약도 없는 고시준비를 한답시고 고등 룸펜이 되어 버린 나를 보고, 겉으론 일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의 그 고통이 오죽했을까. 신부로서 깨가 쏟아지는 아기자기한 맛도 잠깐이었으니 친정 식구들과 주변 친구들에겐들 얼마나 자존심이 꺾이고 면목이 없었을까. 그 모든 고통과 고난을 참고 견딘, 그 인고의 세월 끝이라, 이 합격으로 인한 보람 또한 그만큼 크지 않겠는가. 나의 고시합격증은 그녀의 것이다. 암, 분명히 그것은 내 내자의 것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택시는 이미 집에 당도했다.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기가 무섭게, “합격했어!” 하고 내자에게 큰 소리쳤다. 그녀는 내 호들갑스런 소리를 듣고도 한동안 그저 얼얼해 서 있더니, 와락 내 목을 끌어안고 매달리며 울었다. 

“아니, 내 내자에게 이런 일도 있었나?”

사실 그러했다 .지금까지 50년, 한 하늘을 이고 같이 살아왔지만, 이 같은 인간적인 기쁨과 감격의 원초적 표현은 그녀에게서부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고뇌와 고통의 회오리 속에서, 합격의 기쁨이 함께 얽힌 뜨거운 폭발음이었으리라. 잘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집어던지고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으니 이제는 더 물러설 데도 없다는 그 절박한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내자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32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동생과 두 명의 시누이를 모두 가르치고 결혼시키면서 맏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였다. 직계로는 손자 5명, 손녀 5명 해서 10명의 손주와 박사를 6명이 배출했고 미국서 공부하는 외손녀는 오바마 대통령까지 수상하는 등 풍성한 집안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으니 그 지혜로움과 헌신에 대한 감사를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내자는 어지간해서 화를 내는 법이 없었다. 주로 성질 급한 내가 소리 지르고 집을 나와 버리는 식이었다. 귀가할 때 혹 내자가 친정으로 가버리지나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들어가 보면 내자는 따뜻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망이라도 가는 줄 알고 마음 졸였다”는 내 말에 내자는 “내가 좋아서 한 결혼인데 무슨 면목으로 친정에 가겠느냐”고 응답한다. 그녀는 내가 속 좁고, 같은 말 되풀이 하고, 무례하게 마음대로 하는 성격이라며, 나에 대한 비난은 딱 세 마디였다. “밴댕이 콧구멍 같은 소갈딱지”, “청개구리”, “비례물시(非禮勿視)”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남편이 의도적 실수나 장난할 수 있는 곳은 단 한곳 내자밖에 없다”는 것을. 

내자는 그러면서도 항상 나를 신뢰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남편에 묵묵히 헌신해주었다. 젋었을 때는 멋모르고 지났지만 50년을 같이 한 지금 생각해보면 “내자 이수자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도 없었다”는 것이 변함없는 확고한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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