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말_2
  [프롤로그]

다시 바우 형!

스물 세 해만에 다시 형을 부릅니다. 쉰 넷의 나이로 회고록을 쓰면서 조금은 장황하게 쓰는 심경을 바우 형께 솔직하게 고백했었지요. 회고록을 내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에 회고록을 펴고자 하는 심정을 설명하느라 많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고도 결국은 그때 책을 내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내 게으름 탓이었겠지만, 책을 내지 못한 이유가 없진 않았습니다. 그때 내 인생의 중요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었거든요.

바우 형도 이제 알다시피 나는 그때 두 번에 걸쳐 무소속 국회의원이라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하고 간발의 차이였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그 도전에 실패한 것이 조금도 억울하거나 아쉽지는 않습니다. 그때 내가 그 도전에 실패했기 때문에 더 나은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었고, 더 보람된 성취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하나님이 내게 큰 복을 주시려고 국회의원직을 수락하지 않았나 봅니다.

바우 형. 

새천년 21세기를 코앞에 둔 1999년 내가 국제디자인대학원 대학교 학장을 맡게 된 것은 내 일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어요. 국회의원을 몇 번 한다 해도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아닐 것이라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때 내 나이 만 60세, 말하자면 환갑이 되는 해였지요. IDAS(Intellect and Design as Assets for future Society) 나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기업과 정부, 그리고 우리 사회 모든 리더들에게 알리는 것이 하늘이 내게 맡겨준 숙명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뒤로 5년 동안 나는 디자인 전도사가 되어 땀과 열정을 모두 쏟아 부으며 뛰어다녔습니다.

돌아보면, 일을 통해 이룬 내 인생의 세 가지 큰 성취와 보람 중의 하나를 그때 이뤘습니다.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조정하는 주역으로서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마련했던 것, 환경보전을 국가경영의 핵심과제로 올려놓고 우리나라 환경기반을 구축했던 일, 그리고 21세기 새로운 변혁을 앞서나가기 위한 핵심적인 국가전략으로 디자인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리더들에게 전파했던 일, 이 세 가지 중 앞의 두 가지는 공직자로서 이룬 성취였지만, 마지막 것은 내가 공직을 떠난 후에 이뤘습니다.

바우 형. 생각해보세요.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수많은 기업의 CEO가 IDAS의 리더 과정을 거친 내 제자들이예요. 그냥 생각만 해도 마음이 뿌듯하지 않겠어요? 내가 국회의원이 되었다 해도 그런 보람을 어떻게 느낄 수 있겠어요?

바우 형.

이렇듯 도전과 실패 그리고 또 다른 성취를 맛보며, 비록 공직을 떠났지만 더 바빴던 10년을 지내니 내 나이도 60대 중반이 되었지요. 덕분에 내 자서전에는 추가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예순 다섯. 이제는 더 풍성하고 알찬 내용으로 회고록을 낼 수 있었겠지만 발간은 더 미루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내 인생의 후반부를 빈 칸으로 남겨놓은 회고록을 내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겨났지요. 그래서 나는 후반부 회고록을 채울 새로운 도전을 또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때 이미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10년은 더 스스로에게 보람되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는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거든요. 나는 그때도 여전히 예전 공직자 시절과 똑같이 매일 출퇴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이면 거실에서 서재로, 퇴근 시간이 되면 서재에서 거실로 출퇴근을 했지요.

서재로 출근하면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까지 못 읽었던 고전도 많이 읽었고 이미 오래전에 읽어보았던 책을 다시 읽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었지요. 그런 책들을 부지런히 읽으면서 다가오는 미래사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내 일과였습니다.

이제 곧 고희를 넘어설 내가 남은 열정을 위해 어디에 쏟아 부어야 하는가? 그 해답을 찾는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 출판기념회에서

바우 형.

진솔하게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과한 욕심으로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립니다. 나는 그때 내 스스로를 진솔하게 돌아봤습니다. 나도 예전의 팔팔했던 청년 박판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IDAS운동을 펼쳐나갈 당시의 신체 건강한 60대로 아니라는 것을, 서글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일흔이 된 내게도 다시 속으로부터의 남은 일정을 끌어올려 시작할 만한 보람된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NGO활동, 즉 시민운동이었습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며 세계는 정말 광속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과학과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제도, 문화 이런 SOFT한 부문까지도 광속으로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제도, 문화는 망할 것이고, 그런 제도와 문화를 유지하는 나라도 결국은 망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미래를 한발 앞서 내다보고 한발 앞서 변화를 선도해가는 나라와 기업과 개인은 흥할 것이라는 것이 IDAS 운동을 펼칠 때부터 가졌던 내 확고한 신념이었습니다.

바우 형.

중국의 광저우에 가면 손중산(손문)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서 오래전 인상 깊게 읽었던 손문 선생의 친필이 생각납니다. “世界潮流 浩浩蕩蕩 順之卽昌 逆之卽亡” 세계의 물결은 도도하게 흐른다. 이를 따르는 자는 번창할 것이고, 거스르는 자는 망할 것이다. 나는 21세기 광속으로 변화하는 세계사의 조류 속에 ’디자인‘이라는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확신했기에 디자인 전도사로 4년의 세월을 신명나고 보람되게 보냈었습니다. 또 다른 키워드를 본 것이 바로 ’시민운동‘이었습니다.

아! 세상의 중심이 정부에서 기업으로, 기업에서 시민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을 나는 서재에서 알아챘습니다. 2010년이 다가오면서 그 전까지는 매우 낮 설었던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새로운 용어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잖아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고 민주 진영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거버넌스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지요. 나라를 경영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은 통치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지요.

정부가 기업경영방식을 도입하자고 했던 20세기 말의 국가경영방식도 여전히 통치에서는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데, 이제는 통치가 아니라 협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이지요. 국가를 함께 경영한다는 것, 이제 더 이상 시민단체는 국가경영의 참견자, 조언자가 아니라 공동운영자로 새롭게 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런 방향에서 세계가 빠르게 변해가고 있어요.

바우 형.

내가 서재에서 그것을 깨달은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일흔이 넘어도 여든까지는 내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보람되게 우리나라의 변화를 선도하는데 기여할 일거리를 찾았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내 회고록의 마지막 부분을 채우게 되었지요.

바우 형.

처음 형을 부르며 회고록을 내겠다고 고백한 지 2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이 회고록이 나오게 되는 곡절을 이제는 아시겠지요. 나는 그 세월의 길이에 부끄럽지 않을 여러 이야기를 이 회고록에 새롭게 넣었습니다. 공직을 떠난 이후의 23년간의 또 다른 도전과 성취, 보람에 관한 것이지요.

일제치하에서 태어난 어린 시절 광복과 전쟁을 경험하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도 가장 가난했던 고학생이 대한민국의 고도성장을 이끌던 경제관료로서, 환경과 디자인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과제로 인식시키는 전도사로, 그리고 시민운동가로 쉴 틈 없이 달려온 80년의 내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오늘을 살며 내일의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가야할 젊은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바우 형.

나는 드디어 회고록을 발간하지만, 그래도 남아있을 내 인생의 마지막 후반부를 빈칸으로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또 한권의 회고록을 낼 수는 없다 하더라도 도전과 성취, 보람으로 일관해온 내 삶의 의지를 육체의 쇠락함이 막을 수는 없을 겁니다. 앞으로도 나를 응원해주시겠지요? 기왕이면 열렬하게! “박판제 파이팅!” 외쳐주시겠지요?

2016년 11월
박판제 올림
 

 
5년 전에 쓴 이 회고록이 2021년 히스토리스의 지면에 연재되게 되어 보다 많은 분들과 나의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다시 한번 지난날을 돌아보며 독자들과의 공감대를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머리 말_1
  고고의 울음소리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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