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27회)
  제4장 청춘의 편린들

나의 대학생활은 엄격한 학업제일주의의 기치 아래서도 낭만과 정치의 도야도 외면할 수 없었다. 

기계공장을 가보았는가? 톱니바퀴가 귀를 찢는 마찰음을 내면서도 서로 악 물고 도는 기계공장을 가보았는가? 톱니바퀴의 속도에 회전이 가해지면 금속성은 더욱 예리해지고, 열이 생겨 마침내 그 톱니바퀴가 타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때 그 톱니바퀴에 윤활유를 쳐주면 그 따가운 소리도 멎고 그 톱니바퀴는 부드럽게 잘 돌아 화재는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우리 인생사도 꼭 이와 같다. 이성만 앞세우다 보면 그 이성은 얼음가루만 날리고, 모든 것이 삭막하여 경직되게 만든다. 그러나 이 만물이 얼어붙은 빙토에 감성이란 봄바람이 가미되면 얼음은 녹고 새싹은 땅을 뚫고 나와 향기로운 꽃을 피울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이성이란 주식만 먹고 살수 없다. 때로는 삭막한 우리 인생사를 달래고 감싸주는 감성이나 정서란 부식도 먹어야 한다. 칸트(Kant, Immanuel)는 일찍이 우리 인간을 이중인격자라고 말했다. 우리 인간은 때로는 이성으로 살고, 때로는 감정으로 사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튼 이 논리는 음양의 이원설과도 통한다. 음과 양은 서로 배타적인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잘 조화되고 화동(和同)이 될 때 인간은 행복해진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이 이치를 모른다. 그들은 헤겔의 변증법을 맹신한 나머지 ‘정(正)과 반(反)은 항상 다른 한쪽을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 변증법을 ‘부정논리’, ‘모순논리’라고도 한다. 그 결과 서구인은 궁극에 가서는 남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을 위한 이기주의자요 개인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우리 동양인을 보라. 우리는 아득한 상고 때부터 음양설과 오행설을 믿어 항상 ‘나’와 ‘너’가 공존하는 이른바 ‘우리’라는 ‘궁합’의 세계를 이룬다. 그러기에 우리 동양인은 항상 ‘나’와 ‘너’보다도 ‘우리’를 더 소중히 여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우리’를 평소에 너무 찾다보니 이런 어거지 말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내 마누라’라고 해야 한다. 이 말은 분명히 잘못된 말이다. ‘우리’를 평소에 너무 찾다보니 이런 어거지 말까지 생기게 된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내 마누라’라고 해야 한다.

아무튼 나의 대학생활도 진리추구란 ‘이성’만 고집하지 않고 ‘감정’의 세계에도 내 정신은 안배되어 있었다. 그런 단적인 예가 나의 소위 ‘사랑행각’사건이다. 나도 동물이요 자웅동체가 아니기 때문에 어찌 이성에의 그리움이 없겠는가! 

옛날 중국의 춘추(春秋) 노(魯)나라 시대에 류하혜(柳下惠)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하룻밤은 미인과 버드나무 아래에서 함께 보내면서도 미인의 손끝 하나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성인 중의 성인이라고 한단다. 그러나 나 같은 우수마발(牛溲馬勃) 따위야 사춘기의 여드름이 어찌 솟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웅동체가 아닌 이상 이성이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나는 감히 이 지면을 빌어 첫사랑이었던 사랑의 행각을 스스럼없이 피력하여 후진들에게 우리시대의 대학캠퍼스에서의 남녀 학생 간의 애틋한 연애관에 대한 분위기를 남겨주고자 한다. 

1학년 때 등록금을 내기 위해 창구 앞에 줄을 서 있었다. 17번째였다. 그런데 내 앞 15번째에 묘령의 여대생이 서 있었다. 그 여대생이 진흙 속에 핀 연꽃처럼 내 한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삼단같이 치렁치렁 늘어뜨린 미인이었다. 아미(蛾眉)가 반달처럼 수려하고, 귀가 갸름하고 코가 동산처럼 도도록한데다가, 이빨이 가지런하며 얼굴은 백도처럼 희고 아름다웠다. 

나는 주변 친구들에게 속삭이듯 선언했다. 
“쟤는 내꺼야. 누구든 손대면 죽어.” 하고 주먹을 힘차게 휘둘러 보였다. 

▲ 고려대학 시절 학우들과 / 뒤에서 2번째줄 오른쪽에서 2번째가 필자이다

나는 첫눈에 이 여대생의 미색에 노예가 되어버렸다. 오작교를 거닐던 성춘향이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유리구두를 신은 신데렐라가 저렇게 아름다웠을까! 나는 그날부터 그 여대생의 환영을 좇으며 낭만의 궁전에서 살았다. 백화가 다투어 피는 화원의 궁중 후원을, 그녀의 사전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만 골라 주고받으며 거닐었다. 별나라 이야기와 용궁이야기와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로 밤을 세웠다. 

꿈속에선 그녀와 열 두 간 기와집을 짓고, 일곱 빛깔 무지개를 타고 보석을 뿌렸다.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착한 것들이 다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같은 과라 그녀와 눈길이 마주치면 나의 전 신경은 막대기처럼 경직되었다. 

나는 글방을 뛰쳐나간 이몽룡처럼, 높은 담을 뛰어넘은 로미오처럼, 그녀를 만나고 싶다고 용기를 내어 미팅을 여러 번 신청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시간이 없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아름답다는 아름다운 말만 다 골라 일방통행의 미팅신청의 장밋빛 편지를 내어놓고 약속장소에 나가 죽치고 앉아 있기도 했다. 그러나 두 시간을 기다려도, 세 시간을 기다려도 그녀는 나와 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미생(尾生)의 고사를 생각했다. 

“미생은 연인을 어느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 다리 밑은 조수가 드나드는 곳이었다. 연인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그때 밀물로 물이 불기 시작했다. 미생은 연인과의 약속장소를 임의로 옮길 수는 없다고 하고 그 자리에 그냥 버티고 서 있었다. 물은 차차 미생의 정강이를 묻고, 가슴을 묻고, 마침내 코를 넘게 되었으며 미생은 빠져죽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나오지 않으면 않을수록 바작바작 입술이 탔다. 그녀에의 사모의 정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기류를 탔다. 공부를 하는 시간 이외엔 늘 그녀를 연모했다. 그러나 그녀의 돈단무심(頓斷無心)한 태도로 모든 만물이 일시에 회색으로 보였다. 저마다의 색채를 잃고 그저 희부옇게 회색으로 보였다. 학교 뒷산의 싱그러운 새 소리도 하찮게 떠드는 소리로 들리고, 교정 언덕에 흐드러지게 핀 꽃 들도 독기를 뿜어내는 독초로만 보였다. 

버선짝이라면 속까지 헤딱 뒤집어서 보일 수도 있으련만, 나의 뜨거운 사랑을 그녀에게 보일 수 없는 것만이 못내 안타까웠다.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가 즐겨서 내게로 무너져 오는 그 황홀한 그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설사 그 날이 멀다 해도 그 인고의 날을 큰 희망으로 이겨나가기로 했다. 사랑의 길을 입구에서만 보면 짧고도 짧은 것. 

“그렇다! 최후의 승리자가 승리하는 법이다. 나는 언제나 나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녀가 방울소리 울리며 사두마차를 타고 내 문안에 들어서기를 기다리자. 그러자면 나도 그녀를 위해 말을 차비해야 한다. 황금마차를 꾸미고, 영롱한 보석상자를 마련해 그녀를 기다리자!”

나는 다시 학업제일주의의 메거폰을 잡았다. 이것만이 그녀를 끌어들이는 강한 자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같은 과라 그녀와 한 강의실에서 함께 있다는 것만도 수양산 그늘이 될수 있다고 생각했다. 연모의 지극한 사랑은 내 가슴 한구석에 꼬깃꼬깃 접어두고, 한 학우로서 그녀를 대했다. 그녀도 그것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가할 때나 아름답고 좋은 일을 당할 때마다 문득문득 접어두었던 그녀에의 연모의 정은 소스라치며 내 눈썹 앞에서 그네를 뛰었다. 내 인고의 세월은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달렸지만 그러는 사이 나를 3학년의 뱃지를 달게 했다. 
 
그해 여름방학 초인 7월 16일이었다.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그녀의 환상을 붙들고 내 마음속에 비너스를 아름답게 조각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우연히 가방을 들고 소위 ‘금남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대생만 출입할 수 있는 특수 영토였다. 

나는 다짜고짜로 그녀를 붙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많은 수사와 언어를 동원하여 그녀에게 진한 사랑의 고백을 했다. 소진, 장의(蘇秦, 張儀)의 능변으로 내 간절한 사랑의 백서를 그녀에게 바쳤다. 사실 나는 평소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 본적이 없다. 그렇게 숭고하고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어떻게 사랑이란 한 단어로 가볍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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