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족보 나의 가계 (4회)
  제1장 나의 세계(世系)와 가계(家系)

뿌리 없는 나무를 보았는가. 근원 없는 강물을 보았는가. 세상의 삼라만상에는 다 처음과 끝이 있는 법이다. 우리 인간도 이 우람한 진리에 예외일 수 없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고,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있게 마련이다. 

천지지만물간(天地之萬物間)에 내가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 핏속에는 아득한 내 옛조상들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러기에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지 않았던가. 무릇 봉(鳳)이 봉을 낳고 용(龍)이 용을 낳으며, 왕대 끝에 왕대 나고 돌배나무에는 돌배가 여는 법이다. 물론 “개천에서 용났다”는 돌연변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기적처럼 어쩌다가 있는 일이다. 

이상과 같은 섭리를 이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오늘 나를 이리로 데려온 엣 조상과 옛일을 심도 있게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내가 이렇게 오늘을 살게 된 그 연유를 더듬어 알고, 나아가서는 내가 맞이할 내일의 신화를 창조해야 한다. 이런 이치를 공자는 논어의 위정편(爲政編)에서 이렇게 웅변하고 있다. 

자장(子張)이 십세 후에 예가 어떻게 변할지 미리 알 수 있겠느냐고 공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따랐다. 그로인해 어떤 손익이 있었는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주나라는 그 은나라의 예를 따랐다. 그로인해 우리는 또 어떤 손익이 있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나라 다음에 이어지는 나라가 비록 백세라 할지라도 우리는 능히 그 예가 어떻게 변할지를 미리 짐작할 수 있다. 

공자는 과거와 대화하여 미래의 비전을 안 것이다. 이른바 온고지신의 철리(哲理)를 터득한 것이다. 우리 속담에 “잘 하면 제 탓이요, 못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다. 천하의 대도 도척(盜跖)도 집으로 돌아올 때만은 자식을 위해서 꺽센 제 목소리를 다듬었다는 그 인자한 부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공위성이 달나라를 정복한 현대의 혼담절차도 수인사(修人事) 때는 상대방의 관향(貫鄕)을 묻고, 면사포를 쓰고 웨딩마치를 올리기도 직전에도 서로의 문벌을 알아본다. 어찌 그것뿐이랴. 취흥이 도도해도 자기 가문 자랑으로 목에다 힘을 주는가 하면, 뜻 있는 사람은 결코 씻은 듯이 가난해도 선산을 팔아먹지는 않는다. 

그러면 과연 나는 어디로부터 왔으며, 나의 혈관에는 어떤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신라의 혁거세왕을 시조로 한 밀성(密城) 박 씨의 후예이다. 우리 박 씨는 밀성 박씨를 위시하여 모두 사십여 본으로 구성된 해동(海東)의 대성(大姓)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신라조는 주지한 바대로 박, 석(昔), 김씨 등 삼성의 왕통이 있다. 그 중 우리 박 씨는 신라조에서는 시조왕으로부터 제2대, 제3대,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까지 신라 전기 7세 219년간 인정(仁政)과 덕치(德治)로써 창업과 국기를 튼튼히 하며 후일의 삼국통일과 찬란한 신라문명을 만방에 꽃피게 한 기틀을 다졌다. 

신라 후기에는 제53대, 제54대, 제55대까지 3세 16년간은 시조왕의 건국이념을 받들어 기울어가는 종묘사직을 다시 굳건히 일으켜 세우려했으나 이미 국운이 기운 뒤였기에 그 노력은 물거품으로 꺼져 버렸다. 이로써 신라의 56세 992년 동안 박 씨가 재위한 것은 전후 10세 232년에 이른다. 그 후 면면히 계승된 우리의 계보를 짚어 그 ‘뿌리’를 찾아보기로 한다. 

우리 박 씨의 뿌리가 최초로 나윈 것은 제54대 경명왕 때였다. 이 경명왕은 여덟대군을 두셨는데, 이 대군들에게 각각 고을 하나씩을 맡도록 봉하셨다. 우리 밀성 박씨는 이 여덟대군 중 맏아들인 밀성대군 휘(諱) 언친(彦忱) 할아버지의 후손이다. 그러나 신라 말 밀성대군으로부터 고려 제11대 문중조에 이르러 열두 분이 각각 중시조로 분파될 때까지 110여년 간의 4세가 그 휘조차 알 길이 없어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중시조인 휘 언부(彦孚) 할아버지는 열두 분 중 중시조 중 대종손이며, 고려 문종 때에 과거에 올라 해동공자(海東孔子)라 일컫는 최충(崔沖)과 함께 태사(太師) 중서령(中書令)과 문하시중(門下侍中)과 도평의사(都評議使)를 거쳐 밀성부원군으로 봉해지셨다. 이 중시조 이후 여러 할아버지가 대를 이어 조정의 현직에 계셨는데, 이 책에서는 그 중 두어 분 할아버지와 가까운 직계 조상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는 고려 말을 생각하면 삼은(三隱), 팔은(八隱)이나 두문동(杜門洞) 72현 등 절개를 지킨 선비를 떠올린다.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 등 널리 알려진 삼은을 포함하여 고려조의 충절지사로 높이 추앙받고 있는 분인 팔은 중 한 분이 바로 송은(松隱) 박익(朴翊 : 1332-1398) 선생인데 나의 18대조이다. 팔은으로는 앞서의 삼은과 송은 박익, 도은 이승인, 만은 홍재, 동은 이재홍, 휴은 석주와 성은 김대윤 등을 일컫는다. 
 
▲ 송은(松隱) 박익(朴翊)의 초상화 (소산 박대성 작)
 
송은 선생은 목은보다는 나이가 4년 아래요, 이성계보다는 3년 위, 포은보다는 5년 위, 야은보다는 21년 위다. 특히 후일 송은 선생은 묘표문을 쓴 세종 때의 명재상 방촌 황희보다는 31년이 위였다. 

선생은 고려 공민왕 때 급제하여, 예부시랑 겸 중서령, 세자의 사부가 되었고, 한림문학에 천거되었다. 성리학에 밝아 새로운 문운을 크게 개척하였고, 나라가 위급할 때는 이성계와 더불어 남으로 왜구, 북으로 오랑캐를 평정하여 늘 공을 세웠기 때문에 사람들이 장상(將相)을 겸비한 재목이라고 지칭하였다고 한다.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민왕이 등극하자, 포은이 시중(侍中)이 되고, 송은 선생은 예조판서로 승차(陞差)되었다. 공양왕 말인 1392년, 이성계가 노루사냥에서 다리를 다쳐 한 달 이상 집에서 요양하게 되자 정몽주는 이성계 일파를 제거하여 기울어가는 국권을 바로 잡으려고 우선 사헌부 관리로 하여금 조준과 정도전 등에 대한 소장(疏章)을 짓게 했다. 

그러나 이것을 먼저 알아차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의하여 1392년 음력 4월 4일,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죽음을 당하고, 많은 연루자가 참형을 당했다. 도은 이승인은 귀양 가고, 목은은 쫓겨나서 돌아갔고, 야은은 세상을 피해버렸다. 

송은 선생도 이에 연루되어 귀양갔다가 후에 풀려나 밀양 향리로 돌아와 떨어지는 꽃과 지는 달에 거문고와 술로써 휘파람 불고 시를 읆조리며 지냈다. 포은이 죽기를 맹세할 즈음에 송은을 불러 울면서 말했다. 

“시국이 이미 이 같음은 천운이오. 그러나 하늘에는 두 개의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사람의 임금이 없소. 삶은 이 세상에 붙어 있는 것이고, 죽음은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오. 비록 천명이라 하나, 나는 홀로 우리 임금의 뜰로 돌아가거니와, 나를 알아줄 사람은 공과 야은 길재와 목은 이색뿐이오.” 

이에 송은 선생은 말했다. 

“그렇소. 나도 왕 씨의 신하니, 맹세코 이 씨의 곡식을 먹지 않겠소.”

이렇게 말하니, 여러 현인이 눈물을 닦으면서 크게 말했다. 

“송은은 참으로 의사(義士)로다. 그는 고죽군의 아들과 같은 절개가 있다.”

조선왕조를 세운 지 3년 만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태조 이성계는 송은 선생을 공조판서에 이어 차례로 형조, 예조, 이조판서로 불렀으나, 선생은 청맹과니와 귀머거리 행세를 하며 응하지 않았다. 2년이 지난 뒤 태조는 다시 권근을 시켜 선생을 좌의정으로 불렀으나 역시 응하지 않았다. 이에 권근이 조정에 들어가 태조에게 보고했다. 

“박익은 페하께서 보내신 폐백의 소중함을 들어보지도 않고 죽음을 삶같이 여겨, 신 혼자서는 도저히 불러올 수가 없었사옵니다.”

이에 태조가 하답을 했다,

“짐은 이전부터 박익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 비록 내 집에는 좋지 않은 자라고들 하지만, 그는 이미 왕씨의 충신이다. 그를 다섯차례 불렀으나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미 두 임금을 섬길 마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짐이 율에 의해 죄를 논하겠는가?”

이렇게 송은 선생의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오징불기(五徵不起, 다섯 번 불렀으나 일어나지 않음)의 고사로 가문에 전해온다.

 
  헛되지 않은 어머니의 치성 (3회)
  송은(松隱) 선생과 포은(圃隱) 선생의 교유(交遊) (5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