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_대단위 김포 해안쓰레기 매립장 확보 (3)
  [에필로그]

송형목
전 조선일보 상무, 스포츠조선 사장, 조우회 회장

보내주신 옥고 잘 읽었습니다. 귀중한 글을 해외에 나가는 저에게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조선일보 경제부 기자로서 주 출입처가 재무부가 경제기획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많은 경제관료를 접촉했습니다. 직업상 고위직 장∙차관도 많이 만났지만 그보다 많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출입당시 사무관이나 서기관급 간부를 더 많이 만났고, 그들의 상당수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요정책을 다루는 분이었습니다. 

그들은 밤을 새우며 일했고, 오로지 소신에 찬 일생을 살았습니다. 나는 나이 80이 넘은 오늘날까지도 이들을 만나는 직업인 경제부 기자로 살아왔음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도 가장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으로 박판제 서기관이 떠오릅니다. 

그는 물론 국장, 일급, 청장 등 고위 관직을 두루 거칩니다. 관료서의 그의 공과는 언제든 평가되겠지만 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의 회고록 글을 보면서 참으로 엄청난, 멋진 삶을 살아왔음을 실감했습니다.
 
   
▲ 송형목 전 조선일보 사장 [출처 ; 블로그 영원기쁨 01joy]    
그는 고난의 생을 출발했습니다. 어리고 어린 십대에 고향을 떠나 홀로 상경하는 모험을 감행하여 인생을 깨우치는 굶주림과 서러움을 체험합니다. 참으로 험난한 바닥에서 삶을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야간과 주간을 최선을 다해 삶을 개척하면서 어려운 고등고시의 관문을 통과합니다. 

그 중에서도 경제정책의 핵심이고 금융정책에 대한 전권을 건 재무부로 자리를 받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특히 눈에 띄는 일은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청와대근무였습니다. 

청와대는 예나 지금이나 막강한 힘이 있는가 하면 이해관계가 얽힌 사람들의 강한 반발도 따르기 마련입니다. 오로지 조국근대화라는 명분만으로 박정희 정권이 강행한 각종 비리에 대한 과단성 있는 척결은 당시의 막강한 권력에 대한 노골적인 저항과 동시에 실무적인 책무를 맡은 개인에게는 엄청난 모험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의 지난 일의 기록에서 그의 청와대 근무 업적이 영광과 함께 그의 가는 길에 고난의 험로도 되었다는 느낌도 가졌습니다. 그는 그럴 때마다 고전과 명언을 익히며 항상 새로운 각오를 다짐합니다. 이러한 그의 생활 자세는 그의 몸에 익힌 광범한 독서에서 온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독서는 그의 생활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생활자세는 재무부를 떠나 환경청을 맡고는 더욱 놀라운 획기적 환경정책을 이끌어갑니다. 특히 김포에 650만평에 달하는 반영구적인 대단위 해안쓰레기 매립장 확보는 실로 경천동지할 대사건입니다. 만난을 무릅쓰고 어떻게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공직생활 전체를 통해 대변되는 발상의 대전환이며 배짱과 강력한 추진력을 대변해주는 큰 역사라 할 것입니다. 청장 재임 시 그가 제정한 청가 청훈을 봅니다. 
 
▲ 최근의 박판제 선생 내외

공기도 물줄기도 한결 더 맑혀 / 생명의 보금자리가 되게  하오리 / 생명의 샘터되게 하오리 / “더 맑게 푸르게” 우리들의 손으로 / 살기에 달갑도록 만들어내자.

또 그의 글에서 그의 인품을 나타내는 태국 방콕의 잠롱 시장이 셋집을 전전한다는 신문보도를 보고 이것이 공직자의 기본자세여야 함을 통감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글을 쓰며 지금 생각해도 잠롱 시장이 지구촌 모든 공직자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 위인임에 틀림이 없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게 다름 아닌 그의 공직자로서의 자세였음을 말합니다. 

그의 공직의 사실상 마지막이었던 환경청장을 그만둔 후 남긴 그의 글에서도 삶의 철학을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때는 수렁으로 빠지는 조국을 붙들고 울었고 / 어느 때는 단비 맞아 피어나는 겨레와 얼싸안고 기뻐했다. / 나에게 천하를 명령할 수 있는 지휘봉을 쥐어 주었을 때도 / 나는 결코 이름 없는 농부의 아들임을 잊지 않았다.

그는 31세의 나이에 청와대에서 부실기업 정리와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구조 조정정책을 추진하면서 오로지 공명정대와 무엇이 옳은지 정의만을 생각했고, 재무부 국고국장 <국보위> 재무분과 위원, 대통령 사정비서관 등의 요직을 역임하면서 경제개혁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는 붉으락푸르락한 인생사라고 공직생활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원칙과 정당성 앞에 타협과 양보는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항상 강성인사로 알려져 왔습니다. 스스로 결벽증이 고독을 자초한 것 같다고 되돌아봅니다. 

그는 제일 젊은 과장, 제일 젊은 국장, 1급, 청장 등 자못 화려한 그의 외형에도 한없는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꼈다고 술회합니다. 나 자신 그의 회고록을 통해 1. 청와대 부실기업 정리 총괄반장(69-72년) 2. 환경청장으로서의 역할(86-88년) 3.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 총장(99-03년)으로서의 역할을 통해 성공신화를 창조해나간 아름다운 모습을 확인하면서 나 스스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일생을 한 인간으로서 강하고 힘차게 살아온 일을 꾸밈없이 그려낸 그의 인생살이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배움을 줄 것입니다. 고난과 영광이 함께 한 그의 삶은 백년, 천년이 지난 후에도 한편의 귀중한 역사서로 남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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