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_대한민국 역사와 너무 닮은 삶 (4)
  [에필로그]

이성 
서울 구로구청장

선배님, 청장님, 총장님, 어떤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 늘 망설입니다. 제게는 덕수상업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의 대선배님이시자, 행정고시 출신 공직자로서도 환경청장을 역임하신 존경하는 선배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총장님이라는 호칭이 제일 맘에 들어 그렇게 부릅니다. 그것은 저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대화와 교류를 주로 선배님께서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계실 때 해서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너무 과분한 일이 아닌지 지금 이 순간에도 합니다. 보다 덕망 있고, 이름 높은 분이 쓰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 때문에 회고록을 읽고 또 읽으면서도 몇 주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망설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감히 쓰는 것은 총장님의 너무도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까마득한 후배인 제게 한결 같이 보내주시는 선배님의 응원과 사랑에 늘 감격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제 삶이 총장님의 삶의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치열하고 정의로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여전히 나는 자격미달입니다. 

총장님은 내게 큰 산 같은 이상향이었습니다. 조달청 차장, 환경청장으로 일하시던 그때 서울시 사무관이었던 저는 그저 동문회 모임에서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존경스럽고 닮고 싶은 선배님이셨습니다. 

까마득한 후배였던 저에게도 언제나 다정하게 말을 건네셨고,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성취의 에너지가 온몸에서 강렬하게 뿜어져 나와 주변사람들까지도 신나고 즐겁게 변화시키고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주시는 독측한 장기가 있는 선배셨습니다. 

이 회고록을 읽기 전까지 내 생각속의 총장님은 고생해본 적 없이 귀하게 자랐고, 그 후로도 승승장구 성공가도를 달려오신 부잣집 똑똑한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총장님에게서는 어두움의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늘 밝은 빛살과 활력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총장님께서 두메산골의 가난한 농가에서 중학교도 못 다니고 혈혈단신으로 상경해서 주근야독으로 구두닦이 생활과 직업소년학교를 거쳐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더 나아가 명문 고려대학교에 합격하여 집안의 경제적 도움 없이 대학을 다니며 공인회계사와 행정고시를 모두 합격하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셨던 분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중학시절부터 온갖 일을 하며 학교에 다녀야 했던 가난한 소년기를 겪었습니다. 그런 저는 어린 시절 겪은 극심한 가난과 고생을 마음속으로는 훈장처럼 여겨왔었습니다. 그런데 총장님의 고난 극복기를 읽고서는 제가 겪었던 고생은 고생이 아니라 호사였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때 나라가 가난했고, 대다수의 국민이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총장님의 고난 극복기는 어느 위인의 전기보다도 드라마틱하고 교훈적이라 할수 있는 한국근대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직자 박판제의 이야기는 더 이상 고난극복사가 아닙니다. 새로운 길을 열고 이루어 나가는 성취의 역사입니다. 총장님의 연애와 결혼마저도 그랬습니다. 새로운 길,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성공, 그리고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기조의 전파로 일관한 수십 년의 공직생활 이야기가 이 회고록 담겨 있습니다. 

그 속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초기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추진 당시 부실기업정리와 포항제철소건설, 자동차 산업 육성 등 산업고도화를 추진했던 새파랗게 젊은 경제관료로부터 고도성장 시절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가장 핵심적인 분야에서 불철주야 한국경제를 이끌던 경제관료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또 환경관리부서가 가장 한직으로 여겨지고 그저 쓰레기 처리나 하는 정도로만 인식되던 시절에 환경청장으로 발령받아, 지금도 우리에게 익숙한 “더 맑게 더 푸르게”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우리나라 최초 하수처리장을 건설하며, 6개의 지방환경청을 만들고, 지금도 사용하는 김포 수도권 대단위 쓰레기매립장을 건설하는 등 우리나라 환경정책의 대전환기를 만듭니다. 

그때 환경청은 작은 부서에서 몇 배나 큰 부처로 확대되고 결국은 환경부라는 장관급 부처로 승격했습니다. 한직으로 좌천되었다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한직을 우리나라 가장 중요한 자리로 변모시키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가장 중요한 환경보전정책의 토대를 쌓는 성취를 이뤄냅니다. 
 
▲ 이성 구로구청장 [출처 ; 이성 구로구청장 페이스북]

공직에서 물러난 후 지봉장학회라는 장학재단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습니다. 흔히 정치적 뜻으로 장학재단을 세웠다가 없어지는 그런 재단이 아니라 27년이 넘도록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여 지금까지 총 5억 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원해왔습니다.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간발의 차이로 낙선의 고배를 마시지만 낙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21세기를 1년 앞둔 1999년에 산업디자인대학원 학장으로 취임하여 새로운 길을 엽니다. 학교를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로 승격시키고 총장에 취임한 후 우리나라 산업사에 중대한 전기였다고 평가할 만한 ‘IDAS(International Design School for Advanced Studies)'운동을 펼칩니다. 

과거 독일에서 일어난 ’바우하우스‘운동이 독일산업의 중흥을 일으켰듯이 한국에서 디자인혁신운동을 펼침으로써 우리나라 산업의 미래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고자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미래의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고 디자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바늘에서 우주선까지 우리 생활의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박판제발 디자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그전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디자인운동은 엄청난 호응을 받으며 1999년 국제디자인대학원대학교의 IDAS 뉴밀레니엄과장 1기에는 삼성, LG 등 쟁쟁한 기업의 CEO들과 고위 관료 등 각계리더 70여명이 참여하고, 그 뒤로도 수많은 우리나라 경제인, 경영인이 5기에 걸쳐 이 과정을 거침으로써,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경영에 디자인 마인드를 확실하게 확산시킵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이끄는 주요기업 CEO의 대부분이 IDAS 동문이라고 봐도 될 만큼 디자인 운동은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총장님은 이제 일흔 후반을 맞이하는 나이에도 새로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정치와 무관하고 정부지원도 받지 않는 환경관련 NGO인 <사랑의 녹색운동본부> 명예총재로 추대된 이후 <녹색환경포럼> 명예총재로 새로운 길을 열어갑니다. 과거 정부 관료로서 우리나라 환경행정의 틀을 만든 주역에서 환경지킴이 시민단체의대표로서 새 출발을 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대한 총장님의 탁월한 식견일 것입니다. 

21세기를 넘어서면서, 이제 정부에서 시민으로 국가경영의 중심축이 옮겨가고 있고, 거버넌스, 즉 협치가 새로운 통치방식이자 국가운영방식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NGO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르다할 만큼 중요성이 더해지고 국가운영의 보조자에서 공동운영자로 위치가 옮겨지는 지금의 흐름에서, 총장님께서는 그것을 일찍이 통찰하고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총장님의 80년 삶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국제시장>이라는 영화 한편에서 해방 이후 우리나라 근대사를 축약해서 볼 수 있었고, 그 영화를 보며 때론 울고 웃으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을 느꼈듯이, 이 회고록은 또 다른 <국제시장>입니다. 이 속에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대로 축약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판제의 삶이 대한민국의 역사와 너무도 닮았습니다. 

구한말 몰락한 왕조의 주권을 빼앗긴 가난한 나라 조선과 함께 명문 양반가였던 총장님이 가문도 선대의 동학가담과 함께 몰락하여 30여 호밖에 살지 않는 벽촌의 가난한 농부로 밀려납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독일에 광부와 간호원을 보내고, 베트남에 군대를 파병하고,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 중기계획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경제기적을 이뤄냅니다. 가진 것 없어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박판제는 단신 상경하여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직업소년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명문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입학하고 공인회계사와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가문을 재건합니다. 

총장님께서 평생 동안 늘 대한민국 변화의 최선두 현장에서 변화를 이끌어온 문자 그대로 리더, 즉 견인자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산업근대화의 모든 과정에서 계획하고 지휘하던 핵심관료였고, 오늘날의 환경정책의 토대를 만든 선구자였으며, 21세기 디자인 한국의 중요성을 전파한 디자인운동 전도사였습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물결, 협치 즉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예견하여 NGO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언제나 국가변화를 한발 앞서 준비하고 이끌어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총장님의 개인사가 곧 광복이후 대한민국 근대사의 축약판으로 제게는 보입니다.  

그러기에 이 회고록은 어려웠던 시절을 거쳐 온 우리 선배들의 대표적인 고난극복과 성취의 이야기고, 효도와 자녀 양육의 교훈적인 이야기이며, 대한민국 근대사를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역사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다시 난세를 맞는 우리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난세를 살아나갈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하나씩 답을 얻어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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