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위 재무분과 위원으로 (57회)
  제8장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

나는 1980년 6월 5일자로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이후 ‘국보위’라 함)> <재무분과위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여기서는 ‘국보위’설치 배경이나 기능 등 전반에 걸친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할 위치에 있지 않았기에 <재무분과위원>으로서 한 일 몇 가지만 소개한다. 

‘국보위’는 그동안 정치,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던 권력형 부조리나 사회적 비리 등을 척결해왔다. 불신풍조를 없애기 위해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정화조치를 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경제계에도 이런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나는 이 같은 ‘국보위’ 일각에서 일고 있는 이런 의견에 대해 기회 있을 때마다 강력히 반대 의견을 개진했다. 

사실 경제만은 어떠한 경우, 어떠한 명분으로도 축격요법은 금물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움직여지는 기본 원리는 그 구성원 개개인의 이윤동기와 능력에 따라 자유로운 경쟁에 의해, 수요와 공급의 세력에 의해 물 흐르듯 순리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외부의 물리적 힘에 의해 충격을 가했을 경우에는 앞으로의 경제운용에 많은 문제를 낳게 될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지 않아도 10.26사태 이후에 정치, 경제, 사회의 엄청난 혼란으로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고 있고, 세계 각국도 한국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 크게 우려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런데 정치세력마저 힘으로 경제에 충격을 준다면 이는 우리 경제에 설상가상의 불행을 더해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경제개발 초기에 자본과 기술은 외국에서 도입했으나 근로자, 기술자, 경영자 등 훈련되고 경험 있는 인력의 부족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는 것과, 그 와중에 지난 20년간 많은 훈련과 경험을 쌓아왔음은 물론, 특히 경영인들은 외국기업과 이미 복잡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외부의 물리적 힘에 의해 손상을 입게 된다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것이며, 그것은 몇 년 전 율산그룹의 해체에 따른 국내적, 국제적 후유증이 잘 말해주고 있음을 역설했다. 

딴은 <율산그룹> 해체 후 국내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불안과 충격을 주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국제적으로 한국에서 정치세력에 의해 기업과 기업인의 운명이 좌우된다면 앞으로 어느 기업을 믿고 거래를 할 수 있겠느냐 하고, 많은 우려를 표명했던 게 사실이었다. 

나는 대안으로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에 경제계에 정화조치를 해야 할 이유와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과거의 정치적, 사회적 풍토 하에서는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하여 이것을 응징차원에서 다룰 것은 아니다. 과거의 잘못은 제도적, 정책적 차원에서 시정해나가도록 하며, 앞으로는 이 같은 잘못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치적,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합리적인 경제 정책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 같은 차원에서 내가 주관이 되어 재무분과위원회에서 마련된 정책이 <중소기업활성화대책>과 소위 <9.27조치>로 널리 알려진 <기업체질강화대책>이었다. 
 
▲ 국보위 재무분과 위원 시절 / 오른쪽에서 3번째가 필자이다

두 말할 것도 없이 과거의 우리 경제정책은 제한된 자원을 경제개발우선 원칙에 따라 집중 투자해오다보니 불가피하에 대기업경제정책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었고, 이에 따라 자연히 중소기업의 비중이 낮았거나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중소기업인은 상당히 소외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었다. 

우리는 당시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점을 분석했다. 전반적으로 중소기업은 노동생산성과 기술수준이 저위(低位)인데다가 고유 중소기업형 사업분야까지 대기업이 참여하기 때문에 종소기업의 존립기반과 안전 가동에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이런 환경 아래서 중소기업은 전반적으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중소기업 은행과 시중은행이 중소기업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나 그 절대규모가 적어서 영세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금융지원혜택이 전무한 실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다가 중소기업을 담보가 절대 부족할뿐더러 신용보증제도가 있기는 해도 그 절차가 몹시 까다롭고 번잡해서 웬만한 영세기업은 접근조차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은 상황분석에 따라 우리는 몇 가지 당면대책과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했다. 

1980년 그해 2000억 원을 중소기업자금으로 우선 지원하도록 했다. 그러고 꾸준히 종소기업자금 규모를 확대해 나가기 위해 종소기업은행의 자본금을 대폭 증액하고,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및 단자회사의 중소기업에 대한 융자비율을 대폭 확대하기 위한 규정을 개정토록 했다. 

중소기업투자육성회사의 단계적 설립도 추진하도록 했다. 상시 종업원이 20명 미만이고, 총자산이 3억 원 미만의 제조업체인 영세기업에 대해서는 1980년 하반기 중에 별도로 1,200억 원을 의무적으로 지원하도록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부문에 각별한 배려를 했다. 

금융기관의 중소기업에 대한 담보대출의 경유 지금까지 감정가액의 6, 70% 대출해주던 것을 100%까지 대출해주도록 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보증 한도를 대폭 확대하도록 함과 동시에 건당 3,000만 원 이하의 소액 대출에 대해서는 ‘간이신용평가표’를 만들어 신속히 신용대출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융자절차를 대폭 간소화하도록 했다. 즉 중소기업 융자 시 관계부처의 개별업체 심사추천제도와 견련, 협회, 조합 등의 이에 대한 확인절차를 폐지하도로 했다. 업종 별 차등 융자제를 실시하고, 에너지 절약, 전문화. 계열화 업종 부문에의 우선 지원과, 경기 하강 시 중소기업시설자금을 우선 지원토록했으며, 마지막으로 대기업에 의한 고유 중소기업형 업종에의 침투를 억제하기 위한 제반조치를 강구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중소기업에 대한 당시로서는 근본적이고 획기적 조치라 할 수 있는 대책이 발표되자 전국 중소업자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지방의 어떤 영세중소기업자는 기름 때 묻은 꾀죄죄한 작업복을 입고 울면서, 인터뷰하는 감격적인 장면을 보고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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