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 총선의 교훈 (63회)
  제8장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

정부의 확고한 공명선거 실시의지의 결과 11대 총선은 괄목할 만한 공명선거가 치러졌고, 선거 후유증도 거의 없었다. 나는 그 선거를 치르면서 논어에 나오는 다음 말을 음미해보았다. 

덕은 외롭지 않고 德不孤
꼭 이웃이 있다. 必有鄰

그렇다! 금권이나 관권을 남용하지 않아도, 출마자가 덕을 갖추었을 때 유권자는 스스로 그 후보자에게로 모여든다는 것이 철리(哲理)일 것이다. <전국책>에 나오는 제나라  대학자인 풍훤(馮蘐) 같은 사람이 출마하면 유권자는 깨끗한 한 표를 기꺼이 모아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1980년 어느날 아내와 남해대교에서

풍훤은 가난하여 맹소군(孟昭君)이란 사람의 집에서 얹혀 살았다. 그런데  풍훤은 원래 성미가 무뚝뚝하고 걸핏하면 앵토라지기만 해서 아무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맹소군은 풍훤이 고기가 먹고 싶다면 고기를 주고, 어머니의 생활비를 걱정하면 풍훤에게 그 생활비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풍훤은 그뒤 어디론지 가뭇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몇 년을 두고 수소문을 해보아도 풍훤의 소재는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맹소군은 집안 종들을 불러보았다. 

“너희들 듣거라. 너희들 중에서 설(薛)이란 고장으로 가서 내가 꾸어준 돈을 받아올 사람이 없느냐?”

그러나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맹소군은 일가친척은 물론 온 동네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 빚 받으러 갈 사람들을 두루 찾아헤맸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그 귀찮은 일을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너무 뜻밖에도 맹소군에게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발신인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지 않았다. 어떤 종 하나가 맹소군에게, 아마 이 편지는 풍훤이 낸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원래 풍훤은 엉뚱한 짓을 잘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맹소군이 듣고 보니 그럴 듯 했다. 그래서 맹소군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 풍훤을 찾아오게 했다. 며칠 뒤에 과연 풍훤이 맹소군 앞으로 잡혀왔다. 

“선생, 참 오랜만이오. 헌데 이 일을 정말 해낼 수 있겠습니까?”
“예, 걱정 마삽시오. 소인이 정성껏 해보겠습니다.”
“이게 그 차용증서요. 이 사람들을 찾아가서 돈을 받으면 됩니다.”
“예, 그러겠습니다. 돈을 다 받으면 그 돈으로 무엇을 사서 돌아올까요?”
“글쎄요. 우리 집에 없는 게 무엇인가 잘 생각해서 그걸 사오시구료.”

풍훤은 ‘설’이란 고장으로 갔다. 돈을 꾸어 쓴 사람들을 한 자리에다 불러 모았다. 풍훤이 그 사람들의 몰골을 보자 모두가 얼굴이 까칠해 보이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여러분, 이 차용증서를 보십시오. 여러분들은 이 증서대로 맹소군으로부터 돈을 꾸어 쓴 것이 분명합니다.”

이 소리를 듣자 모두는 풍훤이 빚 받으러 온줄 알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난 여러분들에게 빚을 받으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이리로 떠나올 때, 맹소군께선 그 빚을 안 받을터이니 그 분들 보는 앞에서 이 차용증서를 다 불에다 태워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이처럼 고마운 분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고는 정말 그 차용증서를 불에 태워버렸다. 

“만세! 만세! 맹소군 만세!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도 어질고 고마운 분이 또 있을까?”
이렇게 풍훤은 생게망게한 짓을 하고는 허겁지겁 맨손으로 맹소군의 집으로 돌아왔다. 

“수고하셨소. 그 어려운 일들을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마치고 돌아오셨소? 헌데 그 돈으로 선생은 무엇을 사가지고 오셨나요?”

“돈을 받으면 그 돈으로 분명 이 댁에 없는 것을 사오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소인의 생각으로는 이 댁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없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니 도대체 그게 뭔데요?”
“있지요. 아, 이 댁에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은혜란 없습니다. 그래서 소인이 댁을 위해 그 은혜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예? 은혜라고요?”

“예, 소신이 말씀드리지요. 나으리는 그 설이란 고장사람들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빚을 받으려고 즉 몹시 괴롭혀 오셨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대단히 주제 넘는 짓인 줄은 알았지만, 나으리의 명령이라면서 그 차용증서를 태워 버리고는 빚 탕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며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소인은 나으리를 위해 그곳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혜를 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이 소리를 듣자 맹소군은 어이가 없었다. 풍훤은 참으로 엉뚱한 짓을 하고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이 있은 1년 뒤였다. 맹소군이 섬기고 있던 임금이 돌아갔다. 그런데 새 임금은 맹소군을 앞 임금을 섬기던 사람이라면서 신하로 둘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맹소군은 눈물을 머금고 자기 땅이 많이 있는 그 설이란 고장으로 가 살게 되었다. 그 고장의 많은 백성들이 모두 몰려나와 맹소군을 대대적으로 환영을 했다. 

“만세! 만세! 맹소군 나으리 만세! 정말 잘 오셨습니다. 앞으로 소인들이 나으리를 지성껏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이때 맹소군은 함께 데리고 간 풍훤의 두 손을 꽉 부여잡았다. 

“선생, 풍훤 선생. 나를 위해 은혜를 사왔다는 걸 이제사 알았습니다. 숙맥인 나를 가르쳐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맹소군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다. 

 
  대통령 비서실 사정담당 비서관 (62회)
  청탁배격운동 (64회)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