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배격운동 (64회)
  제8장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

지금까지 모든 부정부패의원인은 청탁, 압력, 이권개입 등 공직자의 비위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사정협의회는 이 악순환을 철저히 배격함으로써 궈력형 부조리를 근절하기 위해 1981년 3월 31일 <청탁, 압력, 이권개입 등 공직자비위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협의회는 우선 이 방지대책을 수립하게 된 그때의 배경이라고 할까, 현황진단을 다음과 같이 했다. 

첫째, 과감한 개혁으로 부정부패 풍조가 크게 개선되었다. 공직자 사회는 전반적으로 자숙경향을 보이고, 일반 사회는 푹력배 단속, 과열과외 방지 등으로 비리, 폐습이 상당 수준 시정되었으며, 양대 선거의 공명실시로 정치풍토 쇄신 기반이 다져졌다. 

둘째, 국민의식 구조상 일부 청탁, 압력풍토는 상존하기 때문에 등한시 할 경우 장차 재발 가능성이 짙다. 그 당시로는 일반적으로 모든 일이 정상적 처리로는 힘들다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되어 불가능한 일도 청탁, 압력이나 금력으로 가능하다는 풍토가 만연되어, 자기 노력으로 해결 가능한 것도 출신의원, 고위 공직자 등에 청탁하려 하는 경향이 많았다,

한편 공직자들은 당연히 될 일은 고의적으로 지연시켜 청탁, 압력을 자초하는가 하면, 청탁, 압력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해결하고, 고위 공직자, 권력기관원 등 일부 인사들은 사리를 위해 직권을 남용하여 권력기관이나 산하기관에 압력을 가하여 이권에 개입하는 사례가 더러 있었다. 

정치인은 선거종료와 더불어 과거와 같은 정치폐습 재발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며, 정치인 스스로 청탁, 이권개입, 관련기업 비호, 선거구민의 청탁에 의한 압력, 이권개입과 지역구 관리 등을 위한 정실인사 청탁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했다. 

셋째, 공직자 특히 고위 공직자의 부패 방지가 앞으로의 중요 과제였다. 정치 부패로 공직자 부패를 초래하고, 공직자 부패로 그것이 일반사회로 만연될 가능성이 짙으며, 정치인 등 고위 공직자 부패방지 실패 시 지금까지의 개혁 작업은 원점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상과 같은 현황 분석에 따른 기본방침 일곱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지도층의 솔선수범 촉구
정치인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 사정 담당기관원, 사회각계 지도층 인사의 솔선수범을 촉구한다. 

둘째, 특별교육 실시
각급 부서장 책임 하에 예비군 교육직장 교육시간 등을 활용하여 수시로 반복 교육하며, 각급 훈련기관 교과목에 포함시킨다.

셋째, 자체간사기능 활용, 철저한 정신교육 상태를 확인하고, 기관별로 대민 홍보를 하며, 비위자를 적발하여 엄벌한다. 

넷째, 청탁사항 보고제도 확립
외부로부터 청탁받은 자는 즉시 기관장을 통해 보고하되, 기관장은 매월 말 종합정기 보고한다. 
 
▲ 청와대 사정비서관 시절 / 왼쪽에서 3번째부터 필자, 최창윤 씨, 문희갑 씨, 맨 오른쪽은 안상영 씨

다섯째, 사정기관의 확인, 점검활동 강화
비위 적발 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한다. 

여섯째, 청탁풍조 배격을 위한 국민운동 전개
공직자 대상으로는 ‘청탁 안 하고 안 받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일반 국민대상으로는 국회의원을 포함한 공직자 보호 캠페인을 전개한다. 

일곱째, 본 기본 방침에 따른 자체 계획 수립 시행과 보고

나는 이상과 같은 현황분석과 이에 대처할 기본방침을 수립 제시하면서도, 열 사람이 지켜도 도둑 한 사람을 잡기가 어렵다는 우리 속담을 의미 있게 되뇌었다. 

임지를 떠날 때 선정(善政) 기념으로 주민이 여덟 필의 말을 바쳐 짐을 싣고 가게 했는데, 서울에 당도한 후 그 말이 낳은 새끼까지 되돌려 준 고려 때의 승평(昇平)부사 최석(崔碩) 선생의 일화를 생각했다. 
 
집이 헐어 방안에서 우산을 썼다는 황희 정승, 단양군수로 있을 때 형이 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상피(相避)를 한 퇴계 선생. 호조판서에 임명되자 집수리를 중단한 이원익(李元翼) 선생과 스승에게 노자(路資)를 드리려했다가 호통을 맞은 이항복 선생, 은그릇 보낸 군수를 즉각 파면한 흥선 대원군을 생각했다. 

이런 청백리들을 우러러보며 이 시책이 성공되기를 빌었다.         
                                   
청탁 배격운동을 하다 보니 사회가 경직되고 불편하기만 하여 오히려 그것을 비정상으로 보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청탁이나 압력을 가하면 즉각적으로 처리되던 일들이 지연되거나 저지되어 불편하기만 하다는 인식들이었다. 

그러나 누구의 일이든 간에 그것은 동일한 여건에서 공명정대하게 처리되어야 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나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당시 우리는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분수를 잃은 퇴폐적이고 타락적인 양상을 수집해 보았다.

혼수 문제로 파혼까지 빚어내는가 하면, 호텔에서 여는 호화판 어린이 생일파티, 외제와 사치에 눈이 멀어 명동을 휩쓰는 사모님들, 음식 값보다 팁을 더 많이 주는 속 빈 강정들, 부담스러운 경조금, 아동들의 값비싼 학용품과 입성들, 3, 4차를 가야 직성이 풀리는 기분파 주정꾼들, 남이 하니 나도 하는 엄청난 과외비, 자기 과시를 위해 고급 호화주택을 전전하는 유한마담들…….

아, 이 같은 망국병이 엊그제의 ‘보릿고개’를 잊고 활개를 쳤다.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꼴불견들이 새 역사를 여는 새벽에 걸리적거리는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었다. 이처럼 퇴폐적이요, 타락적인 의식을 바로잡는 운동이 곧 ‘의식개혁’운동이다. 

 
  11대 총선의 교훈 (63회)
  의식개혁 실천요강 수립 (6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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