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프로 정화안과 금융실명제 파동 (66회)
  제8장 정치의 회오리 속에서

둘째, 코미디 프로 정화안에도 이견을 내세웠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파미디어는 공공적 기능이 강하다. 따라서 TV나 라디오나 신문은 뉴스보도와 정보의 대중 전달이 그 본래의 사명이다. 유태인들이 어린이들에게 TV의 오락물을 보지 말고 뉴스 같은 공공전달만 보게 하는 것도 이 매체가 가진 본래 기능을 십분 알고 한 처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즈음 우리나라의 전파미디어가 오락 위주, 흥미 위주로 편성되어 그 내용도 저질이니 정화해야 된다는 논란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나는 내 나름대로의 이견을 제시했다. 그것은 그래도 오락물이 허물보다는 이로움이 더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웃들이 수분을 잃고 먼지기둥이 일어날 만큼 삭막하며, 사람들이 목석처럼 경직되었거나 스트레스에 쌓여 피가 없는 목각인형이 다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러한 이웃에 ‘웃음’이란 단비를 내려 그 목을 축여 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원래 그 코미디의 기반이 되는 ‘웃음’은 저 프랑스의 격언처럼 무장까지도 해제시키는 위대한 힘을 가졌다. 긴장과 기저불안(基底不安)에 싸였던 서람들에게 일시나마 위안을 주고 심기일전의 용기를 준다. 

그러기에 예부터 “일소일소(一笑一少)요, 일노일로(一怒一老)”라 하여 웃음의 공효(功效)를 높이 인정했다. 

합천 출신 소설가 이주홍(李周洪)은 해학에 관한 문헌이 많은 것도 웃음이 우리 인생에 끼친 공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우리의 우스운 이야기의 소재는 주로 저능을 조롱하는 것, 즉 바보, 바보남편, 바보사위, 바보형, 바보 선생이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는 창황낭패(倉皇狼狽)와 긴장 실수의 경우, 무식이 빚어내는 실소(失笑), 체면으로 본심을 가리는 때, 속이 내다보이는 변명, 초점이 맞지 않는 억측, 기지(機智), 돈지(頓智), 태연의 가장, 궁여(窮餘)의 고계(苦計), 인색, 열중허탈, 소중도(笑中刀)의 비꼼, 외고집 자랑, 문자오독, 동음어에서 오는 부회(府會), 희작(戱作)의 시화(詩話) 등이라고 했다.

한편 칸트(Kant)나 에스칼피(Escarpit)나 파뇰(Pagnol) 등은 웃음이 일어나는 것은 ‘우월성’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이 설은 오늘날 세계의 학자들이 공언한 학설이다. 

가령 우리가 기자회견장에 나온 대통령이 웃옷은 정장을 했으나 아래는 팬티만 입고나온 것을 보았다면 웃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때 우리는 왜 웃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우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옷을 제대로 입을 줄 아는데, 저 대통령은 옷도 제대로 입을 줄 모르니 우리가 저 대통령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때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우리가 바보나 실수한 사람을 보고 웃는 것도 이와 같은 논리다. 우리는 저 바보보다는 우월하다는 것을 느껴서 웃게 된다.

한편 ‘웃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우월성을 바탕으로 권세나 특권계급을 특면 공격하는 무기로도 사용되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양반이나 파계승을 풍자한 엣 가면극이나 꼭두각시극이 그런 대표이다. 정면으로 그들을 공격할 수 없으니까 풍자나 웃음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공격을 했다. 이런 가면극이나 풍자극이 우스운 것도 풍자를 당하는 위정자나 특권계급인 너희들보다도 관객인 내가 훨씬 우월하다는 느낌에서 웃음이 나오게 된다. 
 
아무튼 소불위죄(笑不爲罪)라 웃음은 정서가 메마른 지구촌의 꽃이요, to로운 세계에로의 도약을 위한 활력소가 된다. 그러기에 나는 지금도 코미디를 즐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극중의 극은 비극이라 하여 희극을 가장 경시했지만, 나는 이 희극에서 위안과 내일에의 차원 높은 활력을 받는다.
 
아무튼 코미디의 질적 향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무용론이아 경시론은 시의에 맞지 않아 반대했다. 이 코미디 정화론도 마침내 잠을 자고, 코미디작가와 코미디언의 자체 의식개조에 맡기게 되었다. 
 
▲ 청와대 사정비서관 시절 / 왼쪽에서 2번째가 필자, 그 다음은 허삼수 사정수석이다

금융실명제 파동

금융실명제는 두 번째로 등장한 골치 아픈 안건이었다. 이미 국보위 때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었다. 새 시대 새 역사 창조와 더불어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금융실명제 실시가 선결과제라는 것이었다. 명분론으로나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이것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이것이 가능하느냐가 문제였다. 일본이 두 번이나 이 제도를 실시하려고 했다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포기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경제규모로 보나 그 실질적 내용에 있어서 그 발전심도나 그 제도의 성숙도에 있어서 일본은 우리보다 이 제도의 실시에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 제도를 실시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내각은 다시 이 나라의 경제정의 실현과 분배구조의 개선, 국민화합 차원에서 이 제도를 단호히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리하여 입법조치까지 이미 끝났고, 시행 시기는 시행령에 위임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마음속으로 큰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제도 시행으로 경제계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 술렁거렸고, 도하의 여론은 찬반양론으로 엇갈려 들끓었다. 예상한대로 얼마 되지 않아 이 제도 시행의 역기능이 일어났다. 즉, 부동산투기가 일기 시작했고, 땅값이 2, 3배로 치솟고, 영동 등을 중심으로 향락산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었다. 

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석자료를 만들었다. 우리의 경제사정이 특수한 사정, 부의 축적과정과 분배구조, 돈의 생리, 현 경제상황과 앞으로의 과제, 이들을 종합고려해 실명제를 실시했을 경우의 영향과 효과 등, 광범위한 자료를 분석해서 보고 했다. 

이 보고서를 중심으로 청와대 내부에서도 여러 번 논의가 되었고, 관련부처와 당에도 전파되어 갔다. 이 실명제 실시에만은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가졌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환자가 받아서 소화할 수 없으면 그것은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의 대다수는 이미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고 있었다. 단지 10% 내외의 돈만이 주인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돈이었다. 이런 돈은 햇빛을 싫어한다. 억지로 밝은 곳으로 꺼내놓으려고 하면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거나 차명이나 현금으로 보유하게 된다. 돈은 음지에서라도 국내 시장에서 도는 것이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이후 일어난 IMF사태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나는 금융실명제도 한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실명제 실시 문제는 근본적으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에 대한 오해와 비난이 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참으로 어이없고 난감했다. 야지랑스럽게도 지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있겠는가! 내 거취문제마저 논의되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인지는 모르겠다. 어떻든 나는 조달청차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미 2년 전에 전매청 차장도 뿌리쳤는데 말이다. 집에 돌아와서 내자와 사표를 내버릴까 하고 상의도 해보았다.

 
  의식개혁 실천요강 수립 (65회)
  청와대를 뒤돌아서며 (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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