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의 사기진작 (69회)
  제9장 조달청에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직원들의 사기 진작 

아무리 바빠도 숨은 쉬어야 하고, 내일을 위해 잠은 자야 한다. 신은 활동을 위해 ‘낮’을 준비했고, 휴식을 위해 우리들에게 ‘밤’을 주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修辭學)>에서 다음과 같은 중대발언을 했다. 

유쾌란 것은 정신이 일종의 활동하다가 적당한 때 그치고는 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고통은 이와 반대의 경우를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명문장도 독자의 마음을 적당히 활동시키다가는 적당히 그치게 하는 문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문장의 조건을 말했지만, 어찌 명문장에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인간은 긴장만으로 일생을 보낼 수는 없다. 때로는 그 긴장을 보다 가치 있게 하기 위해서, 쉬면서 그 활력소를 축적해야 한다. 

나도 이 진리를 거울삼아 부하직원들을 바짝 죄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풀줄도 아는 여유를 가져야 새로운 사기가 진작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몇 방안을 수립해서 실천에 옯겼다. 

중앙부처 대항 종합체육대회 우승 

이 대회는 중앙부처 간의 유대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개최되었다. 경기 종목도 마라톤을 포함한 육상, 배구, 축구, 테니스, 줄다리기 등 매우 다양했다. 

아무리 단결과 친목과 유대강화가 목적이라 해도 경기에는 승부가 달려 있는 법이다. 월계관을 쓰는 영광의 승리자가 나오는가하면 치욕의 고배를 마시게 될 패배자도 나오게 마련이다. 나는 이왕 경기를 할 바에야 기필코 승전고를 우리가 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수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단장인 내가 진두지휘하며 맹훈을 했다. 

특히 단체경기는 한 사람이라도 개인플레이를 하거나 힘이 분산되면 오합지졸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여 리더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단결력 집중의 훈련을 했다. 마침내 대회의 팡파르는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각 팀의 선수가 운동장에서 용마(龍馬)처럼 달리거나 고래처럼 꿈틀거렸다. 이에 맞추어 각 팀의 응원석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천지를 찢는 함성과 박수소리와 나팔소리, 북소리, 징소리들이 장내를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승리의 첩보는 속속 우리에게로 날아들었다. 선수들이나 응원석이나 사기로 충천했다. 가는 곳마다 우리의 승리요, 우리의 우승이었다. 우리 조달청 팀이 이 대회에서 영예의 종합우승기를 하늘 높이 펄펄 날렸다. 나는 선수들을 끌어안고 어쩔 줄을 몰랐다. 감격! 영광! 제패 그것이었다. 우리는 천군만마를 거느린 쾌승장군처럼 호기차게 개선했다. 

이 대회의 승리로 우리 청이 분위기는 욱일승천했다. 이 대회로 자신감만 가지면 어느 일류부처에도 업무상으로나 능력상으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었다.

나는 이날 늦게 술에 취해 집에 들어서며 내자에게,
“여보, 우리가 이겼어. 종합우승이야!”
하고 호기차게 말했다. 

“박판제 가는 곳엔 승리뿐이다!”
내자가 격찬한 말이었다. 
 
딴은 그런 찬사를 들을 만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어느 운동도 잘하지는 못했지만, 축구, 배구, 농구, 테니스, 줄다리기, 달리기 등 어느 운동도 안해 본 것이 없었다. 자랑이 아니라 어느 운동도 그 팀을 승리로 이끌만한 별난 장기는 없지만, 내가 소속된 팀을 반드시 우승으로 이끄는 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비결은 간단하다. 경기 팀을 일심동체로 묶어 한 사람 한 사람 힘과 기량과 능력을 하나의 초점으로 모으는 것이다. 팀 구성원 중 한 사람만이라도 “우리가 이기면 어느 놈 좋아하는 꼴 보기 싫어서”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절대로 우승할 수가 없다. 어쨌든 팀 구성원 모두 하나가 되어 서로 좋아하고, 서로 사랑해서 이기겠다는 일사불란한 의지를 갖도록 단결시키는 것이었다. 
 
▲ 중앙부처 대항 종합체육대회에서

나는 가장 약체로 인정되었던 <청와대 외자관리 비서실팀>을 70년도 각 수석비서관실 대항 배구대회에서 이끌었고, <재무부이재국 이재2과 축구팀>을 각과 대항 축구시합에서 또한 우승으로 <외환국 외화자금과 축구팀>을 다시 각과대항 시합에서 우승으로, 국고국장 시절에는 재무부 각국대항 종합체육대회에서 국고팀을 응원전을 포함해서 종합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런 화려한 승리 행진에다 이번에 또 다시 승리의 월계관을 썼던 것이다. 사실 중앙부처 중 그 누구도 조달청이 종합우승하리라는 것은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는데, 우승을 하고보니 내 내자의 격찬은 결코 단순한 격찬이 아니라 사실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현대적 청사신축

그때까지의 구 청사는 종로4가에 있었는데, 너무 낡아 구닥다리 건물이었다. 늘어난 가족 수에 비해 서로 어깨를 비비고 다녀야 할 만큼 협소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초동 성모병원 맞은 평 언덕 약 7,000평의 대지에 현대식으로 신청사를 지어 1984년도에 이전했다. 

지하에는 연금매장이 있고, 강당, 복지시설까지 갖추었다. 옷이 날개라더니, 신청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긍지가 넘쳐 얼굴이 모두 딴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마치 셋방살이를 하다가 제 집을 마련한 듯이 흐믓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부하 직원들이 좋아하며 하늘을 찌르던 그때 그 발랄한 사기를 지금도 회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조우회 조직 

무릇 공직자가 외부의 금전적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활안정과 장래의 희망이 보장되어야 함은 불을 보는 것보다도 뻔하다. 그러나 그 전까지의 조달청의 직원들은 직책상으로 다쳐서는 안 되겠다는 자기방어본능이 시나브로 팽배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공동체의식이나 유대의식이 결여되어 철두철미 자기보호에만 집착하여 기회만 있으면 타 부처로 탈출하려는 도피의식이 바닥에 무겁게 깔려 있었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조달청을 그만두는 사람은 완전히 조달청와 아무 인연이 없는 제3자로 치부해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부서는 그러하지 않았다. 예컨대, 세무직원이 그만두면 <세무회>에서, <경찰관>이 그만두면 <경우회>에서, 이들을 재직 시 이상으로 따뜻이 보살펴 복지혜택을 주었다. 일정한 보너스로 위로해주고, 산하기관에 취직도 알선해주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조달청도 그런 조직을 가져야겠다는 태동이 전부터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사업과 기금조달의 촉매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실현되지 못했다. 

나는 부임하자 이 오래된 숙원을 성취하기 위해서 현직 직원을 포함, 조달청을 사직한 옛 직원까지 규합해서 소위, <조우회(調又會)>란 것을 조직했다. 회 운영의 기금 조달은 회비로 충당했다. 현직 공무원은 월급의 일정액을 매월 기금으로 적립했고, 퇴직공무원은 희망에 따라 가입하고 회비를 내도록 했다. 
 
내가 조달청차장으로 부임해온지 두 달 정도 되 때였다. 뜻밖에도 청와대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아마 대통령께선 내가 청와대를 떠나올 때 신고도 받지 못해 내 근황이 궁금했던 것 같았다. 

나는 처음에는 가슴이 두근거렸으나 차분하게 조달청의 현황과 재직자의 사기 문제를 보고 드렸다. 특히 조우회를 조직하여 전, 현직 직원의 유대를 강화하고, 사업 이득을 공무원의 보너스에 더 보태주고, 자녀들의 대학 등록금도 보조해나간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자 대통령께서는 내 얼굴을 직시하면서 극구 찬양을 하였다. 그러고는 고맙게도 금일봉의 격려금까지 하사하시며 잘해보라고 당부하였다. 

나는 청와대를 나서면서도 그 망외(望外)의 격려에 어깨의 면적이 갑자기 넓어진 것 같은 긍지를 만끽했다 돌아온 길로 그 격려금을 청장께 내어놓았다. 그러고는 그 돈을 직원들의 사기진작에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나는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격려만으로도 광영이요, 명예였기 때문이다. 

청장도 감동으로 하고 손을 꼭 잡으며, 한층 더 잘해보자고 내 취지에 선선히 합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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