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욕의 세월들 (90회)
  제12장 내 인생의 오늘과 내일

비가 내린다. 창밖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전령사처럼 지적지적 혼자서 밤비가 내린다. 섬돌 앞에 오동잎과 떨어지는 밤비가 내린다. 

내일 아침 웃날이 들면 들말[野馬]은 한껏 살쪄서 돌아오고, 북넠 기러기 떼도 아침햇살에 찬란히 빛날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옷을 벗고 나목(裸木)이 되어 돌에 금이 가는 겨울을 맞을 차비를 서두를 것이다. 그 밤비 소리에 어느덧 자정을 넘었는데, 나는 혼자 앉아 내가 걸어온 근 80평생을 되돌아보며 이 글을 적는다. 

사위(四圍)는 온통 밤비 소리뿐인데, 내 인생의 갈피마다에는 많은 소리들이 두런두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난다. 그동안 긴긴 터널을 지나고, 하늘을 안고 도는 깊은 소(沼)를 건너뛰고, 때로는 백화(百花)가 다투어 피는 꽃길에 옥돌을 뿌리며 지나고, 붉게 타는 저녁놀 아래 희망의 노래 씨를 묻어 놓기도 했다. 

아, 지금 그 일들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니 강산이 일곱 번이나 옷을 갈아 입었구나! 그러나 내 손때 묻은 그 날들이 지금도 선하게 내 눈썹 끝에 밟혀온다. 송지마을에서 듣던 허굴산의 바람소리, 새소리, 내 어린 가슴에 천하를 호령한 기상을 심어준 용바위와 장군대, 그리고 나의 피가 예사롭지 않다고 음으로 양으로 가르쳐 주신 우리 집안 어른들, 아, 이 모든 것들이 이 밤에도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나의 배움을 보살펴주신 초등학교 권몽화 선생님의 따사롭던 그 목소리. 아, 이 모든 은혜와 사랑이 있었기에 내 유년시대는 결코 외롭지 않고 가난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는 이 순간에도 그 허굴산의 바람소리를 그리워하며 귀를 모은다. 

내 소년의 작은 가슴에 대지(大志)와 청운의 뜻을 폼게 한 삼가 드무실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비록 6.25로 깨어지고, 농토 소작권 문제로 송사까지 있었으나 그 드무실에서의 소년시절을 잊지 못한다. 

내 추억의 앨범의 다른 비탈을 살펴본다. 촌놈 소외한다고 반장을 조약돌로 측면 공격하다가 혼쭐이 났지만, 그때 가졌던 내 다단한 협기(俠氣)! 전소된 봉성관(鳳城館)을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고 가다가 첩자로 몰리던 때의 당돌함.

6.25전쟁 때의 쌕쌕이 폭격으로 선지피를 흘렸던 내 갸날팠던 팔뚝! 담임 배척 주모자로 다리 몽두라지가 부러지도록 기합을 받던 그 해거름의 비극! 어린 이성(異性)에게 때 묻지 않았던 미소를 던졌던 그 일들이 지금도 5색의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에 남들처럼 진학을 못해 좌절의 늪에서 토해낸 한숨. 향학의 길이 막혀버려 집안에 죽치고 앉아야만 했던 그 어둡고 가슴 아팠던 일들! 

멀리 뛰고 높이 오르기 위해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고, 중학 강의록과 월간잡지를 자간과 행간까지 외울 정도로 좔좔좔 탐독하던 그 시절, 그 날들을 잊을 수가 없다.

다시 앨범을 넘겨보자. 청운의 뜻을 품고 고추, 깨 판돈으로 추풍령을 울고 넘은 그때의 추억들! 그리하여 <학원>사를 찾아가 푸대접을 받고는 남산에 올라가 실의에 찼던 그 16세 소년의 차가운 한숨.

어찌 그것뿐이랴! 남산 직업소년학교에서 귀인을 만나고, 공군인쇄소 서울 연락소에서 은인들을 만나 주근야독을 한 찬란한 슬픔들! 전전하던 하숙집의 풍토병과 생리들이 어린 내 가슴에 멍이 들게 했다. 영예로운 덕수상고 시절, 이어진 고려대의 무시험 전 현 합격이, 내 인생에 새 장을 열어주었다. 

고대에서 맞은 4.19, 공인회계사 시험합격! 그 합격을 위한 피나는 준비시절. 반지를 사주려고 약속했던 첫사랑의 죽음 등이 내 대학시절 4년간에 부침(浮沈)된 역사의 유물들이다. 
 
▲ 공직에서 은퇴한 직후인 1993년 아내와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

또 앨범의 다음 비탈에 시선을 돌려보자. 대학을 졸업한 뒤 군대의 나팔소리를 듣던 병영생활, 결혼, 유니온셀로판회사에서 터트렸던 내 걸걸한 사자후(獅子吼)! 아, 이 모든 일이 지금도 한 장의 그림처럼 선하다. 

어찌 행정고시 합격을 잊을 수 있겠는가. 비록 삼현육각(三絃六角)은 잡히진 않아도 이 합격으로 내 인생의 명실이 보장되었다. 

그리하여 재무부에 첫발을 들이밀어 국록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31세의 젊은 나이로 청와대의 부름을 받아 부실기업 정리, 기업공개 등 실로 막중한 국가 경제정책을 실무자로서 수립 시행했던 일들이 인상 깊게 떠오른다. 그때 공명정대와 정의로 이 큰일들을 하나하나 다루었기이 나는 이 밤에도 스스럼없이 이 글을 쓸 수 있다. 

다시 앨범을 넘겨보자. 그 뒤 재무부로 돌아와 국고국장의 요직에 오르기까지 내가 흘린 그 땀들이 보람 있어, 나는 ‘국보위’ 재무분과 위원으로, ‘입법회의’ 경제전문위원, 대통령사정비서관으로 전전하면서 이 나라 경제개혁의 주역이 되었다. 

기대 밖으로 재무부가 아닌 조달청 차장으로 전보되었으나, 조달청의 위상 쇄신에 노력했다. 환경청장으로 재임 시에도 획기적인 시책을 많이 추진했다. 그 중에서도 팔당상수원 보호, 티타늄공장 건설 저지, 무연휘발류와 저공해자동차 생산보급과 김포지구 대단위 해안 쓰레기장 건설 문제 때문에 내 체중이 밤마다 내린 일들이 하나하나 지금 내 추억의 앨범을 딛고 달아난다. 

아, 이 붉으락푸르락한 인생사가 한 자락의 춘몽처럼 명멸하는구나. 이 과거의 대소사가 나의 청춘을 증발시켰고, 나는 어언 팔순고개를 올라가고 있다.

내 비록 지금은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으며 우거(寓居)에 칩거하지만, 결국 이것이 내 혼자만의 힘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페이터’의 산문으로 중언을 대신하려고 한다. 

참다운 지혜로 마음을 가다듬은 사람은 저 인구에 회자하는 호머의 싯귀(詩句) 하나라도 이 세상의 비애와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에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유자(阿諛者)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하는 자나,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길 자나, 모두 한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그들은 참으로 호머가 말한바와 같이 봄철을 타고 난 것으로, 얼마 아니 하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나무에는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이다.(중략)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혹은 기뻐하고 혹은 서러워하고, 혹은 괴로워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무한한 물상 가운데 네가 향수(享受)한 부분이 어떻게 적고, 무한한 시간 가운데 네게 허여된 시간이 어떻게 짧고, 운명 앞에 네 존재가 어떻게 미소(微小)한 것인가를 생각하라. 기꺼이 운명의 직녀(織女) 글로드의 베틀에 몸을 맡기고. 여신이 너를 실 삼아 어떤 베를 짜든 마음을 쓰지 말라. 

그렇다. 이 페이터의 말처럼 구(舊)는 신(新)에 의해 대체되고, 늙음은 젊음에 의해 대체되고, 선배는 후배에 의해 대체되는 만물 유전법칙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진리를 뒤흔드는 의식이 때때로 고개를 치밀었다. 
 
어려운 행정고시의 합격으로 직업 관료의 길에 들어선 사람으로서, 진심전력으로 젊음과 정열을 송두리째 일을 위해 바쳤다. 하늘과 양심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지내며 발버둥 쳐왔다. 이왕이면 장관까지 했으면 했는데, 너무 빨리 공직에서 도중하차한 느낌이 든다.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변환 중에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천하의 대세임에 틀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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