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신조와 건강관리 (92회)
  제12장 내 인생의 오늘과 내일

생활신조와 생활 반성

공직에 있을 때 내 생활신조는 한마디로 말해서 ‘독선겸제지행(獨善兼濟之行)’이었다. 이것은 맹자의 ‘진심장(盡心章)’에서 따온 다음과 같은 말에 말미암았다. 

무슨 일이 잘 안 풀려 궁색할 때는 홀로 제 몸을 닦는데 힘쓰고, 일이 잘 풀릴 때는 세상에 나가 좋은 일을 한다. (窮則獨善其身 達則兼善天下)

이 말은 맹자가 송구천(宋勾踐)에게 타이른 말이다. 

“당신은 천하를 유세하기를 좋아 하시오?” 
“예, 그렇습니다만.”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유세하는데 관해서 말씀 드리리다.”
“에, 부탁합니다.”
“제후들이 자기 말을 알아주어도 태연해야 하고, 설령 자기 말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태연해야 합니다.”

구천은 맹자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태연해질 수 있겠습니까?” 
“덕을 존중하고 의를 즐겨하면 태연해질 수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영달하면 은택이 백성들에게 가해졌고, 뜻을 못 이루고 궁해재면 자신의 덕을 닦아서 세상에 그의 덕행이 뚜렷이 나타났습니다.”

이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두 기준을 세웠다. 우선 주변에 정신적, 물질적 부담감을 주지 않도록 한다. 

주변의 친지, 친구, 선배 누구에게도 나로 인해 정신적, 물질적인 부담감을 드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임이나 행사에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하고는 일체 출입하지 않았다. 이 철저한 단절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인내는 제2의 천성이 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제해나갔다. 

다음으로 철저한 침묵과 함구였다. 

“침묵은 금이요, 영원한 웅변”이란 말이 있다. 말재주 있던 이솝은 그의 말재주 때문에 델포이 시민들에게 살해당했다. 

세상에는 필요 이상으로 언어를 낭비하고, 언어를 소모하는 수다쟁이가 많다. 물에 빠진 사람이 할 말은 단 한 마디 뿐이다. “사람 살려.”가 곧 그것이다. 그런데도 물에 빠진 동기를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물에서 건져주면 사례를 어떻게 하겠다고 말 하는 이도 있다. 실로 필요 이상의 언어들이다. 

더욱이 역사의 전환점에 서서 주역도 조역도 아닌 사람이 특히 국가의 주요 정무직을 지낸 사람이 해깝게 혀를 놀린다는 것은 나라나 겨레 발전에 조금도 도움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사람을 베는 도끼와 같고, 혓바닥을 지르는 칼과 같은 입과 혓바닥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된다고 생각했다. 위에서 든 두 기본 원칙을 이행하는 데는 거기 따르는 생활방식이 응당 필요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나의 그 당시의 생활 방식에는 궤도 수정을 하지 않았다. 즉, 공직 재임 시의 생활방식 그대로의 연장이요 지속이었다. 

아침 5시에 기상하면 8시까지 아침등산과 헬스클럽에서의 운동을 거르지 않았다. 그것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가 그때까지 해온 아침일과였다. 
 
▲ 아내와 등산행 (1993.)

아침식사가 끝나면 출근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정장을 하고 나의 좁은 서재로 출근했다. 나는 공직생활 중 마치 연수원에 가 연수를 받는다는 각오와 마음가짐을 가졌다. 

서재에 들면 잠깐 신문을 훑어보고 막바로 오전 독서에 들어갔다. 이리하여 3시간의 독서가 끝나면 점심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오후 독서 두세 시간에 들어갔다. 오후 일과가 끝나면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석간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얻었다. 

이런 엄격한 규칙생활은 제2 전성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길이었기 때문에 철저히 지켜나갔다. 

옥돌보다 귀한 건강관리

오랜 공직생활을 통한 내 신체의 혹사로 건강이 말이 아니었다. 

“내 모가지 잘리면 모든 것에 피리어드를 찍는다.”
아프리카 토인들의 속언이 나는 결코 헛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했다. 

사실 그렇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고 옛말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내 몸이 있어야 부귀영화도 있다.”

내가 사라져도 이 지구에는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해는 여전히 동에서 떠 서녘으로 질 것이며, 명동거리는 여전히 흥청거릴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사라진다는 것은 나만의 슬픔이요,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은 고뿔만도 못한 것이 된다. 건강은 초산(楚山)의 옥돌보다도 귀한 것이다. 내 일과 속에다 규칙적인 운동을 짜넣고, 주일마다 산행을 하느라 삼각산을 온종일 누볐다. 

폭넓은 독서로 인생의 실지 회복 

만약에 이 지구촌에 책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섬쩍지근한 이야기다. 아, 책이 없다면 정치가는 절름발이가 되고, 경제인은 곰배팔이가 되고, 학자는 장님이 되고, 예술가는 귀머거리가 되고, 종교가는 미치광이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책을 통하여 5000년 전의 공자와 맹자를 만날 수 있고, 수륙만리(水陸萬里)밖의 에디슨이나 링컨과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기에 씻은 듯 가난해도 진나라의 차윤(車胤)은 반딧불로 책을 읽고, 손강(孫康)은 눈빛으로 책을 밝혀 읽었으며, 김일손(金馹孫)이 한퇴지(韓退之)의 문장을 백번이나 읽었고, 나폴레옹도 진중(陣中)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탐독했다. 

나는 고학하느라, 시험위주의 전문 과목에만 치우쳐 폭넓고 풍부한 인간적인 학문과는 소원(疏遠)되어 인생경륜(人生經綸)에 많은 실지(失地)가 생겼다. 나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인생실지를 회복하기 위해서 동서의 명저를 구해 다양한 독서를 하기로 했다. 
 
나는 독서의 범위를 다음 넷을 나누어서 체계적으로 읽기로 했다. 

첫째, 유사 이래 우리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느냐를 밝힌 역사 관련의 서적들.
둘째, 우리 인류가 어떻게 그 삶의 가치를 추구해왔느냐를 밝힌 철학 관련의 서적들.
셋째, 우리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밝힌, 이른바 유심론적(唯心論的), 관념론적(觀念論的)인 종교부분 서적들. 
넷째, 이 유심론적, 관념론을 부인하는 유물론적(唯物論的)인 사회주의 계통의 서적들.
 
그러나 그 실행과정에서 여러 애로점을 발견했다. 처음엔 독서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시간가는 줄조차 모르는 즐거움과 동시에 주기적으로 엄습해오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에 나 혼자 살고 있는 듯한, 그런 고독감과 절망감이 나의 눈빛을 흐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해인사의 뜻 높은 스님 한분이 걸어주시던 정겨운 전화를 상기하고, 책에서 얻은 금언이나 격언을 되새기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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