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처럼의 합의로 이룩된 이 사업을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마무리 짓는 것이 가장현명하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서 청장이 바뀌어도 이 정책이 후퇴되지 않으려면 대금을 완불하고 소유권이 정부로 이전되어야 안심이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내가 환경청을 떠난 뒤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런 등등의 오해와 반대 의견들을 적은 투서도 있었고, 국정감사 등 여러 측면에서의 조사도 있었다. 관련공사의 수의계약 문제도 흐지부지 제대로 안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었다.
현실적으로 450억 원으로 매입한 그 땅이 현 시가로 3조원이 넘는다니, 얼마나 땅값에서 국가가 이득을 가져왔는가! 만일 오늘날 그런 매립장을 만들자면 당장 국가 총예산액의 10분의 1을 수도권 쓰레기장 구입 토지 값으로 지급해야 될 판이 아닌가!
단계적 사업으로 300년 이상 사용 가능한 영종도와 강화도를 잇는 해안매립쓰레기장이 건설되어 쓰레기는 물론 국토의 확장, 농공단지, 관광단지 개발도 가능하게 될 테니 참으로 국가사업으로서도 큰 의미가 있는 대역사(大役事)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러기에 모 책임이 있는 분이 그 뒤 이 현지를 둘러보고, 나를 만나 극구 찬양을 한 일이 생각난다.
“우리 공직자가 이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었던가? 옛날 같으면 박 청장 공덕비라도 세워줄 만한 일이더군!”
그 당시 내한한 바 있는 유엔환경계획(UNEF) 톨바 사무총장에게 이 계획을 소개하였더니 정말 부러워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세계 최대의 매립지이며 환경보호의 거대한 진일보”라고 평가하였다. 결코 공치사가 아니다. 이 김포, 영종지구 대단위 쓰레기. 해안 매립장 건설계획은 100년, 200년 이후에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될 것이라고 나는 자부하고 있다.
기타 추진사업
환경문제 해결은 행정적으로는 종합행정이어야 한다. 즉, 모든 부처와 중앙부서가 관련된 종합행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모든 부처의 정책과 관련된 종합정책이라야 해결된다. 한편 기술적으로는 한 분야의 기술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고, 종합과학이라야 소기의 해결이 가능하다.
이상과 같은 시대적인 지상과제를 감안하여 1987년 1월 23일 국내 16개 환경관계 학술단체가 참여한 <한국환경과학연구회>를 발족시켰다. 이때 그 협의회에 참여한 학회는 한국기상학회, 대기보전학회, 독성학회, 수질보전학회, 육수(陸水)학회, 음향학회, 자동차공학회, 폐기물학회, 해양학회, 대한환경학회, 한국환경농학회, 환경독성학회, 환경성돌연변이 발암원학회, 환경법학회, 환경생물학회, 환경위생학회 등이며, 초대 회장은 홍순우(洪淳佑) 서울대 교수가 선출되었다.
이 협의회의 발족으로 학회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와 정보교환이 원활하게 되었으며, 정부에서도 3억 원의 연구활동비를 지원해주었다. 이로 인해 학자들이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내 눈에 선하다.
1987년부터 환경문제에 대해 국제적 시각으로 차원을 높여 국제환경연구단체와 상호협력을 위해 국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협정 등을 체결했다.
1987년 11월 2일, 한ㆍ미환경보전협약을 체결하고 그날부터 4일까지 제1회 한ㆍ미환경보전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1988년 제1차 한.일간 과학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이 심포지엄에는 두 명의 중국인 전문가도 함께 했으며, 앞으로 이런 심포지엄이 지역공동 환경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기적으로 개최되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중국을 포함하여 동 지역 인접국이 이 심포지엄에 참석하도록 한다는데 합의했다.
이 합의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서울에 산성비가 내렸는데, 그 산성비의 원인의 하나가 중국이나 북한에서 대기오염 물질이 이동해오기 때문일 것이라는 의문을 가지고 백령도에 대기측정반을 설치해서 측정해본 결과 과연 그러한 의문이 사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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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만산만살리기'대회를 마치고 방송사와의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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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 와 유엔환경계획기구(UNEF)에 관계관을 파견하여 정보자료의 수집과 전문인을 양성하는 한편, 각국의 전문가 초청 및 해외연수 등으로 선진기술 도입을 꾀했다. 한국정부는 오존층 보호를 위한 몬트리올 의정서와 비엔나 협약 및 유해폐기물의 국가 간 교역통제협약에 가입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밟았다.
이후 환경보전 장기목표를 설정했다. 다시 말해서 1982년부터 추진한 한강, 낙동강유역권 및 서남해권 조사사업 등 전국종합계획 사업을 완료, 환경보전 장기종합계획을 완성했다. 특히 환경청을 장관급 부서로 승격시키기 위한 기구, 인력, 법령, 업무 영역 등 모든 준비자료를 완료하여 행정개혁위원회에 제출하고 나는 환경청을 떠났다.
그 후 환경청은 승격했다. 자고로 예외 없이 집을 지은 자는 그 집에 살지 못한다는 진리를 실감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행복이나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혼자 가질수록 작아진다는 그 시쳇말대로, 비록 내가 떠나도 남은 직원들을 위해 좋은 일이 아니냐고 자위했다.
어느 등산가의 말도 생각났다. 그 등산가는 고산의 대피소나 산막에서 자고 떠날 때는 꼭꼭 뒤에 올 등산객을 위해 따뜻하게 지필 나무를 미리 마련해놓고 간다고 했다. 자신은 떠나더라도 뒤에 올 다른 등산객을 위해 땔감을 미리 준비해놓고 간다는 것이었다.
이쯤해서 태국 방콕시장 ‘잠롱’ 씨의 인품이 우러러보이는 일화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인구 600만의 살림을 맡고 있는 태국의 방콕시장이 사글세방을 전전하다 못해 최근 허술한 피복제조공장 창고를 사저 겸 침실로 세 들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방콕 시민과 공무원들은 시장을 위한 집 지어주기 운동을 추진했다.
방콕 부시장 위차 지알라이는 29일 태국의 모든 지방 장관들이 관저가 있는데도 유독 수도 방콕의 잠룡 스리무앙 민선시장만이 관저는커녕 그가 살아갈 집 한 칸 없는데 대해 부하직원으로서 민망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면서, 그를 위해 새집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육군소장 출신의 잠롱 시장은 집을 짓더라도 그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 짓지 말라고 했다. 그는 집을 짓더라도 그의 후임 시장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짓되, 그 비용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도 잠롱 시장이야말로 이 지구촌의 모든 공직자들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 위인임에 틀림없다.
잠시 당시의 국내외 정세를 살펴본다. 1987년 1월 15일엔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북한의 김만철(金萬鐵) 씨 일가족 11명이 북한을 탈출하여 일본에 억류되어 있다가 대만을 거쳐 2월 8일 서울에 정착했다. 5월 1일엔 이민우(李民雨) 구상에 반대해온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씨는 신민당과 결별을 선언하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6월 10일에 있은 ‘6.10대회’로 전국에 확산된 민주화 대항쟁은 대학생, 시민 참여의 ‘6.26민주대행진’으로 이어졌다. 6월 29일에는 노태우(盧泰愚) 민정당 총재가 직선제 개헌을 선언하고, 대폭적인 사면 복권 등 시국수습대책 8개항을 선언한 ‘6.29선언’이었다.
7월 21, 22 양일간에는 사천지방에 673mm의 집중 폭우가 쏟아져 140명 사망에 이재민 25,000여명을 내었고, 8월 29일엔 ‘오대양집단변사사건’이 일어났으며, 10월 12일엔 국회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고, 27일 국민투표에서 93.1%의 지지를 얻어 확정되었다.
11월 12일 민주당을 탈당한 김대중 씨는 평화민주당을 창당했다. 11월 29일엔 115명의 희생자를 낸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 폭파사건이 일어났으며, 12월 16일엔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