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이 변화를 가져온다 (87회)
  제11장 새출발을 위한 준비 태세

IDAS는 우리 사회 각계의 최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핵심리더들에게 디자인 혁신 경영의식을 확산시켜 혁신의 전기를 마련하고 우리나라를 디자인 강국으로 변모시켜 세계 중심국가로 만들기 위한 목표로 뉴밀레니엄∙디자인 혁신 정책과정((Design Innovation for Policymakers : DIP))을 개설하여 199년 3월에 제1기 입학식을 가지게 되었다. 

21세기를 이끌고 갈 우리의 핵심리더 그룹들이 디자인 경영의식의 함양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뉴밀레니엄과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작지만 의미가 대단한 큰 사건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정치적 의도가 아닌지” 등등 내외의 따가운 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한분 한분을 소중하게 그리고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마음으로 성심을 다하여 영입하고 순수한 열정으로 교육효과 극대화에 최선을 다하였다. 

교육프로그램도 디자인의 새로운 이해, 경영자원으로서의 디자인, 디자인과 문화, 디자인 강국만들기 등 크게 4개 모듈로 나누어 각 분야별로 최고의 강사진과 해외의 석학을 모셨으며, 특히 반별 프로젝트 운영, 현장수업, 국내외 디자인 기행 등을 통하여 다른 교육과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산경험과 변화를 체험하게 하였다. 

뉴밀레니엄과정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남식 부총장이 주임교수를 맡아 좋은 강사를 섭외하는 동시에 맛깔나는 강의요약과 질의응답을 통하여 강의 내용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외국인 강사에 대해서는 즉석 통역도 해내었다. 나는 이 부총장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총장으로서의 큰 긍지와 자부심을 느꼈다. 

당시로서는 가장 높은 수준의 등록금을 내고 왔으나 많은 분들이 강의 내용 중에서 영감을 얻어 등록금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해주셨고, 강의를 경청하고, 메모를 하고, 밤 10시가 넘도록 질문하고 토론하는 진지한 수업태도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감동적인 모습들이었고, 강의내용을 전사적으로 확산시켜 디자인을 핵심적인 경영이념으로 정착시켜 나가는 모습을 도처에서 볼 수 있었다. 

역시 우리 시대의 리더들이라 한분 한분으로 배울 점도 많았으며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여 반별 프로젝트의 경우 열띤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여 외부에서 스튜디오를 빌려 뉴밀레니엄 과정을 잘 알리는 홍보 동영상을 직접 출연하여 제작하기도 하였다. 

오너들이, 디자인이 미래를 어떻게 바꾸는지 알게 되자 그 신선하고 놀라운 내용을 중역들에게 전달하고, 중역들은 중간 관리자들에게 전달하고, 전달이 어려운 분야는 해당 간사들을 직접 초빙해서 강의를 듣기도 했다. 

실질적인 변화가 기업에서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나 LG전자에서 디자인센터의 위상이 높아지고 상무에 불과했던 센터장이 모두 부사장급으로 격상되었으며 외곽에 있던 디자인센터가 강남으로 이주하는 시대를 열었으며 해외 바이어들에게 기업역량을 알리는 중요한 창구가 되었다. 

한편 많은 분들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회원이기도 했는데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산업디자인특별위원회>가 설치되어 회원사들에게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리게 되었다. 많은 기업들의 오너들이 디자인 경영을 도입하였으며 오너가 변화되니 말단까지 다 변할 수 있었다. 정부의 고위 공무원들을 교육시켜 전파하도록 하자 지방자치단체들도 변해갔다.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다. 

‘뉴밀레니엄 과정은 LA의 해외 오너경영자들을 포함해 350여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하면서 처음의 약속대로 4기로 마감하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리더 대부분이 수료하였으므로, 우리는 전문 경영자와 중소기업경영자들을 대상으로 ’뉴비전 과정‘을 만들었다. 내가 4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300여명이 수료하였다. 이들은 졸업 후에서 IDAS 동창회를 발족해 활발한 디자인 의식 확산운동을 했고, 이들의 활약은 대한민국의 디자인 강국 운동으로 이어졌다.  
 
▲ 뉴밀레니엄 LA졸업생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하여 이희호 여사와 기념촬영 / 이희호 여사 오른쪽은 장대환 매일경제 회장이다

LA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느꼈던 감회가 새삼 떠오른다. 맨손으로 미국에 이민하여 몇십년 동안 온갖 고난을 이기고 성공을 일군 LA의 기업인들 35명은 LA현지에서 일주일간 매일, 종일 강의 위주의 교육을 받고, 국내로 들어와서는 강의와 산업현장 방문을 병행하며 IDAS의 실감나는 산교육을 통해 조국의 산업역량과 미래 비전을 접할 수 있었다. 

과정을 수료한 후 당시 김대중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초청으로 청와대에서 다과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들은 수료 후 조국의 발전된 모습과 변화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격해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큰 보람을 느꼈다. 

특히 장정헌 회장은 학생모집 과정에서부터 나를 도와 많은 역할을 하였고, 졸업 후에서 LA IDAS동문회장을 맡아 LA지역 경제계는 물론 지역사회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몇 년 전에는 감동적인 자서전을 펴내 성대한 출판기념회에 내가 축사를 하는 보람을 갖기도 했다. 

뉴 밀레니엄 새로운 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시대의 변혁을 주도했던 디자인 혁신운동이 있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본격적인 산업사회로의 전환기인 1919년 독일에서 일어난 바우하우스 운동은 근대  디자인 운동의 효시로서 근대의 산업,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바우하우스 운동은 <디자인 교육운동>이자 예술과 기술을 결합하여 생산성을 높여 국가의 부(富)를 증대하고 국민들에게 좋은 품질의 제품을 공급하여 생활의 수준을 높이는 <국민운동>이었다. 이 바우하우스 운동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의 디자인 운동이 바로 IDAS운동이라 할 수 있다. IDAS의 졸업생들은 그들이 이끄는 그룹과 기업과 제품 그리고 콘덴츠 등에 대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와 변혁을 시도하고 있다. 

장대환 매일경제 회장은 매일경제신문을 통한 역할 외에 1기 학생회장으로서 이청승 회장의 보필을 받아 초기 학생회의 단합과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IDAS 총동창회 발족 후에는 초대 동창회장으로서 IDAS운동의 기초를 다지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홍라희 호암미술관장도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사장과 함께 초기 여학생 모집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졸업 후에는 제2대 동창회장을 맡아 IDAS운동을 더욱 활성화 시켰다. 

홍 관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확신한다.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사장은 <행복이 가득한 집>을 통해서나 리빙페어 같은 각종 전시회, 광주비엔날레 같은 각종 행사의 측면 지원 등으로 IDAS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큰 보람을 느끼며 앞으로도 더욱 큰 발전을 기원한다. 

다 큰 어른들이, 그것도 재벌총수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즐겁게 경쟁하면서 서로지지 않으려던 송년회 반별 게임은 더욱 기억에 남는다. 

특히 당시 반장이었던 태평양그룹 서경배 회장이 손수건으로 모두 모자를 만들어 씌우고 끝까지 무대에서 진두지휘하던 재미나는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로 그런 열정과 적극성이 오늘의 태평양화장품 그룹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은 동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렇게 현재 우리 경제의 심장부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거의 IDAS갸 배출한 디자인 혁신의 주역인사들이라 자부한다. 이렇듯 우리나라 디자인 혁신사에 한 획을 긋는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는 이후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IDAS 4년 간 5기의 졸업생을 배출하는 동안, 총장인 나도 막내딸 결혼식을 빼고는 한 시간도 빼지 않고 강의를 듣고 그 자리를 지켰다. 총장이 교육현장에 앉아 있으니 교수도 강의에 신경을 더 쓰게 되고 학생들도 함부로 결강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다보니 해외출장이 아니면 결강하는 이가 없을 정도로 면학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나는 총장이면서 1기 졸업생으로 동창회 모임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여행도 디자인 견학도 그들 모두 함께 다녔다. 세계 대학 역사상 이런 총장은 아마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리더들이 참여한 IDAS운동 (86회)
  IDAS운동에 이은 NGO 활동 (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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