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온셀로판회사 (42회)
  제6장 국록을 먹던 공직의 바벨탑

내가 이재1과 사무관으로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아침 등청하여 무심코 과장님 책상 앞으로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 책상 위에 시선이 떨구어졌다. 책상 위에는 한 건의 서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서류를 유심히 바라보고 놀랐다. 뜻밖에도 유니온셀로판회사의 서류였다. 나는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니온은 좋으나 궂으나 얼마동안 몸을 담아 근무했던 회사였다. 이 순간 내 호기심은 극도로 발동되었다. 

“과장님, 이게 무슨 서류입니까?”
“응, 알 것 없어요.”

과장은 찬물을 끼얹듯 냉정하게 내말 허두를 자르고는, 그 서류를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수록 못내 좀이 쑤셨다. 도저히 그냥 돌아설 수 없었다. 

“과장님(김창희), 전에 이 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응, 그래요? 그것 참 잘됐군! 실은 저 위에서(청와대를 지칭) 민원으로 접수한 것인데, 근무했으면 누구보다 잘 알겠군. 한번 잘 검토해보세요.”

그때사 과장은 마치 원병(援兵)을 얻은 듯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즉각 그 서류의 검토에 착수했다. 그 회사에 대해서는 내가 근무했던 곳이라 공장 배치까지도 알고 있었기에 어느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가장 주요 경영분석 비율은 물론, 장래 수익성과 사업전망까지 검토했다. 이 보고서를 먼저 과장께 보고했더니, 과장은 잘 되었으니 이재국장(장덕진)에게 직접 보고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얻어 국장실에 보고하러 들어갔다. 

“아니, 이것을 박 사무관이 검토했단 말이요?”
“예, 그렇습니다."
“김 과장 오라 그러시오.”

나는 너무나 뜻밖이었지만, 과장에게 그 말을 전했다. 과장이 들어서자 국장은 과장에게 버럭 역정부터 내었다. 

“아니 김 과장, 이 중요한 사항을 제대로 훈련도 되지 않은 엊그제 들어온 사무관에게 검토시키면 어떻게 합니까?”

이 소리를 듣자 나는 화가 나서 국장실을 나와 버렸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새벽 6시에 나는 이재국장 방 입구에서 국장이 출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근시간이 되자 국장이 등청했다. 

“국장님 보고서가 잘 되었는지 아닌지는 일단 보고를 받아보시고 판단하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 소리를 듣더니 국장도 비로소 납득하는 눈치였다. 나는 겨우 보고하는 기회를 얻었다. 보고 도중 국장은 점점 눈이 휘둥그레지는 것 같았고, 보고 내용에 깊이 빨려들어 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 재무부 사무관 시절 / 오른쪽에서 2번째가 필자이다

“내가 박 사무관을 잘못 생각했는데, 참 잘되었습니다. 이것이 20여 페이지는 되는 것 같은데, 맨 앞에 2페이지 이내로 요약서를 붙이시오.”

나는 분명히 그의 얼굴에서 읽었다. 어제의 일이 잘못되었고, 후회와 미안한 표정이 역력하다는 것을....... 이 보고서는 윗사람으로부터 대단히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 자신이 공인회계사인데다가, 회사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경영분석 차원에서 소상히 분석 보고된 것은 그것이 지금까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니온셀로판회사가 또 다시 내 운명을 갈음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전기가 될 줄은 그 당시로서는 전혀 몰랐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는 차관업체(借款業體)의 문제점 검토와 처리는 대체로 주무가 되어버렸다. 

여기서 잠깐 기업체의 문제점이 발생했을 때, 왜 정부가 이를 검토하고 처방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경제개발에 있어서 3대요소라 한다면, 우리는 흔히 자본, 기술, 인력 등을 들고 있다. 우리가 1960년대 초반에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 시행할 때만 해도, 축적된 자본도 기술도 훈련된 인력 특히 기술자와 경영자 등 모두를 거의 가지고 있지 못했다. 

거의 맨주먹 상태에서 의욕적인 경제개발계획을 수립 시행하면서, 우리의 전략은 자본과 기술을 외국에서 도입해오기로 하고, 필요한 내자(內資)는 금융기관을 통해 융자 지원해주었다. 기업이 창업되고 나면, 일정기간 동안은 조세감면 혜택도 주는 등 그야말로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할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한편 인력 면에 있어서는 기능공과 기술자는 물론, 경제인과 경영자도 충분히 양성되어 있지 못했던 시기였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기업경영의 경험이 없었던 사람도 정치적 연결이 잘 닿으면 가끔 가다가는 차관(借款)이나 기술도입을 승인받는 경우도 더러 있었던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었다. 

외국으로부터 공공차관이든 상업차관이든 차관도입 승인을 받을 경우에는, 정부나 거래은행이 향후 차관권리금 상환에 대한 지급보증을 하는 것이 관례였다. 외국의 차관을 제공해주는 측에서도, 한국기업의 상환능력을 믿을 수 없었으므로 반드시 정부나 유수한 은행의 지급보증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던 때이다. 

이러한 상황과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우리 경제는 1차 5개년계획 기간 중 연 10% 이상의,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고도성장을 지속했다. 내가 이 업무를 취급하고 있을 때(1969년)에는 2차 5개년계획이 의욕적으로 추진되면서, 우리 경제는 산업구조의 근대화와 고도화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정부나 국책은행이 지급보증한 차관업체가 당초 계획한대로 잘 안되어 대불(代拂)이 발생하거나 대불이 명백히 발생될 우려가 있는 업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만약 이 같은 업체를 민간기업이니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방치해둔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1차적으로 은행이 파산할 것이고, 2차적으로는 정부도 파산하여 경제개발계획이 더 이상의 추진은 물론, 세계경제무대에서 더 이상 설 수조차 없는 3등국가로 전락될 운명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책임이 있다 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경제전문 용어로 말하면 ‘정부주도형 경제’ 운용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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