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5개년계획과 부실기업 (43회)
  제6장 국록을 먹던 공직의 바벨탑

다시 이야기를 되돌리면, 내가 이재1과에서 유니온셀로판회사를 검토하여 높은 평가를 받은 뒤에도, 이와 유사한 차관 지급보증업체의 문제점을 검토한 것은 10여 곳 이상 달했다. 이들 업체는 한결같이 사업의 정체성과 전망이 어두운데다가, 취약한 자기자본마저도 이미 다 잠식되었고, 추가자금 조달능력도 전혀 없는 업체들이었다. 

차관 원리금 상환일도 이미 닥쳐, 이미 은행이 대불을 했거나 앞으로 대불이 명백해진 극한의 상황에 있는 업체들이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업체가 얼마나 더 생길지, 이러다가는 우리 경제가 겉으로는 고도성장이니 근대화니 그럴싸하게 구호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다 썩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70년대 들어가면 2차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되고, 3차 계획의 집행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때가면 그동안 지급보증한 차관 원리금 상환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고, 이를 정상적으로 갚으려면 개별 기업이 잘 운영되고 수출액이 급속히 증대되어야 하는데, 이를 담당할 주역인 기업이 이렇게 부실이 된다면 큰 일 아닌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지금까지 검토한 10여곳 이상의 기업체에 대한 보고서를 총괄하여, 심각한 문제점을 분석, 이재국장에게 보고했다. 이재국장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장관(황종률)에게 보고했다. 장관의 놀라움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관은 개탄의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들에게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슬기로운 방안을 하루 빨리 강구하도록 지시했다. 

“지금 국민들은 우리가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1, 2차경제개발5개년계획이 매우 순조롭게 잘되어 가고 있다고 믿고 있소.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믿고, 이 나라를 하루속히 빈곤으로부터 해방하여, 당신의 통치철학인 ‘조국근대화’를 예정보다 앞당길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소. 앞으로 우리의 당면과제는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양적인 경제의 고도성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경제의 질적 발전에 있소. 그러려면 기업 하나하나가 충실한 자기자본을 축적해가면서, 안정경영과 생산성을 높여가야 할 것이오. 그런데도 이런 기업들이 부실해지고, 급기야는 지급보증한 차관원리금까지 은행이나 정부가 대불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큰일이니, 외자 차관업체 전반에 대한 실태를 면밀히 조사, 이 같은 사태에 대한 종합적인 대처방안을 마련, 대통령 각하께 보고하고, 전 정부적 차원에서 대처해야 할 것이오.”

황 장관의 지시가 있은 뒤, 우리는 즉각 실천에 들어갔다. 우리 산업은행에 주요기업체 조사사무국을 설치하고, 정부 책임을 내가 맡게 되었다. 업무의 중차대한 성격으로 보아 나 같은 신출내기 사무관이 맡기에는 실로 그 책임이 막중하다고 느껴졌다. 

조사 임원은 재무부 13명, 한국은행 5명, 산업은행 30명, 중소기업은행 2명 등으로부터 차출된 50명으로 구성되었다. 조사대상 기업은 1차로 정부지급보증 차관업체와, 은행관리기업은 83개 업체로 하고, 2차로는 시주은행 지급보증업체와, 은행관리기업 등 80개 업체로 하고, 2차로는 시중은행 지급보증업체와 거액연체업체로 확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나라 산업 전반에 걸친 부실기업 정리대책을 수립하도록 했다. 

조사 방법은 재무부장관과 산업은행 총재 연명의 협조의뢰 공한을 미리 발송하고, 조사요원이 직접 현지에 출장해서 조사했다. 조사 기준일을 1969년 12월 31일 현재로 정하고, 1969년 2월 24일부터 1개월여에 걸친 실시된, 조사결과는 여러 날의 분석 토의를 거쳐 마침내 4.6배판 647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그것을 40여 페이지로 차트로 만들었다. 대통령께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 보고서를 간단히 요악해본다. 

첫째, 자기자본이 너무 취약한데다가, 그나마도 자기 자본을 완전히 잠식해버린 회사가 83개사 중 28개 사에 달했다. 자기자본을 잠식했다는 것은 회사 자산을 다 팔아도 그 회사의 부채를 갚는 데에도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재무부 사무관 시절

둘째, 타인자본부채 구성에 있어서도, 차관과 금융기관 차입이 83개 기업 평균이 70% 이상이나 되고, 고리사채도 상당히 많아서 제품의 원가 중 금리 부3담의 비중이 너무 높았다. 
 
셋째, 기업의 규모가 영세하여, 국제규모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경제단위에도 미달하는 기업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시설이 낙후되어 있거나, 일부 업종에 있어서는 공급과잉 상태에 있기도 했다. 

넷째, 전력비 단가가 국제가(國際價)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서, 금리부담과 더불어 원가고의 큰 원인이 되었고, 전반적으로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다섯째, 이들 여러 요인으로 인해 매년 결손이 되어, 결손누적업체는 83개 업체 중 무려 50개 기업에 이르렀다. 

이 보고서는 또한 83개 조사대상 기업 중 46개 기업은 별도 대책이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판정하고, 나머지 37개 기업에 대해서는 특별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언제나 대불이 불가피하여, 우리 경제 운용에 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진단했다.

한편 별도 대책을 요하는 기업체 37개도 다시 분류했다. 이미 대책을 강구 중에 있는 기업체 8개, 특별 지원 등 육성대책을 강구하여 소생 가능한 업체 14개, 어떠한 경우에도 소생이 불가능하여, 정리 처분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있는 기업 15개로 산업정책적 측면에서 적극 육성이 필요한 기업에 대해서는, 융자나 지급 보증을 한 금용기관 책임 하에 경영을 정상화하도록 했다. 

정리 지분을 요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자체증자, 합병이나 기타 육성방안을 권고하되, 일정기간까지 이행되지 않을 때에는 성업공사에 이관하여 경영주체를 변경토록 했다. 사업전망 자체도 좋지 않아, 희망이 전혀 없는 업체는 즉시 성업공사에 이관하여 과감히 정리처분토록 했다. 

마지막으로는 개별업체별 상황과 대책방향까지도 요약 첨가했다. 대체로 이 같은 내용을 장관께 보고했더니, 장관은 마침내 노여움을 터뜨렸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이렇게 싹이 곪아 들어가는 것을 그대로 두면 여기에 물려 있는 몇 은행의 파산은 물론, 국민경제 운용에 중대한 주름살이 가지 않겠소? 곧 부총리와 집권당(공화당) 재무분과위원 연석회의에 우선 보고해서, 의견을 모아봅시다.”

며칠 뒤 이른 아침에 열린 연석회의에서 보고했다. 회의 분위기는 대단히 심각했고, 토의 내용도 진지했다.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경제개발이 잘 되어간다고 해도 정부에서 큰소리 치기에, 우리는 국회에서 손을 번쩍 번쩍 들어주고 지원을 해주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요? 아 글쎄, 오늘 아침 이렇게 갑자기 곪아 터질 정도로 나빠진거요?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해요. 국민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차관업체가 이렇게 빈껍데기가 되고 있다고 국민들이 알아봐요. 속빈강정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이지. 이건 정권이 무너지는 중대사요. 이거야 원 큰일이군! 귀신도 곡할 노릇 아니오? 재무장관, 어떻게 책임 질 거요?”

어느 성질 급한 의원의 노발대발하는 고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이 신랄한 공격발언으로 회의장은 사뭇 무거운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면목 없습니다. 제가 책임지라면 지겠습니다.”

장관의 침울한 답변이었다. 결국은 내용을 조금 조정하여 다음날 아침에 대통령께 보고 드리기로 결론이 나고 회의는 끝이 났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대통령께 보고드릴 일정이 잡혀 있었으므로, 짐을 챙겨들고 부랴부랴 무교동에 있는 스타다스트호텔로 밤샘 조정작업을 하기 위해 들어갔다. 그날 밤 자정이 넘어서는 장덕진 이재국장도 작업에 합류하여 진두지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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