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특별정리반_1 (44회)
  제6장 국록을 먹던 공직의 바벨탑

다음날 새벽 3시경에, 뜻밖에도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황종률 장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모든 문제는 내가 책임을 지겠소.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어제 연석회의에 보고한 내용을 수정 없이 원안대로 보고하도록 합시다. 대통령께는 정확한 실상을 보고하는 것이 오히려 그 분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되오. 여러분들이 고생한 보람도 있는 것이고.”

황 장관의 전화내용을 전해 듣자, 우리는 모두 환호를 질렀다. 전파를 타고 흐르는 장관의 목소리는 약간 흥분된 듯 떨리기까지 했다. 

우리들은 장관의 그 과단성 있는 판단에 모두 경의를 표했다. 우리들이 그동안 땀 흘려 만든 작업도 작업이지만, 우리들의 정의와 진실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던 나라 걱정의 충정이, 수정 없이 그대로 최고 통치권자에게 보고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모두 고생한 것이 다 잊히고 날아갈 듯이 기뻤다. 보람과 긍지로 가슴이 꽉 찼다. 그 순간 조고(趙高)의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가 머리를 스쳐갔다. 

진나라 조고가 난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군신이 두려워하여 듣지 않았다. 조고는 군신들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사슴 한 마리를 2세에게 바치며, ‘이것이 말이요’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2세는 껄껄 웃으며, ‘그건 승상이 틀렸소.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오?“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고는 다시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좌우의 사람들은 대답을 하지 않는 자도 있는가 하면, 조고에게 아첨하는 자는 조고 말대로 그것이 말이라고도 했다. 개중에는 사슴이라고 바른대로 말하는 자도 있었는데, 조고가 뒤에 이들을 몰래 죽여 버렸다. 그들이 군신이다 조고를 두려워했다. 

<진시황기(秦始皇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순간, 죽음을 무릅쓰고 사슴을 사슴이라고 바른대로 말한, 그런 신하들에게 무한한 찬사를 보냈다. 장관님의 그 결단과 인품이 바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어진 신하를 연상케 했다. 진실로 교언영식(巧言令色)이나 지당대신(至當大臣)이 우글거리는 조정은 많은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는 법이다. 그러나 직언이 성행되고, 사간원이 건재할 때, 그 왕은 어진 군주가 되는 것은 우리가 역사에서 더러 보아오지 않았는가.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우리 장관님같이 염의(廉義)를 알고, 바른 성품과 용기를 지닌 어른을 모셨다는 기쁨에 취했다. 사실 모든 것은 지나가도 진리는 남고, 도금(鍍金)은 벗겨져도 돼지 껍질은 남는다. 아무리 일과성인 미봉책으로 그 진실을 은폐한다 해도,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어느 때 건 그 진실은 자루 속에 든 송곳처럼 바깥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나는 장관님의 이 용단을 듣자 중국 후한(後漢) 때의 양진(楊震)을 또 연상했다. 

양진이 일찍이 그의 친구 왕밀(王密)을 천거하여 벼슬에 오르게 했다. 왕밀은 뒤에 양진이 하도 고마워, 금 10근을 사례로 보낸다. 양진은 노발대발 왕밀을 책망했다. 왕밀이 “지금 어두운 밤중인데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양진은 “하늘이 알고 신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다고 하느뇨!” 하고는 이 금을 끝내 받지 않았다. 

이것이 저 유명한 사지(四知)의 고사이다. 이 양진에 못지않은 이 나라의 정포은(鄭圃隱)이나, 조선의 세조를 탄하는 <조의제문(弔意帝文)>으로, 부관참시를 당한 김종직(金宗直)과 같은 분이 우리 역사에서도 높이 빛을 발하고 있다. 
 
지금 그 장관님은 고인이 되셨지만, 후손도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뜻과 정신만은 공직에 몸 담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젊은 사무관이었던 내 가슴에 깊이 새겨져, 오늘에까지 어김없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삼가 그 어른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치고 명복을 기원 드린다. 

이튿날 이 내용은 예정대로 그 원안 그대로 박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 그 결과 청와대에 <부실기업특별정리반>이 설치되었다. 최고 책임자에는 당시 장덕진 이재국장이 되고, 산하에 3개반을 두었다. 문제 기업체가 소속되고 있는 업계의 국내외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산업정책반>, 기업체별 문제점과 대책을 검토하는 <기업대책반>, 이 두 대책반에서 나온 검토보고서를 총괄 조정하여 최종 보고서를 만드는 <총괄반>으로 구분되었다. 
 
▲ 재무부 사무관 시절 / 오른쪽에서 2번째가 필자이다

나는 그 총괄반장이 되어 이 작업의 실무책임을 맡게 되었다. 참으로 감개무량했다. 그때가 1969년 5월 15일이었으나, 공무원이 된지 채 2년도 안되어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허굴산 장군바위와 용바위에 올라 어린 소년의 꿈을 펼쳐보던 그 시절 삼가(三嘉) 면소(面所)와 지서(支署)가 빨치산들에게 습격되었을 때, 호기심으로 가보았던 그 소년! 혈혈단신으로 추풍령을 울고 넘으며, 청운의 뜻을 불사르던 그 소년! <학원>사를 찾아가 구직을 거절당하고, 실망에 차 돌아서던 그 소년! 공군인쇄소 서울연락소에서 숙식을 하며, 미래의 꿈을 키우던 그 소년! 그 소년이 대통령을 곁에서 모시고 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말해서 가슴이 뛰고 피가 뜨거워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특별반의 인원은 모두 15명 내외였는데, 재무부, 경제기획원, 상공부, 금융기관 등에서 파견되어 구성되었다. 우리는 곧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는데, 약 7개월에 걸쳐 제1단계 부실기업 정리작업을 끝내고, 1969년 11월부터는 산업별, 기업별 정리대책에 대한 사후 관리와,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외자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외자관리수석비서관실>로 개편되었다. 

먼저 정부나 은행 지급보증업체와 차관업체, 은행관리 업체와 은행의 연체기업체 등 총 254개를 대상으로 하여 기업체별로 그 실태를 정밀하게 조사했다. 그 조사 결과에 따라 254개 기업체 중 이미 차관원리금이 대불(代拂)되었거나, 객관적으로 보아 대불 발생이 명백한 업체나, 은행대출금의 장기 연체업체, 가동이 부진하거나 조업중단 중인 업체, 주요 기간산업으로서 특별 지원을 요하는 업체 등의 기준에 해당하는 56개 1차 30개, 2차 26개를 골라 개별 기업체별로 구체적인 정비대책을 수립, 시행했다. 

56개 기업체 중 기업성이 전혀 없어 재기의 희망이 없는 기업체 16개는 즉시 공매처분토록함으로써 은행이 더 이상 손실을 보지 않도록 조치했다. 국민경제적인 입장에서 보아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할 업체로서 경제단위 미달업체는 합병하거나 계열화시킴으로써 적정 경제규모를 유지케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추도록 했다. 

자기 자본이 빈약하거나, 부채 과다업체는 자체 증자 대출금의 투자전환이나 유휴 부동산 처분 등으로, 금리 경감책을 강구토록했다. 고리 사채로 인해 경영이 부진한 업체는 사채를 투자를 전환토록 조치함으로써 기업으로 하여금 고리사채 보담에서 벗어나게 하고, 사채권자는 최소한의 원금을 보전토록 했다.     

차관 인가를 받고도 장기간 외자가 도입되지 못한 기업체는 인가취소나 실수요자를 병경함으로써 귀중한 외자를 조속히 활용토록  다. 이들 56개 기업체에 대한 정비대책은 당초에 의도한 취지에 입각하여 일부 여건의 변동에 따른 문제점을 조정하면서 철저히 시행될 있도록 사후 관리체제가 확립되었으며, 이에 따라 공매처분대상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체가 정상화되어 갔다. 
 
<외자관리수석비서관실>로 개편된 11월부터는 부실기업정리대책의 시행에 대한 사후관리와 더불어, 주요 업종별, 산업별 육성시책과 외자관리 전반에 걸친 정책적인 개선대책 등을 수립 시행했다. 예컨대 금융기관 여신업체에 대한 사후관리 강화대책이나, 철강공업, PVC공업, 합판공업, 자동차공업, 조선공업, 소모(梳毛)방적업, 화학섬유공업 등 산업별 육성대책을 추진했다. 

이와 같은 산업별 육성대책을 마련할 때에는 일본이 업종별로 육성법을 만들어 각종 지원책을 강구했던 경험을 많이 참고했다. 

 
  경제개발5개년계획과 부실기업 (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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