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의 통솔 (33회)
  제4장 청춘의 편린들

나는 그의 동료애가 하도 기특해서 외출을 기꺼이 허락했다. 삭막하기만 한 군대생활에 이런 아름다운 우정이 있다는 것은 아주 흐뭇하고 대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일봉과 그의 친구는 점호시간인 9시에 귀대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놓고 적잖이 분개했다. 그와 동시에 외부에서 무슨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시계를 바라보며 나는 불안과 초조를 짓씹고 있었다. 그런데 밤 11시경에 남대문 근처라면서 서일봉의 친구가 전화를 걸었다. 

“계장님, 죄송합니다. 지금 서일봉이 만취가 되어 영 정신을 가누지 못합니다. 하룻밤만 자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임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도대체 지금이 몇 시인데 돌아오지 않고 그래? 빨리 귀대해. 알겠어?”

나는 입가에 허연 거품을 날리면서 전화통이 부수어져라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아무리 기다려도 서일봉은 코빼기도 들이밀지 않았다. 가슴을 태우며 자지 않고 그들의 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12시 반경에 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서일봉이 헌병대에 걸려들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올 것이 왔구나’ 하고 여겼지만 어이가 없었다. 

헌병대의 위치를 확인하니 서울역 근처라고 했다. 나는 쓰리쿼터를 타고 삼각지를 거쳐 쏜살같이 서울역 쪽으로 달려갔다. 자정을 넘은 때라 그렇게도 북새통을 이루던 거리가 다른 나라에라도 온 것처럼 썰렁하고 고요했다. 서울역 근처 갱생보호회에 이르니 그 앞에 백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옳지, 저기구나! 하고 그곳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나는 그 순간 기암을 하고 말았다. 서일봉은 인사불성이 되어 수채 구멍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자 나는 옆에 멍청히 서 있는 당초부터 데리고 간 병사를 보고, 에게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그 병사의 대답이 또한 나를 더 놀라게 했다. 머리를 차게 하여 술을 깨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헌병책임자에게 서일봉 일병의 신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곧 제대할 사람이니 나에게 맡겨달라고 부탁했다. 그 헌병도 나의 간곡한 부탁에 감명을 받았는지 상부에 보고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일병을 풀어주었다. 서일봉을 추슬러 일으키니 그 몰골이 마치 굴왕신 같았다. 머리는 수챗펄로 범벅이 되고, 몸에는 술과 음식을 게운 찌꺼기로 젖어 있고, 바지에는 똥과 오줌을 지렸는지 코를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서일봉을 쓰리쿼터의 뒷간에다 젖버듬히 기대 앉혔다. 부대로 돌아와 취사반으로 갔다. 가마솥 옆에다가 가마니를 깔고 서일봉을 눕혔다. 마침 그때 가마솥에는 그 다음날 아침밥을 지을 물이 슬슬 끓고 있었다. 우선 취사병 몇 사람을 깨웠다. 서일봉의 옷을 벗기고 그 더운물로 말끔히 씻겨주게 했다. 취사병은 시큼한 냄새를 역겨워하면서도 서일봉을 깨끗이 씻겨주었다. 

이 일이 끝나자 담요로 서일봉의 몸을 둘둘 말아 들것으로 들어다가 내무반에다 눕혔다. 이때 나는 이 비밀을 절대로 내일 본부중대에 발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튿날이 되자 나는 서일봉을 작업반에다 내어보냈다. 간밤의 폭음으로 몸살이 나도 단단히 났을 것이라 믿어서였다. 사실 작업반에 가면 눈치껏 쉴 수도 있고 잘 수도 있는 여유가 많아서 그를 생각해서 그리로 내어보냈다. 이 사고가 난 지 약 1개월 후였다. 이 사실을 우리부대 본부대장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본부대장은 뜻밖에도 나무라지 않고 싱긋 웃는 것으로 대신했다. 

“박 소위, 나를 속일 수는 없어.”

일의 자초지종을 시시콜콜 다 알고 있다는 말투였다. 그 말씨가 날카롭지 않고 퍽이나 부드러웠다. 나는 상사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죄 밑이 있어 내심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본부대장이 의외로 이렇게 나오자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었다. 
 
문제는 서일봉이었다. 그 뒤 또 외출하여 사고를 냈던 것이다. 그때도 폭음을 하여 하필이면 헌병감차의 범퍼에 세운 안테나를 꺾어버려 일대 소동이 일어났다. 그때도 내가 홍역을 치렀기 때문에 그 안테나를 집에 기념으로 보관하기도 했다. 
 
▲ 장교로서 정복과 정모를 착용하고

그 뒷이야기지만 이렇게 내 속을 자글자글 끓이던 서일봉이 내가 재무부에 있을 때 느닷없이 연락을 해왔다. 모 맥주홀의 지배인이라면서 놀러오라는 것이었다. 군대생활 중에 입은 신세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겠다는 인간적인 배려였다. 나는 그날 밤 코가 삐뚤ㄹ어지도록 술을 푸며 많은 정담을 나누었다. 그 뒤 서일봉을 돕기 위해 술손님을 몇 번 그리로 데리러 갔다. 

맹자의 성선설처럼, 인간은 다 선한존재이다. 그러나 이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공연히 어떤 빛깔을 그 사람에게 들씌워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 우리가 색안경 너머로 만유를 바라보면 그 만유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그 색안경의 유리빛깔로 보이는 법이다. 
 
우리는 만유의 본디 빛깔을 보자면 그 색안경을 벗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대인관계에서도 선입관이나 주관을 벗어던지고 객관적 태도에서 그 빛깔과 무게를 보고 달아야 한다. 곰보에 반하면 그 곰보의 얼룩구멍이 보조개 우물로 보인다거나, 며느리가 이쁘면 발뒤꿈치가 달걀로 보인다는 것인 이 색안경을 벗어던지지 못한 아둔한 소치다. 

아무튼 서일봉으로 하여 어수선하던 때에 우리는 ‘경리의 날’을 맞이했다. 이 날을 기념하는 행사로 전군 대항 <육군통합회계제도에 관한연구와 토론대회>가 개최되었다. 나는 영예롭게도 우리 경리단의 대표로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 대회에서 최우수상으로 육군참모총장상을 받았다. 며칠을 두고 밤을 새며 준비했던 피로가 이 상을 받으니 씻은 듯이 가시어졌다. 

이 수상으로 우리 경리단은 때 아닌 축제분위기였는데, 영관급 몇 분은 막걸리 파티로 나를 치하하고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위관급 선배 몇 분은 약간의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아, 공인회계사 자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그런 정도야 당연하지 않은가?”
“그 같은 상은 장기복무자에게 주었으면 승진에도 도움이 될 터인데 아, 내일 모레 제대할 단기복무자에게 주어지다니......”

그러나 나는 그 선망과 시기의 착잡한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때 육군본부 정책회의가 열리던 날이었다. 이 회의는 육군본부 참모 장성들로 구성되어 참모차장이 주재하는 구수회의(鳩首會議)였다. 나는 일개 육군 소위로서 이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광영을 얻었다. 그것은 전에 육군본부 관리참모부의 육군관리회계제도에 관한 보고에서 미처 해명되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재심의를 하는 회의였다. 

나는 잔뜩 자료를 챙겨들고 그 답변준비를 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질문하나 없이 일사천리로 안건이 통과되고 말았다. 나는 좀 서운했지만 이왕 목적이 달성되었으니 좋은 일이었다. 당시 고대 102학훈단장을 지낸 김유복(金遺服) 장군이 김용배(金容培) 참모총장의 비서실장이었다. 그 회의가 끝나자 김 장군은 내 어깨를 툭 쳤다.

“박 소위, 육군소위가 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야.”
그 말 속에서 분명히 나를 칭찬하는 뜻이 묻어 있었다. 

나의 군대생활은 어느 누구보다도 영예의 행진이었다. 이로부터 훨씬 뒷날의 일이지만, 이때 내가 모셨던 많은 경리장교 선배들은 후에 재무부 산하의 증권, 보험, 금융기관 등에 취업해왔다. 내가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재무부 사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이 분들은 나의 상사나 주변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칭찬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고 다닌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내가 만약 군복무 중 말썽을 부리고 고문관 노릇이나 했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화제는 판타제, 판타제는 박판제!” (32회)
  고등고시의 길 (34회)
  |61||62||63||64||65||66||67||68||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