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고시에 도전 (38회)
  제5장 봉정만리의 여권을 쥐고

그날 우리들의 소주파티는 대부분이 음주 둘째 단계에 이르러 술값이 아깝지 않았다.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취했다. 내일을 위해 활력을 충전하고는 뿔뿔이 헤어졌다. 그 중에는 셋째 단계에까지 이른 사원이 있었다. 정신이 증발되고 발부리를 채 가누지 못했다. 

그런데 덕소 소재지에서 회사 기숙사로 가려면 신앙촌 앞을 지나야 했다. 술에 취해 야밤에 그 앞을 지나가다가는 시비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허리띠를 휘감아 쥐고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신앙촌을 피해 철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나는 처음엔 좁다란 철로 옆길을 걸어가다가 위험해서 위법인줄 알면서도 숫제 철길을 딛고 걸었다. 양쪽 옆길이 너무 좁아서 잘못하면 둘이 함께 뒹굴게 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를 가자니 작다란 철교 하나가 나왔다. 밤이라 내려다보니 스무 길도 더 되어 보였다. 나는 대뜸 머리끝이 쭈뼛해져서 발부리를 조심조심 떼어놓았다. 그러나 술에 취한 사원은 아랑곳이 없었다. 아니 그곳이 위험한 철교라는 것조차도 몰랐다. 아무리 주의를 환기시켜도 막무가내요 마이동풍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를 등에 업었다. 공중에 배단 광대 줄을 타는 듯해서 소름이 끼치고 등때기에 주루루 식은땀이 타 내렸다. 내 아랫도리가 와들와들 떨렸다. 다행히 그 다리는 길지 않아 무사히 건넜다. 나도 모르게 이마에 배인 마른 땀을 닦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시 그를 땅에다 내려놓고 철길 터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온통 나에게로 무너진 그의 체중은 천근도 더 되는 듯했다. 바로 이때였다. 앞쪽 터널에서 별안간 기적소리를 내며 산더미만한 기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를 밀쳐 옆 언덕바지에 붙어버렸다. 그러는 사이 기차는 다시 한 번 기적을 울리며 우리 곁을 지나갔다. 철교를 건넌 지 불과 2, 3분 차이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둘은 만약 그 철교 위에서 그 기차를 만났으면 영락없이 그날 밤 황천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나의 조상 음덕인지 그 사원의 조상 음덕인지는 몰라도 결정적인 대참사를 기적적으로 모면했다.

지금도 나는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미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 70평생을 되돌아보면, 거의 10년 주기로 속설에 부처님도 피해갈 수 없다는 삼재수가 들고, 신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1966년과 1967년 사이에 그 삼재수가 예외 없이 찾아와 괴롭혔고 내 신상에도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1966년 4월 군에서 제대했지만 행정고시에 실패했고, 9월엔 아버지가 타계하셨다. 

그런가 하면 11월엔 내가 100년을 해로할 내자와 결혼했고, 유니온셀로판회사에 입사했으나 야반에 철교 위에서 이 같은 위험한 광댓 줄을 탔다. 나중에 그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그 다음해인 1967년 5월에 대망의 고등고시에 합격하였고, 9월에는 재무부에 발령이 나 난생 처음으로 국록을 먹게 되었다.

1967년의 새해가 밝았다. 이해엔 3월 22일에 간첩 이수근이 탈출하려다가 체포되었고, 7월 8일엔 동백림 거점 대남 공작단 사건이 일어났다. 내 나이 스물아홉이 되던 해이기도 하다. 2월로 접어들자,고등고시의 시행요강이 공고되었다. 그 공고를 보니 4월에 시험이 있고 5월에 발표가 있다는 것이었다. 신문지상에 발표된 이 공고를 보자 몹시 가슴이 뛰었다. 전신에 열기가 화끈 덮쳐왔다. 

작년에 응시했다가 낙방의 고배를 마신 끝이라 일말의 흥분이 스멀스멀 살갗을 딛고 달음질쳤다. 그와 동시에, 실패는 한 번만으로 족하다는 강렬한 각오가 내 가슴 밑바닥에서 용솟았다. 더욱이 아버지가 작고하고 이제 결혼까지 했으니 한 가장으로서 아니, 우리 집안의 종손이요, 호주로서 당당히 급제하여 삼현육각(三絃六角)을 잡혀야 한다고 마음의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모처럼 얻은 유니온셀로판회사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윗사람이나 동료들이 내 이 돌연한 사표에 쌍지팡이를 짚고 나서서 만류했다. 나는 분연히 떨치고 그곳을 떠났다. 잔 인정에 발목이 묶여 그대로 주저앉아 버리면 내 인생은 영영 발전이 없다는 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내 인생을 보장해줄 호재는 다른 사람 아닌 내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야 된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랐다.

‘개구리는 멀리 뛰기 위해 우선 몸을 움츠리고, 호랑이는 작은 토끼를 잡는 데도 혼신의 힘을 다한다. 망설이지 말고 이곳을 떠나자.’ 
 
▲ 신혼시절 아내와

다시 직장에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 되었다. 그래야만 고시준비에 전력투구가 될 것 같았다. 그날부터 신혼의 감미로운 신방을 과감하게 떠나 아버지의 빈소방(殯所房)에서 거처하기로 했다. 한 집안 안의 내자와의 별거는 무척 힘이 들었지만 지엄한 아버지의 빈소는 내 나약한 의지를 굳게 해주는 산실이 되었다. 어쩌다가 졸리거나 잡념이 일면 빈소의 아버지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내 해이된 마음에 스스로 채찍을 가했다.
 
그럴 때마다 『열자列子』에 나오는 고사를 떠올렸다.

옛날 중국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비위(飛衛)라는 명궁(名弓)이 있었다. 어느 날 기창(紀昌)이란 한 젊은이가 찾아와서 명궁이 되는 비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했다. 비위는 젊은이의 결심을 가상히 여겨 그 비법을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수행은 눈을 깜짝이지 말고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기야. 그 훈련이 다 되면 그때 다시 찾아오게나.” 

이 말을 듣고 기창은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그의 내자는 베를 짜고 있었다. 기창은 방으로 들어서자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자리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베 짜는 내자의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자는 이 실성한 듯한 남편의 행동이 몹시 의아스러워 물어봐도 기창은 신경 쓸 것 없다며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데 바디가 찰그닥 하고 소리를 낼 때마다 자기의 눈도 깜빡거렸다. 아무리 주의를 해도 바디 소리와 함께 눈은 계속 깜빡거렸다.

기창은 이를 악물고 응시하는 훈련을 쌓아갔다. 기창은 이 훈련을 쌓아간 지 2년 만에 비로소 눈을 깜빡거리지 않고 사물을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기창은 뛸 듯이 기뻐하며 다시 비위를 찾아갔다. 훈련이 다 끝났으니 이제 활을 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다시 애원했다.

“그동안 수고했다. 기창아, 명궁이 되자면 그 훈련만으로는 아직도 멀었어. 이번엔 표적을 잘 조준하는 일이야. 아무리 작은 표적이라도 잘 보이고, 어슴푸레한 것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다. 알겠느냐. 그 훈련을 쌓은 다음에 다시 찾아오너라.”

기창은 맥이 탁 풀렸지만 그렇다고 중도에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 그 훈련을 무슨 방법으로 쌓아 가느냐고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한참 동안 생각하던 끝에 묘안이 하나 떠올랐다. 기창은 헐레벌떡 마구간으로 가서 쇠꼬리 털 한 개를 뽑아왔다.

방으로 들어오자 방바닥에서 뛰고 있는 벼룩 한 마리를 잡았다. 기창은 뽑아온 쇠털로 그 벼룩을 창문 곁에다 매달았다. 그러나 멀리서 보니 벼룩이 너무 작아서 보일락말락 했다.

기창은 방바닥에 주저앉아 날이면 날마다 눈을 깜빡이지 않고 그 벼룩만 쏘아보았다. 그때마다 화살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 동안에도 세월이 지나 3년이 다 가는 어느 날이었다.

기창의 눈에는 그 작은 벼룩이 이상하게도 큰 수레바퀴만큼이나 크게, 그리고 똑똑히 보였다. 참으로 귀신조차 탄복할 노릇이었다. 일이 여기에 미치자 기창은 벅찬 기쁨을 안고 다시 비위를 찾아갔다.

“여, 기창군. 참으로 장하구나! 그 어려운 일들을 용케 참아냈구나! 자넨 이제 틀림없이 명궁이 될 수 있어. 아암, 되고말고! 이제야 세상 사람이 모두 자네의 이름을 알게 될 거야. 그 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비위는 그날부터 기창에게 활을 쏘는 비법을 가르쳐주었다. 다시 몇 년이 지났다. 기창은 그 쇠꼬리 털로 매어 동인 벼룩을 겨누어 화살을 쏘았다. 이게 또 웬일인가? 신기하게도 화살은 벼룩의 몸뚱이를 꿰뚫었다. 그러나 그 쇠꼬리의 털은 끊어지지도 않았고 그대로였다.

그는 마침내 세상이 다 아는 명궁이 되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몇 년을 두고 끊임없이 쌓은 피나는 수행이 마침내 기창을 천하제일의 명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기창의 스승인 비위를 서책이라 여기고 기창에 못지않은 열과 성으로 공부에만 전력을 투입했다. 수면도 두 세 시간밖에 취하지 않고 했는데 그때 일을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것을 견뎌냈느냐고 스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결혼과 취직 (37회)
  마침내 이룬 고시의 꿈 (39회)
  |61||62||63||64||65||66||67||68||6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