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괴 이송한 야반의 대작전_2 (41회)
  제6장 국록을 먹던 공직의 바벨탑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쯤 되었다. 한밤중이라 공항은 한낮과는 대조적으로 정적의 베일이 무겁게 활주로를 뒤덮고 있었다. 특별수송기에 금괴를 옮겨 실을 때, 신경이 곤두서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금괴를 특별수송기에 적재하자 수송기는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불안과 안도의 숨을 바꾸어가며 쉬었지만, 부산 천리 길은 멀기만 했다. 수송기가 부산의 수영비행장 상공에 이르렀다. 그러나 웬일인지 수송기는 착륙하지 않았다. 그저 수영비행장의 상공을 선회하기만 했다. 활주로 시계(視界)가 나빠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한바퀴, 두 바퀴 그 선회 수를 세다가 그만 지쳐버렸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나와 함께 탑승한 분들도 이 예상 밖의 상황에 영문을 몰라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며,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어졌다. 공중 대사고! 나는 틀림이 없는 대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착륙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혹시 추락사고라도 난다면?’

나는 그와 동시에 조종사를 의심하기도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다된 시각이었다. 기내의 탑승자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그 창황(倉皇)한 순간에 퍼뜩 논어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 달아났다. 

어떤 사람이 의심이 가거든 아예 그 사람을 쓰지 말고, 일단 그 사람을 썼거든 그 사람을 의심하지 말라.

그렇다! 조종사는 우리 대한민국의 당당한 공군중령이다. 내가 그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큰 죄악이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수송기는 여전히 크게 선회하기만 했다. 선회한 시간만 벌써 45분이 되었다. 또 다시 불안감과 긴장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끓어올랐다. 그때 마침 기내방송이 들려왔다. 

“기상관계로 잠시 착륙이 늦었지만, 이 수송기는 곧 수영비행장에 착륙합니다.”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후우 몰아쉬었다. 비행기는 마침내 착륙이 되었는데, 조종사의 엉뚱한 지시가 있었다.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일체 현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라.“

우리는 또 다시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소댕 보고도 놀란다.”란 속담처럼, 조그만 변화에도 우리는 극도로 신경이 곤두섰다. 

10분쯤 지난 뒤 비행기의 출입문이 열렸다. 완전무장한 경찰관의 호위를 받은 임검관(臨檢官)이 들어왔다. 우리들은 작전내용을 그들에게 설명해주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웃으면서 의심이 풀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는 그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들이 왜 웃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마침 그 지역에 묵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공군수송기가 나타나고, 조종사들의 설명에 의하면 다수의 헌병장교가 중무장하고 타고 있으며, 민간인 4명이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철함(鐵艦)을 많이 싣고 있다는 보고가 있어, 일단 의혹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사실 하도 보안을 철저히 했기에, 공군조종사도 이 작전내용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상에서는 일단 수송기더러 선회하도록 지시하고, 그동안 부산지방에 비상경계령을 발동하고, 긴급 출동한 병력을 비행장 주변에 완전 배치한 다음 착륙을 허용한 것이라 했다. 참으로 불행 중 다행한 일이었다. 너무 업무에 충실하다보면, 너무 비밀을 엄격히 보지하려다 보면, 때로는 이러한 엉뚱한 일도 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우리가 10년 감수한 007작전은 이로써 막을 내리고, 우리들의 임무도 성공적으로 끝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이 내용은 현재의 이 사건의 전혀 관련이 없으며, 국가기밀과도 무관하다. 공직사회에서 일어나나는 일이 얼마나 엄격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이해와 참고가 될 것 같아서 가 일부를 말한 것이다. 
 
▲ 재무부 재경사무관 임명장을 받고 있다

그때 기획관리실에서 열과 땀을 쏟은 또 하나의 일은 그 당시 행정개혁조사위원회 주관으로 이루어진 행정절차 간소화작업이었다. 그때 우연히 외지(外紙)를 보고 크게 감탄한 기사가 있었다. 

일본이 대동아전쟁에서 패전한 직후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때 일본에서는 다각도로 패전원인을 규명했다. 패전의 원인이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그 중의 한 가지가 퍽 이색적이었다. 일본이 패망한 것은 행정사무의 절차가 복잡하여, 그것을 작성하고 갖추느라 귀중한 시간을 다 빼앗겨, 전력이 저하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얼핏 들으면 이치에 맞지 않은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역설이라고 타기(唾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꼬투리 문제가 아니라, 설득력 있는 사실이라 느껴진다. 이것은 번거롭기만 한 서식이나 무용의 서류가 많다는 것을 측면 공격한 증언이다.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나라에도 해당이 될 때가 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초등학교 교원 임용에 필요한 서류가 무려 스물 한 가지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요즘은 다소 간소화되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는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라 북측과 서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다른 나라에 없는 신원조회나 신원진술서 따위가 필요하리라는 것은 십분 이해가 간다. 그러나 따지고 보라. 이런 쓸데없는 행정절차와 복잡한 서식 때문에, 인력소모와 용지 등 물자 낭비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점을 감안해서, 나는 이 행정절차의 간소화작업에 최선을 다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다. 왜냐하면 각 국실(局室)에서는 고유 업무도 바쁠뿐더러 우리 공직사회의 일반적 의식이, 이 같은 류의 작업에는 별로 흥미와 관심이 없는 것이 통상적인 경향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도 행정경험이 적어서 이것을 자신 있게 주도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다 해도, 내 성격이 결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적당히 넘어가지 못했다. 때로는 설득하고, 때로는 사정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최선을 다했다. 공직사회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출내기가 하도 열성으로 설치고 비비고 하니까, 선배나 직원이 나중에는 매우 잘 호응을 해주었다. 

재무부와 그 산하 기관의 행정 간소화 작업안은, 행정개혁위원회를 거쳐 그 당시 정일권(丁一權) 국무총리에게 보고되었다. 재무부의 계획이 전 부처를 통해 가장 잘된 것을 평가가 나왔다. 이 일로 국무총리상을 받게 되니, 김원기 기획관리실장과 여러 고위 간부의 대견해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에, 이와 같은 까다로운 제도나 행정절차가 생겨나는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구직서류에도 이력서 한 장으로 족한 사회가 되었을 때, 그 사회는 국태민안을 구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보더라도, 우리의 민원서류나 행정절차가 많이 간소화되었다지만, 앞으로도 더 많이 간소화되어야만 하고, 관은 민을 믿고, 민도 관을 믿을 수 있는 그러한 바람이, 민주화와 더불어 확고히 다져져야 된다고 믿는다. 

나는 기획관리실에서 처음 맡은 업무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 되었다. 김원기 기획관리실장께서는 그 뒤 곧 건설부차관으로 영전이 되었다. 내가 신출내기 사무관이었지만 능력과 추진력이 대단하고, 장래가 촉망된다며 요로의 상부 어른들에게까지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분이다. 

이런 보람이 복합적으로 작용된 탓인지, 그 뒤 사무관이면 누구나 선망의 표적이 되었던 이재국(理財局) 이재1과 사무관으로 발탁 기용되었다. 나는 그럴수록 겸손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혜로운 매는 결코 사나운 발톱을 내밀지 않는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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