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제는 판타제, 판타제는 박판제!” (32회)
  제4장 청춘의 편린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날 밤 9시의 점호에 큰 이변이 생겼다. 점호의 결과는 전원 귀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 신기해서 나는 점호 후 위병소로 달려갔다. 내가 발급한 외출증 대장과 외출자가 귀대하면서 위병소에 반납한 외출증을 대조해보려고 했다. 그래야만 이상이 없다는 확인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위병의 얼굴이 대뜸 사색이 되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한명이 미귀대한 사실이 비로소 드러났다. 1내무반 소속 병사였다. 알고 보니 1내무반 병사의 친구가 1군 사령부에 근무 중 휴가차 왔다가 한명의 미귀대자 대신 점호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친구를 위해서 여기까지 와 대리점호를 받은 그 우의는 십분 가상했으나 군기의 확립을 위해선 어물쩍 그대로 넘어가지 말고 단호한 조치가 있어야겠다는 것을 순간 직감했다. 내무반 전원에게 단독무장을 시켜 연병장에 집합하도록 했다. 

“우리는 지금 장난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만약 전쟁이난다면 기꺼이 싸우러 나가야 한다. 비록 우연한 인연으로 이렇게 후방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지금 최전선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우들의 긴장된 모습을 상상해보라. 오늘 대리 점호를 받은 친구가 만약 불순분자였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라. 군대를 유지하는 비용은 우리들 부모님이 내는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우리는 결코 장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큰 둑도 조그만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진다. 이제 약속한 대로 나와 여러분들은 응당 책임을 져야 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다.”

3열종대로 정리하고는, 내가 선두에 서서 연병장을 뛰어 돌았다. 각자 앞에 총으로 연병장을 자그마치 60바퀴나 돌았으니 모두 파김치가 되었다. 60바퀴를 돌았다는 것은 연병장 생긴 이래 처음 있는 기록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물론 허위 보고를 한 위병에게도 따끔한 기합을 주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다. 1내무반 전원은 다리에 피가 몰려 모두 절뚝거렸다. 나는 온유한 말로 그들을 위무해주었다. 이때 나는 진실 정확한 보고가 군기를 바로 잡는 기틀이 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우리 체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간밤의 기합이 과했음을 역설했다. 그러자 그들 병사들도 대체로 우리가 해낸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갖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있은 뒤로 내게는 실로 우스꽝스런 별명 하나가 붙게 되었다. 

“소화제는 판타제, 판타제는 박판제!”

그때 매스미디어 광고에 이 판타제가 자주 나왔는데, 그것을 모작한 내 별명이었다. 웃을 수도 화를 낼 수도 없는 해괴망측한 별명이었다. 

그 즈음에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본부장으로부터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박 소위, 오늘 배속되어 온 OOO이등병 있지? 불가피한 데서 연락이 왔는데, 오늘 밤에 외출 좀 시켜주었으면 좋겠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 이등병은 바로 그날 배속되어 온 신출내기 사병이었다. 그것도 경리학교는 거치지 않고 논산훈련소에서 막바로 배속된 어떤 부유층자제였다. 전화를 끊자 목구멍으로 뜨거운 기운이 궁글러 올라왔다. 그 부탁을 도저히 들어줄 수도 없고, 들어주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다른 병사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장교의 체통은 어떻게 되며, 지휘권이 설수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일어났다.
 
꾹 참고 있다가 일과가 끝난 다음 그 병사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리고는 침대 몽둥이를 빼어 그의 볼기를 사정없이 내려쳤다. 이런 정신없는 자는 우선 볼기 뜸질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 부대 앞에서 / 왼쪽에서 2번째가 필자이다

“OOO이병, 군대가 애들 장난인줄 아는가? 여기 있는 병사 중 배경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아니 병리학교의 필수과정도 거치지 않고 어떻게 병리병과의 요원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 무슨 통뼈라고 2배속된 첫날부터 외출압력을 가져와? 어떻게 생각해?”

“잘못되었습니다.”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는 얼굴이 썩 잘생긴 첫인상부터 호감이 가는 양순한 청년이었다. 그 같은 외출압력에 대해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그런데도 내가 이처럼 가혹한 처벌을 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뒤에라도 그들의 가족이 이것을 알게 해야겠고, 일벌백계로 다시는 우리 부대에 이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와 같은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그의 눈동자는 빛났고, 동료들과 잘 조화를 이루며 성실하게 근무했다. 

또 얼마가 지난 뒤였다. 나에게 주보 운영에 대해 감사를 해보라는 단장의 특별한 지시가 있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 병리병과에는 키 큰 이동수 대령과 키가 작은 이동수 대령 두 분이 계셨다. 참으로 공교로운 동성동명이요, 계급이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두 분을 구분해서 키다리 이동수 대령, 땅딸보 이동수 대령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단장은 그 두 분 중 땅딸보 이동수 대령을 가르킨다. 나는 즉각 그 단장의 지시를 이행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만약 내가 감사에 착수하여 문제가 발생하면 오랫동안 군을 지켜온, 그리고 헌신한 선배 장교나 주무 하사관의 신상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 두려워서였다. 나는 차일피일 그 일을 미루어오고 있었다. 사실 그 당시 주보 운영은 엉망진창이었다. 주보 운영에 대한 불평불만이 사병들의 입토시에 오르고, 이용자들의 불이익이 눈에 보이게 드러났다.  

그런데 달포쯤 뒤의 일이다. 경리단장의 생신을 맞아 초대를 받아 나는 몇몇 선배장교와 함께 그 단장의 댁으로 갔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장내의 분위기가 도도해지자 단장은 나를 향해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박 소위, 주보 감사 잘되고 있는가?”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에! 단장님. 그렇잖아도 그 일에 대해서 단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과거에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것이므로 이를 일체 불문에 붙이고 앞으로만 시정, 개선해나갈 방안을 제시하라면 내일이라도 당장 착수하겠습니다.”

“응, 그거 좋군! 과거를 묻지 않는다? 허허, 그거 참 묘안인걸!”

나는 단장의 벼락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좋은 반응에 흔감해서 실컷 술을 마셨다. 나는 그 다음날부터 곧 주보를 감시해서 여러 쇄신책을 제시했다. 그로인해 주보는 실로 괄목상대할 만큼 개선되었다. 태풍을 맞지 않은 주무자들도 신명이 나서 열심히 복무했다. 

“박 소위 덕분으로 우리 모두 밥 맛있게 먹는군!”

그 뒤 단장은 이렇게 나를 칭찬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얼마 뒤에 실로 형언할 수 없는 사고를 친 사병이 있었다. 서일봉이라는 내가 데리고 있던 계원이었다. 그는 징병을 기피하고 있었는데, 일제단속에 걸려들어 입대한 나이 많은 사병이었다. 이미 두 아이까지 딸린 노병이었다. 

그는 제대 3개월을 앞두고 이미 사고를 쳐 외출이 금지되어 있는 중이었다. 촉이 빠진 말벌처럼 풀이 죽어 어깨를 축 까부러뜨리고 푸푸 한숨만 쉬고 있었다. 이 처량하고 처참한 꼴을 보다 못해 동료사병이 주번사관 근무 중인 나에게 어느 날 제의해왔다. 서일봉 일병을 데리고 나가서 술이라도 사주어, 심기일전을 시켜보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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