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가자 (16회)
  제2장 뼈를 깎는 배움의 뒤안길

옛날 훈장이 ‘강(講)을 받는다’란 말도 배운 것을 암송하고 해석하도록 한 말이었다. 

언젠가 효행편을 배울 때였다. 

詩曰 父兮生我 하시고 母兮鞠我 하시니 哀哀父母여
生我劬勞 삿다. 欲報之德인데 昊天罔極이로다.
[시경에 이르기를,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가르치시니, 슬프다! 부모님은 낳으셔서 기르시느라 애쓰셨네. 이 은혜 보답하고자 하니 끝이 없네.]  

‘欲報之德’이란 ‘報之’가 욕과 같아서 내가 그 대목을 읽지 못하고 망설이니, 선생은 껄껄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 녀석아. 거꾸로 ‘欲之報德’이라 읽으면 되지 않느냐?”

그러고 ‘父兮生我 하시고’의 주석에 대해서 내가 질문을 했다. 

“사부님, 아버지가 나를 낳았다고 하셨는데, 그게 잘못된 글 아닙니까? 어찌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습니까? 어머니가 낳으셨으니 母兮生我가 맞지 않겠습니까? 

딴은 그러했다. 선생님은 나의 이 당돌한 질문에 응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이나 망설이셨다. 그러더니 궁여지책으로 한 말씀 내어 뱉으셨다. 

“허, 그 녀석. 그건 네가 차차 장성하면 알게 되느니라. 그냥 뜻이나 새겨라.”

나는 이 글의 비논리성이 못내 못마땅했다. 이렇듯 옛 성현들도 이치에 맞지 않는 오류를 글에 남겼다고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내가 뒷날 중학에서 공부하게 되었을 때 생물시간에 비로소 그 글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고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명심보감의 다음 구절을 가만히 읆조려 보았다. 

子曰 博學而篤志 하고 切問而近思 하면 仁在其中矣니라
[자하가 말하기를, 배우는 것을 널리 하고 뜻을 돈독하게 하며, 절실히 묻고 가까운 것부터 생각하면, 이긴 것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때 침식을 잊고 책을 놓지 않았다. 학문 이외에도 중학 강의록을 중심으로 독학을 하고, 여가에 소설이나 <학원>, <학생계>를 구해 읽었다. 그러면서도 진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太公曰 人生이 不學이면 如冥冥夜行이니라
[태공이 말하기를,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면 밤에 다니는 것 같이 어둡다.]
 
▲ 명심보감 [출처 ; Stream of Life 블로그]

사람이 배우지 아니하면 비금주수(飛禽走獸)와 무엇이 다르랴 싶었다. 그래서 ‘한 마리의 새가 태어나자면 알의 껍질을 깨뜨려야 하고, 걸음마를 배우자면 무릎을 깨야한다.’란 격언이 나를 간곡하게 부추겼다. 

‘그렇다! 서울로 가자.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나는 이 문제를 놓고 근 열흘 동안이나 심사숙고했다,. 마음이 서울행을 결심하자 안절부절 못했다. 꼭 송곳방석에 앉은 것처럼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서울에 가도 의탁할 만한 곳이 없는 사고무친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부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내 불타는 향학열을 실현에 옮길만한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 

한학을 ,배우고 중학강의록을 받아보니, 학문을 중도에서 폐할 수 없고 보다 높은 학문을 수학해야 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었으나 운명의 여신은 결코 내편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책에서 읽은 앙드레지드의 말을 무수히 되뇌었다. 
“행복은 기성품이어서는 안 된다. 맞춤이어야 한다. 자기 치수에 맞게 재단을 해야 한다.”

며칠을 두고 노심초사한 끝에 나는 한줄기의 빛을 거머잡았다. 
‘고학을 하자.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근야독(晝勤夜讀)을 하자.’   

그래서 나는 이 뜻을 아버지께 여쭈어 허락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이 간절한 소청을 묵살하셨다. 

“이것아. 서울이 어디냐?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에 가 어린 네가 무슨 돈으로 공부하러 간다는 게냐? 그러지 않아도 집안이 망해 눈에 흙 들어갈 지경인데, 아서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마라. 넌 9대 종손이다. 살림 망하고 종가집 대까지 끊어지게 할 수는 없다.”

이 완강한 거부반응을 받자 나는 풀이 탁 꺾였다. 맥이 풀려 며칠 밤을 징징 눈물을 짜며 지샜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미 잃은 어느 위인전의 한 대목이 머리를 스쳐갔다. 

어느 위인이 나라가 망해 외국으로 망명하여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자살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권총으로 자기의 머리를 쏘았으나 불발이었다. 그는 다시 제2탄을 쏘았으나 역시 불발이었다. 그는 하도 이상해 제3탄을 천장을 향해 쏘았다. 그런데 제3탄은 꽝하고 요란한 폭음을 내며 천장을 뚫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그는 권총을 던지며 ‘아, 신은 나로 하여금 죽게 버려두지 않는구나! 조국은 아직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그렇다! 난 결코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된다. 다시 분발해서 독립을 되찾자’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분발해서 마침내 독립을 되찾았다. 

나는 이 위인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위로해주는 환영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나의 눈은 빛났다. 가슴도 뜨거워왔다. 

나는 도망을 치기로 했다. 숫제 도망을 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 생각을 접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읽은 <학원>지에서 “동기가 나쁘면 결과도 나쁘다”는 말이 문득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이런 갈등 속에 며칠을 보내다가 비장한 각오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기 위해 마침내 단식에 들어갔다. 미지근한 방법과 수단으로서는 도저히 초지를 관철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틀 동안 단식을 하자, 내 얼굴은 말이 아니게 초췌해졌다. 눈이 들어가고 전신에 핏기가 싹 가시어지며, 몸이 천근도 더 되는 것 같았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자 그렇게도 완강하시던 아버지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나의 결의가 요지부동임을 간파하셨던지, 산밭골에 있는 ‘땅돌이’라는 사주 점쟁이에게로 찾아가셨던 모양이다. 

‘보내세요. 대성할 겁니다. 나도 평소에 그 자제를 눈여겨 보아왔지만, 눈빛이 예사 아이와 달랐어요. 점괘도 대길합니다. 보내세요. 이런 큰 재목이 될 아이를 아, 이런 벽촌에다 묻어두기 아깝습니다.“

‘땅돌이’는 나를 극구 찬양하더라는 것이었다. 단식으로 꺼칠할대로 꺼칠해진 내 몰골을 보아온 끝이라 아버지는 비로소 허락하셨다. 그러고는 지붕에 말려둔 고추와 깨를 팔아 내 차비와얼만큼의 용돈을 마련해주셨다.

 
  우리 집에 닥친 재앙 (15회)
  사고무친한 서울 (17회)
  |81||82||83||84||85||86||87||88||8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