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원들의 공작과 임직식 (16회)
  제4장 목회를 시작하다

기관원들의 공작에도 동요 없는 서울제일교회

건축한 새 건물에서 임대료가 들어오자 여러 복잡한 잡음이 들려왔다. 기관원들이 공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임대료를 받아 종로5가 데모하는데 쓰려고 한다.’ ‘그 돈으로 형제의 집 노동자들을 도와주려고 한다.’ 등등 별의별 얘기가 다 들려왔다. 그러나 서울제일교회 교인들은 그동안 내공이 쌓여서인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박형규 목사가 자주 감옥에 가고, 외국에 나가 돌아오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교회의 운영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한번은 조덕현 목사가 나에게 “박형규 목사님은 목회할 마음이 있는 것이냐?”라고 물었다. 나는 “박 목사님이 외국에 나가시면 새벽기도에 못 나오시지만, 외국에 안 나가시면 저 멀리 화양라에서 매번 새벽기도회에 나오신다. 아주 열심히 목회하신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멋쩍었는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가짜 교인행세를 하는 기관원도 있었다. 그는 신 모 씨로 시경 소속경찰이었다. 그는 성가대도 하고 교회일도 열심이어서 처음에는 위장교인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대심방 때가 되어 그 집에 심방을 가려고 하자 그가 나를 찾아와서는 자신이 누이동생 집에 살고 있다고 했다. 누이동생 집이라 심방이 곤란하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심방을 가겠다고 하고 그 집을 찾아갔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뭔가 숨기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퍼뜩 ‘아, 위장교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형규 목사와 나, 그리고 전도사 이렇게 세 사람이 심방을 갔는데, 나만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심방을 마치고 나와서 내가 박 목사에게 “우리가 위장교인 집을 심방했습니다.”라고 하니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도 공장에 대학생들을 위장취업 보내듯이, 목사님을 싫어하는 시경 김재국 부국장이 그 사람을 교회에 보낸 모양입니다. 위장 교인이 틀림없습니다.”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렇지만 박 목사도, 전도사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성가대도 잘하고 교회 일도 열심히 하는데,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즈음 인천산업선교회에서 총무를 하고 있던 김동완 목사가 찾아와 고민을 토로했다. 

“경리 보는 아가씨가 노부모도 모시고, 착하고 좋은데 보안사 애들 꾐에 빠져서 할 소리, 안 할 소리를 다 보고한다. 사사건건 거기에다 고자질을 한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나는 그에게 “그 아가씨를 그만두게 한들 다른 사람을 또 포섭할 거다. 다른 직원에게 이 이야기를 해줘라. 그리고 착하다니까 돈 가지고 갈일 없으니, 그냥 내버려 두고 지켜봐라."라고 조언해주었다. 이 이야기를 박 목사에게 들려주자 그는 그 제서야 “야, 그런가보다”라고 수긍했다. 

신 모씨.에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다음해부터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부목사의 장로 임직식

서울제일교회에 있는 동안 나는 뜻밖의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부목사인 내가 장로임직식을 거행한 것이다. 당시 박형규 목사는 한국기독교 장로회(기장)의 교회와 사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는데, 1978년 기장 청년회 전주시위사건과 관련해 ‘시위를 교사, 선동’했다면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그해 9월 구속되고 말았다.  

▲ 서울제일교회 부목사 시절 거행한 장로임직식의 팸플릿. 이 팸플릿은 교인인 구창완이 만들었다

장로회임직식은 10월 22일로 잡혀 있었고, 박 목사는 언제 풀려날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었다. 장로임직식도 언제까지 미룰 수는 없었다. 그 후 나는 당회장인 박 목사를 대신해 장로임직식을 예정대로 치렀다. 그날 장로임직식에서는 박 목사가 이날을 위해 써놓은 기도문을 공동기도문으로 채택해 다 같이 기도했다.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 질그릇과 같은 우리교회가 주님의 손끝에서 태어난 지 어언 25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작동하는 시대의 환난 속에서도 깨어지지 않고 걸어오게 하심은 오직 주님의 자비와 능력의 증거인 줄 알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께서 찾고 부르실 때마다 “예” 하고 대답하지 못하고 변명과 회피도 했고, 숨고 도망도 해보았으나 끝내는 당신의 큰 손에 잡힌바 되었던 부끄러운 사실들을 지금 고백합니다.

이제 오늘 새로이 네 사람의 종을 뽑아서 교회의 장로로 세우고 교회를 받들게 하심은 주님의, 오묘하신 섭리로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새롭게 장로로 세움을 받은 종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차고 넘치게 내리셔서 강건하고 지혜롭게 하시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이 충만하게 하시옵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세우신 새 종들이 진리의 불을 밝히고 봉사할 때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여기에 온갖 정성을 바치신 은퇴 장로님들을 영원히 기억하셔서 날로 날로 저들의 속사람이 새로워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일이 주님으로부터 비롯되었사오니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는 당회장을 대신하여 신임 장로 네 사람, 이지형, 오세원, 정상국, 최의숙에게 장로임직 선포를 하고 임직패를 증정하였다. 또 같은 날 열린 장로 은퇴식에서 은퇴하는 장로인 고봉선, 주길찬에게 공로패를 증정하였다. 

부목사인 내가 장로임직을 선포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사실 박형규 목사의 고난과 서울제일교회가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씁쓸하기 그지없는 일이기도 했다. 서울제일교회는 수많은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한쪽이 무너지면 다시 쌓고, 또 다른 한 쪽이 무너지면 다시 쌓는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단단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너지기도 했다. 

나의, 목회 시절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서울제일교회가 그러한 참혹의 시절을 보내는 동안 나의 마음도 한없이 고달팠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서울제일교회는 제 할일을 했고, 싸웠고, 뭉쳤다. 나 역시 서울제일교회와 함께 내 할일을 찾았고, 교회의 운명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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