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는 예수 (17회)
  제4장 목회를 시작하다

박형규 목사는 평생 쫓겨나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것도 여러 곳에서 쫓겨났다. 대한기독교서회의 <기독교사상> 편집주간일 때는 중앙정보부에서 ‘3선개헌’등의 글을 문제 삼으며 압력을 가했다. CBS상무로 있을 때에는 정보부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이사장을 협박해 결국 사직서를 쓰게 만들었다. 

크리스찬 아카데미 하우스에서도 위수령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결국 강원룡 목사에 의해 쫓겨났다. 보안사의 입막음이 심했던 모양이다. 박형규 목사가 아카데미 하우스에 간다고 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가세요.” 하고 말했다.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비상근 프로그램 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박 목사는 CBS를 그만둔 뒤(1971.) 프로그램 위원장직을 아카데미하우스의 원장대리로 격상시키고 약간의 급료를 지급할 테니 정식 출근해달라는 강원룡 목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내 생각엔 강원룡 목사가 <선데이서울> 기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실수한 것을 해결하러 가는 것처럼 보였다. 박 목사가 CBS에 있었으니 기자들을 많이 알 때였다. 

아카데미하우스로 가던 날, 박 목사와 나는 함께 택시를 탔다. 서울제일교회 앞에서 내리기 전에 나는 정말 어렵게 다시 입을 뗐다. “가시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까?” 하지만 박 목사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늘 웃으시던 분이 정색을 하며 “강원룡 목사님은 그럴 분이 아니야.” 하시며 가버렸다. 그러나 결국 6개월 만에 자리가 없어져 아카데미하우스를 나오게 됐다. 

성경 말씀에 예수께서 한 동네에 들어가 귀신을 몰아내니 온 동네 사람들이 떠나기를 간청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마 8:28-34). 나는 박형규 목사가 그런 예수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다. 여러 곳에서 그가 떠나주기를 바랐고, 실제로 쫓겨 다니며 살았다. 

나는 1976년 10월 24일 서울제일교회 대예배 설교시간에 박형규 목사를 생각하며 “쫓기는 예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 박형규 목사님께서는 갑자기 수사기관에 끌려가셔서 혹은 해외에 나갔다가 본의 아니게 못 들어오셔서, 오늘처럼 제가 말씀을 전하게 되지요. 오늘도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이교회에 오게 된 것도 뜻밖의 일이었지만, 이 세상에서 이렇게 쫓기며 사시는 박 목사님의 삶의 형태와도 관련이 있다하겠습니다. 박 목사님께서는 <기독교사상> 주간을 하시다가 관계기관에 의해 쫓겨나셨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방송 상무로 가셨는데, 그곳에서도 관계기관의 압력에 의해 쫓겨나셨지요. 또다시 아카데미하우스에 갑자기 어떤 문제 해결을 위해 프로그램 위원장으로 취임하셨는데, 6개월 만에 또 쫓겨나셨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중략)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거라사라는 동네에서 귀신을 몰아냈다고 하여 쫓겨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박형규 목사님께서도 올바른 말씀과 행동을 하셨다고 해서 쫓겨나셨습니다. “예” 할 때 “예”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했다고 해서 쫓겨 다니셨지요. 

이 본문 말씀을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에 모두 실려 있는 말씀인데요. 모두 다 예수께서 귀신을 몰아내고 그 귀신을 몰아냈다고 해서 예수님 자신도 그 동네에서 쫓겨나게 되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왜 이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귀신을 쫓아낸 예수님을 쫓아냈을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한가? 군사독재정권 치하에서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는 우리 박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이 본문 말씀을 깊이 생각해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도 혹시 지금 이 군대귀신과 같이 살면서 막상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여기 오셔서 군대귀신들을 쫓아내신다면 우리도 거라서 동네 사람들처럼 예수그리스도를 쫓아내려고 하지는 않았을까? (중략)

이 군대귀신들은 그 특성이 로마제국의 군대귀신들이라서 지난 여러 해 동안 예수님을 잡기 위하여 “몇 살 이하 어린이들은 다 잡아들여라.”라든지,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겠으니 “너희가 처리하라”라든지 하는 무책임한 말과 온갖 조치를 취한 자 들이었습니다.우리 군인들도 비슷하지요. 삼선개헌을 하고, 유신헌법을 만들고, 여러 조치를 해서 인권을 유린하고, 그래서 박형규 목사님 같은 분들이 이리 쫓기고 저리 쫓기고 하시는 건 아닐까요? (중략)

이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서 군대귀신과 같이 살던 생활습성을 완전히 포기하던지, 아니면 군대귀신을 쫓아낸 예수님을 쫓아내던지 양단간의 결단을 내야 했습니다. 이 냉엄한 현실에서 우리에겐 이것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내 삶의 형태가 나를 위한 것이냐, 복음을 위한 것이냐, 또한 이것은 나냐, 예수님이냐라는 질문이 되지요. 

결국 거라사 지방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쫓아내기로 합의를 봅니다. 교우 여러분, 이 세상에서 쫓기시는 박형규 목사님과 더불어 함께 쫓기는 서울제일교회 여러분이 되실 때,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께, 오늘 여기에 임할 것을 믿습니다. 
 
1981년 9월에 열린 기장 제66회 총회에서 박형규 목사가 총회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동안 부총회장이 총회장이 되던 관례를 깨고 박 목사가 총회장이 된 것은 기장의 목사들이 느낀 불안한 기운 때문이었다. 
 
▲ 아버지 같았던 박형규 목사(뒷줄 왼쪽에서 2번째)가 말년에 살던 인천집에서

한해 전인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한 신군부세력의 수장인 전두환이 그해 9월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유신체제의 종말로 민주화의 열풍을 품은 국민들의 희망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전두환 정권이 휘두르는 사정없는 칼에 베인 것은 기독교계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장 교단의 명망 있는 목사 두 명이 전두환 정권의 국정자문위원과 국가보위입법회의의 위원이 되는 개탄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이에 교단에서는 그동안 쌓아올린 기장의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총회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 어려운 시기에 총회장을 맡은 사람은 박형규 목사뿐이다.’라는 여론이 교단 안에 팽배해졌다. 서남동 목사와 교단 총무인 김상근 목사의 결단으로 충북 이쾌재 목사, 경북 나길동 목사, 전남 강신성 목사, 제주 홍성복 목사, 강원 강원하 목사, 서울 박광재, 서도섭 목사 등이 적극 협력하여 박형규 목사를 총회장으로 직접 추대했다. 

기장은 총회장 박형규 목사의 노력으로 그 정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또한 박 목사는 이듬해(1982.)에 KNCC인권위원장이 되어 광주항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런데 이때부터 서울제일교회와 박형규 목사를 위협하는 보안사의 공작이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다. 그들은 박형규 목사를 쫓아내기 위해 교인들 간에 이간 책동을 벌였다. 1983년 8월 정 모 장로가 사소한 트집을 잡아 박 목사를 구타했다. 이 사건을 발단으로 교인 20여명은 노골적으로 예배를 방해하고 다른 교인들에 대한 폭력과 구타를 일삼았다. 

이듬해 9월에는 보안사요원이 폭력배들을 몰고 와 박 목사와 교인들을 60시간 동안 불법 감금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박 목사와 그를 따르는 교인들은 길거리로 쫓겨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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