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시위_1 (24회)
  제5장 주민조직운동과 도시선교

시민아파트 골조공사비 일시불 상환 반대 

1971년 6월 1일. 서울시의 각 시민아파트 단지 게시판에는 서울시에서 내려온 공문이 게시되었다. 입주자들에게 서울시가 시민아파트를 건립할 당시 15년에 걸쳐 상환하라는 조건으로 빌려 준 골조공사비를 6월 15일까지 일시불로 상환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일시불로 상환할 만한 여력이 있는 주민은 없었다. 

15일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자 서울시는 30일까지 상환하라는 공문을 다시 내려 보냈다. 이 공문은 광주대단지에도 전달되었다. 분할해준 20평의 땅을 전매한 사람들은 일시불로 상환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구상일 뿐 실상은 그해 4월과 5월에 치른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로 당국의 예산이 바닥났기 때문이었다. 

서울시는 시민아파트를 분양하면서 골조공사비 20만원을 싼 이자로 장기분할 하도록 했다. 그러나 골조공사를 끝낸 시민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입주자가 직접 온돌, 전기, 도배 등 내부공사를 해야 했다. 그 공사를 하는데도 가구당 15만 원 정도의 돈이 들었다. 

그러나 아파트에 입주해 살려면 최소한 40만 원 가량이 필요한 셈이었다. 그만한 돈을 감당할 수 있는 철거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이유로 철거민들은 전매가 금지된 입주권을 5-10만원에 팔고 다시 판자촌으로 흘러들어갔다. 철거민의 70%정도가 모두 전매를 한 상황이었다. 

광주 대단지도 땅을 전매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광주는 토지 브로커들의 난입으로 땅값이 오르고 전매입자의 횡포가 가중되고 있었다. 투기 붐이 일자 정부는 주민들에게 약속한 토지 격리분배와 면세 혜택을 없애버리기까지 했다.

금화아파트에서의 훈련이 끝날 무렵 우리를 훈련시킨 화이트 목사도 2년의 체류기간이 끝나 필리핀으로 떠나고 없었다. 그 뒤 훈련 담당은 1기 졸업생인 신상길 목사가 맡았다. 어느 날 자치운영연합회 회장인 진산전 씨가 나를 찾아왔다. 
 
▲ 서울시는 시민아파트 골조공사비를 일시불로 상환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 당시 불도저 시장으로 불렸던 김현옥 서울시장 [ 출처 ; 서울특별시]

그는 나에게 “골조 공사금 일시불상환 공고가 붙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당시 나는 새밭교회 사역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빈민운동을 하기 위해서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였다. 

“자치운영연합회가 있으니 주민들의 힘을 모아보세요. 주민들의 의식도 많이 바뀌어서 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 힘만으로는 어렵습니다. 와서 같이 협력해주셔야 합니다.”

나는 우선 진 회장과 주민대표를 만났다. 훈련이 끝난 뒤 거의 1년 만에 주민들과 만난 것이다. 

주민1 : 어떻게 하면 서울시의 공문을 백지화할 수 있을까요?
: 글쎄요. 시민아파트는 전체 몇 동이나 되나요?
주민2 : 360여동이 될 겁니다. 
: 전매입주자는 얼마나 됩니까?
주민2 : 지역에 따라 다릅니다. 청계천 6가 지역은 원입주자의 90% 이상이 전매했고, 전체적으로는 약 70%가 전매했습니다. 

: 판잣집보다는 아파트가 편할 텐데 그냥 살지 않고 왜 전매를 한 것인가요?
주민3 : 팔자 좋은 소리 하지 마슈. 누가 살기 싫어서 팝니까? 빚에 쪼들려서 팔지. 
: 시민아파트에만 일시불상환 공문이 붙었습니까?
주민2 : 아니오. 광주 대단지에서는 서울시가 땅값을 일시불로 상환하라고 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 왜 서울시는 갑자기 일시불 상환 공문을 보냈을까요?
주민3 : 아, 그거야 뻔 하지요. 돈도 없으면서 선거를 치르려고 아파트를 벼락치기로 지었잖아요. 이제는 선거가 끝났으니까 돈을 거두어들이는 거죠. 
주민1 : 이래저래 없는 놈만 신세 조지는 거죠. 

: 아, 그럼 서울 시민아파트 입주자 중에서 반 이상이 서울시 융자금을 일시에 갚아야 되는군요. 광주대단지 입주자 중 상당수는 땅값을 일시불로 내야하고. 
주민2 : 그렇지요. 팔아먹은 놈은 잔금 못 받을까봐 걱정이고, 산 놈은 돈이 없어서 걱정이고, 이래저래 모두가 걱정이지요. 

이러한 대화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객관화하고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 자신들만이 아니라 많은 서울시민들이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나는 주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를 바랐다.

: 어떻게 하실 작정인가요?
주민3 : 모두 한번 모여 봐야지요.
: 어떻게 모이지요? 기관(경찰, 정보기관)에서 막지 않을까요?
주민3 : 어림도 없지요. 누가 우리들을 막아요?
주민2 : 우리가 광고하고 모이나요?

: 작년에 조직한 시민아파트자치운영연합회는 살아 있습니까? 
주민1 : 먹고 살기 바쁜데 누가 그런데 신경 쓰나요? 흐지부지 되고 말았지요. 
: 각 지역 주민대표들과는 더러 만납니까?
주민1 : 그럼요.
: 그러면 쉽게 모일 수가 있겠군요. 

이날 참석한 주민대표들은 다른 지역 주민대표들과 만나 이 문제를 상의하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다. 이들은 자치운영연합회를 조직할 당시 주도적으로 일한 금화아파트, 연희B지구아파트 등의 주민지도자들을 만났고, 이 주민지도자들은 발 벗고 나서서 다른 여러 지역에 시민아파트 주민들을 만나며 주민들을 조직하기 위해 힘썼다. 

각 지역에서는 주민회의가 열렸다. 각 지역 주민대표들도 지속적으로 모여 일의 진행을 검토했다. 

나는 금화아파트에서 함께 훈련받은 전영환과 의논한 뒤 신상길 목사를 찾아갔다. 주민들과 만나 회의를 하고 대책을 세우려면 돈이 필요했다. 나는 신 목사에게 “도시문제연구소에서 하던 일이나 당신이 해야 하지 않겠나. 돈을 마련해주면 그 외의 일은 전영환과 내가 하겠다.”라고 제안했다. 

신 목사는 알아보겠다면 도시문제연구소의 노정현 교수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와우아파트 붕괴 이후 도시문제연구소의 입지가 곤란해진데다가 3년에 걸친 미국 연합장로교의 지원도 끝나가고 있었기에 자금을 마련해주기가 힘들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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