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광장시위_2 (25회)
  제5장 주민조직운동과 도시선교

나는 전용환과 함께 박형규 목사를 찾아갔다. 당시 CBS상무였던, 박 목사는 우리 이야기를 듣고는 아주 좋아하며 흔쾌히 개인 돈 3만원을 내놓았다. 그때 돈 3만원은 공무원의 한 달 치 월급이었다. 

나는 그 돈을 밑천 삼아 20여 일 동안 열심히 주민들을 만나고 다녔다. 거사를 하루 앞둔 6월 28일, 전용환과 나(조직가)는 한 중국집에서 마지막으로 주민대표들과 만났다. 

주민1 : 여러분,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항의 장소를 어디로 정할까요?
조직가 : 항의할 내용은 결정했습니까?
주민1 : 그거야 무조건 공문을 백지화 하라는 것이지요.

조직가 : 와우아파트가 무너지고 난 뒤에 부실공사한 곳을 서울시에서 수리해주었습니까? 
주민2 : 아니오.
조직가 : 그럼 하실 말씀이 많겠네요. 

주민2 : 그렇지요. 부실하게 공사한 곳들을 수리해주지 않으면 원래 우리가 살던 땅을 내놓으라고 해야지요. 
조직가 : 장소를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몇 명이나 모일건지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주민3 : 서울시에 한 일이니 시청 앞이 좋겠습니다. 
주민1 : 광화문 네거리가 좋습니다. 
주민4 : 중앙청 앞이 좋습니다. 

조직가 : 다 좋습니다만, 몇 시에 모일 건지도 고려해야 될 겁니다. 
주민3 : 아침 9시 시청 앞 광장이 좋겠습니다. 
(주민대표들이 모두 동의했다.}

조직가 : 어떻게 아침 9시에 모두 모일 수 있나요?
주민1 : 시청 앞으로 가는 골목에 흩어져 기다리다가 시청건물 시계가 9시를 가리키면 광장으로 나오면 됩니다. 
(주민대표들은 각 지역 주민들이 기다릴 골목을 정했다.)

조직가 : 질문 있습니다. 광주대단지 주민들도 옵니까?
주민2 : 아니오. 이 얘기가 새 나가면 끝장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면 그들은 그들끼리 하겠지요. 거리가 너무 멀어서도 곤란합니다. 광주에서 시청까지는 2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조직가 : 만일 정보가 새서 오늘밤에 경찰이 대표들을 모두 잡아가면 어쩌지요?
주민1 : 어림없습니다. 우리가 잡혀가더라도 제2대표, 제3대표가 있으니까요. 또 지난번 자치운영연합회 조직 때의 경험이 있으니까 정보는 새지 않을 겁니다. 

조직가 : 그때는 왜 정보가 샜습니까?
주민1 : 서로 대표를 하려고 선거운동은 벌이다 정보가 샜지요. 
조직가 : 이번에는 안 그렇습니까?
주민3 :  이번에는 재산을 빼앗기느냐, 안 빼앗기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때와 다르지요. 

조직가 : 만일 항의 후에 시장이 주민대표를 만나자고 하면 누가 나가지요?
주민2 : 누군가 나가겠지요. 우리들 진짜 대표들이 시장과 면담하러 나가면 안 되지요. 우리는 뒷전에서 구경이나 해야지요.

조직가 : 엉뚱한 사람이 대표라고 나가면 어떻게 하지요?
주민2 : 엉뚱한 사람이라도 공문을 백지화 하라는 요구는 할 것이며, 우리가 뿌린 유인물을 시장이 볼 것 아닙니까? 우리가 나갔다가 경찰에 연행되면 곤란해집니다. 

조직가 : 혹시 아무도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요?
주민1 : 아닙니다. 잘난 체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사람들이 있으니 누군가는 반드시 나갈 겁니다. 그리고 시장이 만나자고 제의한다면 그때는 주민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닙니까? 누군가 반드시 나갈 겁니다. 
조직가 : 글쎄요. 

주민들은 그동안 많이 발전해 있었다. 목표를 향한 태도는 강경했고, 필요한 일들을 조직가들이 언급만 해줘도 알아서 결정하고 정리해나갔다. 우리는 열띤 토의를 하느라 다 식어버린 짜장면을 먹고 헤어졌다. 

6월 28일, 오전 8시 30분경. 전날 논의한대로 서소문 쪽, 국회의사당 쪽, 대한체육회 쪽, 소공동 쪽, 남대문 쪽 등 다섯 곳의 골목에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9시 정각이 되자 물밀 듯이 시청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출근하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고 그 광경을 구경했다. 일부 시민들은 시위에 합세하기도 했다. 
 
▲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민아파트 주민 3천여명이 서울시 시민아파트 공사비 일시불 상환반대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신문에는 이 사실이 축소보도되었다.

이러한 시위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 분명했다. 시위대를 막을만한 경찰 인원은 배치되어 있지 않았다. 공무원 통근차가 몇 대 와서 광장 주위를 빙 둘러 막는 것을 빼고는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결국 서울시장은 주민대표와 면담을 요청했다. 미리 계획한대로 주민대표는 나가지 않았다. 어떻게 상황이 흘러갈지 모르는데 지도자가 이일로 잡혀가면 곤란한해지기 때문이었다. 

이 시위는 조직적으로 준비를 한 게 아니라 억울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서 항의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예상대로 시위에 참여한 주민 중 누군가가 대표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공문의 백지화와 더불어 부실한 아파트의 수리를 요구했다. 시장은 이러한 요구조건을 무조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전용환과 함께 KAL빌딩에서 처음부터 시위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러 골목에서 사람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와 광장에 모여들고, 시민들이 합세해 시위를 하는 모습은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주민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은 그야말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였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나중에 신문에 난 것을 보니 1,000여명이라고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축소보도된 것이었다. 적어도 3000명은 훨씬 넘어보였다.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었다. 시위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서둘러 서울을 떠났다. 서울근교인 춘천으로 가서 한동안 피신해 있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가슴이 숨 가쁘게 요동쳤다. 혹시 누군가 쫓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기차 안에서도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시위를 조사하다가 우리 이름이 나오면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를 훈련시킨 도시문제연구소나 자금을 대준 뱍형규 목사 등도 위험해 질수 있겠다는 생각에 춘천에 도착해서도 두려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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