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공판은 9월 12일에 열렸는데, 한승헌 변호사의 반대 심문이 있었다. 한승헌 변호사가 박형규 목사에게 물었다.
“부활절연합예배는 무엇을 가지고 참석하는가?”
“찬송가와 성경이다.”
“예배에 참석할 때 흉기를 가지고 오지는 않는가?”
“그런 경우는 없다.”
“그럼 성경과 찬송가로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그러자 방청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박승서 변호사도 내게 물었다. 그는 서울제일교회와 관련이 있어서 우리의 변호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종종 날카로운 변론으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4월 22일 피고인이 무슨 큰일을 해서 4.19모양으로 일을 할 것으로 생각한 적은 없는가?”
“없다.”
“지금 와서는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 정권을 전복할 수 있는 시기라고 판단했다’라고 공소장에 기술되어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가?”
“없다.”
“민심이 동요되고 있다고 생각한 일은 있는가?”
“없다.”
“윤필용은 그 일에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는가? 평소에 그를 존경하는가? 그의 행적에 대해 아는가?”
“모른다.”
“4월 22일 구체적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째서 플래카드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만들지 않았거나, 가지고 왔어도 사용하지 않고 그냥 가져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플래카드를 들어 올린다고 전단을 나누어주고 하면 현장에서 소동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교인들이 모여서 소란을 피울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9월 18일에 열린 결심공판에서 나는 최후 진술을 통해 “본인은 아직도 한국에 종교적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단지 나라를 위하는 예배가 되도록 하고자 했던 것일 뿐”이라는 심정을 밝혔다.
9월 25일 오후 2시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인정하여 박형규 목사와 나에게는 징역 2년을, 남삼우 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날의 선고공판은 비공개로 열렸는데, 3분여 만에 종료됐다.
이후 문호철 검사는 공안검사로 승승장구 했다. 중앙정보부에서 일하는 동안 민청학련사건, 인혁당사건 등 공안사건을 담당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는 중앙정보부 수사국장까지 진급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1978년 41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는 그가 숨지기 전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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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판 일마다 방청객이 많아 재판도 받을 만 했다. / 재판과정 자체가 운동차원에서 교육적인 일이었다. / WCC의 빅터 슈, 함석헌 선생 등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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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죄가 선고되고 이틀 만에 우리에게 보석이 결정되었다. 우리 세 사람은 KNCC에서 보석금을 내주어 9월 27일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석방되고 나서 신문을 보니 구속한 사람은 박형규, 권호경, 남삼우, 이종란(플래카드를 가지고 협박, 흥정한 사람)이었고, 즉심 회부된 사람은 김동완, 이철홍(전 신민당 조직국 2부차장), 나상기(KSCF 회장), 진산전, 이용일(통일당 서대문구당 총무부장), 이계곤(대한교육보험 외무사원), 김동윤(신민당 조직원), 이상윤, 정명기, 황인성, 서창석(KSCF 회원)이었다.
구속된 사람의 명단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이 계획이 왜 실패했는지 알게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 진산전 씨 책임 아래 주민조직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제작하고 펼치려고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후 이 사건은 재가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974년 2월에 다시 구속되면서 긴급조치 1호 사건과 병합되었다. 당시 긴급조치 위반은 최고 형기가 15년이었으나, 나는 내란예비음모죄로 선고받은 2년의 형량이 더해져 1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014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민∙형사상의 보상을 받게 되었다.
부활절연합예배사건을 통해 나는 ‘남이 조직한 곳에 가서 우리 요구를 하려면 망할 수밖에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을 도모하려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키워서 해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조직을 한다 해도 목적을 이루기 어려운데, 하물며 남이 조직한 곳에 가서 하려면 양쪽 모두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부활절연합예배는 실패한 조직운동인데, 정부가 이 사건을 키워서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 우리가 재판을 받는 동안 열리던 기도회가 종로5가로 가면서 목요기도회가 되었으니 그 단초를 제5공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이 사건은 어떤 평가가 있든지 간에 한국 인권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게 되었다. 남산 부활절연합예배사건은 박형규 목사의 말처럼 ‘하나님이 도와서 실패한 것을 성공’시킨 사건이다.
1974년 1월 8일 오후 5시를 기해 긴급조치가 발동되었다. 박정희는 담화를 통해 “유신체제의 부정을 방치할 경우 국가의 안전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긴급조치를 취했다.”라며 긴급조치 발동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독재정치를 하겠다는 국민 탄압조치였다. 이 땅의 민주주의는 10월 유신 이후로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모일 수도, 의견을 피력할 수도 없었다.
수도권 실무자들은 판자촌에서 주민들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했고, 어떤 회의에서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없었다. 주민과 만나 대화한 내용은 즉시 신고가 들어가고 조사를 나왔다. 이것은 대한민국 어디서든 벌어지는 일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