훠모사(Formosa) _1 (18화)
  제3장 우리가 청년이었을 때

연말로 다가서는 날씨가 매서웠다. 영하 십도를 하회하는 혹한이 열흘 넘게 이어지는가 싶더니 한강이 강심까지 얼어붙었다. 지구 정수리의 한랭대가 한반도 쪽으로 확장하면서 삼한사온의 현상이 파괴된 때문이라 한다.

기후마저 전래의 전통이 무너진 탓인가, 눈이라곤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강추위의 세모가 삭막하면서 우울했다. 거기에 예순으로 치닫는 나이의 고갯길 또한 수월하지 않았다. 회심의 이순(耳順)이 되지 못한 회한의 비애가 날씨보다 을씨년스러웠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리고 싶었다.

문득 타이완이 떠올랐다.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의 캘리컷, 다시 말라카에서 마카오까지, 지구의 절반 둘레를 배타적 전관수역으로 활보하던 위대한 포르투갈의 자랑스러운 항해인들. 그들이 이름 지었다는 ‘훠모사’, 그들의 말로 ‘아름다운 섬’이라던가.

섬을 세로지르는 중앙산맥의 열대림과, 산록의 야생 접시꽃을 보고 싶었다. 준령을 타고 앉은 노천탕의, 용암처럼 분출하는 유황천에 안팎 찌든 심신을 뜨끈하게 담그고 싶었다. 그러고는 동해안의 화렌항(화연항:花蓮港)과 *산띠**꾸냥(산지고낭:山地姑娘 *산띠:산지 / **꾸냥:아가씨), 추위에 찌들지 않는 태평양을 만나보고 싶었다.

내가 타이완 땅을 처음으로 밟은 것은 육십년대 후반이었다. 당시 국영 해운공사의 ‘샴 라인(태국 정기항로)’ 소속 제주호에 견습 항해사로 승선하던 스물한 살 때였다. 태국의 옛 이름을 딴 그 항로에는 요코하마와 방콕이 기종항(起終港)이었고 부산, 지룽, 홍콩 등이 경유항이었다. 

타이베이의 관문항인 지룽(기륭:基隆).

당시의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발전된 경제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네와 진배없이 화약 냄새가 짙었다. ‘본토수복’의 기치 아래 밤마다 통금사이렌이 울었고, 진먼도(금문도:金門島) 등 해협 도서지방으로 떠나는 병력 수송선단의 군가가 포구를 뒤흔들었다. 

당시 부산항의 파월장병 환송식과 흡사했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항구의 유흥과 환락이 번성하고 있었다. 더구나 지룽항 일원이 파월 미 해군의 휴양지로 지정되어 있어서, 웬만한 거리와 주점마다에는 하얀 제복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도 바로 그런 곳이었다. 넓은 홀과 정원 여기저기에 미군 수병들이 갈매기 떼처럼 모여 앉은 하와이(하위이:夏威夷) 바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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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잔디 정원의 안개빛 조명에 눈동자가 유난히도 반짝이던 꾸냥, 리사(麗紗). 그녀는 구경삼아 들른 나를 야자수 밑 하얀 테이블로 안내하고는 동양인인 내가 양키들보다 좋다면서 친절했다.

그날 이후, 나의 견습 항로는 기다림과 환희의 뱃길이었다. 한 달에 이삼 일이 고작이긴 했지만, 나는 배가 입항해 있는 저녁마다 하와이 바를 찾았고 그녀는 어떤 좌석도 물리치면서 나를 맞아 주었다. 

그러면 그녀와 나는 마치 둘만의 지정석이라도 되는 듯 야자수 밑 하얀 테이블에서 어울렸고, 그런 우리들의 등 뒤로 부겐빌리아 선홍빛 꽃덩굴들이 축제의 불꽃인 양 뒤엉키며 타올랐다. 

그러다가 통금에 임박해진 밤이면 그녀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간혹 다녀가는 그녀 어머니의 빈 방에다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고는 더운 물로 발을 씻겨 준 다음 재스민 향차(香茶)를 내어오는 것이었다.

타이완총독부의 관리였던 일본인 아버지와 도래한족(渡來漢族)인 어머니 사이에 해방둥이로 태어난 그녀의 고향이 화렌이라 했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높은 산맥 너머 동해안의, 연꽃처럼 아름다운 항구마을이라 자랑했다. 
 
너무나도 드높아서 언제나 구름에 묻혀 있는 산맥 속에는 특이한 모습의 고산족들이 살고 있다고도 했다. 그들의 산채(山寨)마을에는 연중 야생 접시꽃이 붉게 피어나며 달밤이면 산띠꾸냥(꾸냥:아가씨)들의 애절한 노랫가락이 계곡을 메아리친다면서.

고산족으로 통칭되는 열두 종족과 근래에 발견된 네 분족(分族). 그들의 시조는 필리핀에서 건너왔다고 했다. 돌림병으로 주민들이 몰살한 어느 섬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매가 타이완 동해안으로 도망쳐 와서 병마가 쫓아올 수 없는 산중에 터를 잡은 것. 그러나 둘만의 삶이 외롭고 무서웠다. 

자식을 갖고 싶었지만 남매간에 그럴 수도 없었다. 이에 동생이 꾀를 내어 오빠를 꼬드겼다. 산 너머 동굴에는 자기들과 다른 모습의 처녀가 살고 있으니 그녀를 찾아가서 후손을 잉태시키라고. 그러고는 전신을 물감으로 변장한 뒤 앞질러 달려가서 어두운 굴 속에서 오빠의 씨를 받은 것. 

그것이 그들 종족 번식의 시초였고 얼굴 문신의 유래라 했다.

지극히 험준해서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운 산 속의, 야성적인 만큼 배타적인 그들의 생활 양식은 너무나 특이해서, 지금껏 어떤 행정력도 그들의 전통을 간섭할 수 없었다. 50년 동안이나 타이완을 지배했던 일본의 완력도 그들만은 복속시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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