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는 가까이 지내던 큰댁 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의사의 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유방암으로 떠난 것이다. 평소병원 가기를 싫어하고 공단 검진조차도 하지 않았단다. 검사를 권하면 “그냥 살다 가지 뭐.” 하더니 지난겨울 “허리가 아파서 운동을 못하겠다. 동생! 내년 봄부터 운동 같이하자.”고 하였다.
그 후 봄이 되었다.
“아직 완치가 안 되었으니 조금 더 있다가 할게.” 이 말이 마지막이 될 줄이야.
어린 시절 언니와 함께했던 아름다운 추억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하였다. 언니는 가족과 친척들에게 무한한 정을 베풀고 떠났지만, 그 따뜻한 마음과 향기는 언니를 기억하는 모든 이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리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평소 소망교회 동산을 그토록 원하던 언니는 잠시 이 세상에 머물다가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시인 천상병은 그의 시 〈귀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잠시 머물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삶...
마지막 가는 길, 나의 장례에 대해 생각해본다
손주들이 할머니의 깊은 마음을 읽어주고 기억해주길 소망'
고통스러운 삶도 천상에서 잠시 내려온 소풍쯤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미치 앨봄의 베스트셀러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가 생전에 울고 웃으며 추억을 되돌아보는 장례식과 특별한 추도식이 떠올랐다.
8명의 손주는 저마다 할머니와 함께 한 사연을 읽어 내려갔다.
“할머니!” 하고 전화하면 “용돈이 필요하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렸단다. 손수 만들어 주신 맛있는 점심, 함께했던 뜻깊은 대화,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맹세한 손녀…. 추도식에 참석한 모든 이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미소 짓게 한다.
투병하는 선배나 친구에게 병문안을 가려면 대개 거절한다. 본인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누구도 만나길 꺼린다. 기나긴 역사를 만들었지만 떠날 때는 한순간 자연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를 알았던 친지들은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고인을 잠시 머릿속에 떠올렸다가 잊는다.
어느 후배는 장례 문화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하고 있다. 바쁜 생활 속에서 ‘장례’라는 단어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인생을 마무리할 단계라고 생각하니 ‘장례’라는 단어가 남의 일만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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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의약사회공헌협의회 활동으로 은평마을에서 어르신들에게 의료봉사와 식사봉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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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설문조사에서 평소 본인의 장례에 대한 생각과 사후에 바라는 소망과 부탁을 써 보라는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장례를 하면 좋을까? 묘비는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지? 모든 것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해봐야 한다.
종로구 홍지동에 위치한 ‘쉼 박물관’을 찾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죽음’ 그리고 ‘장례문화’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 1층엔 대형 상여와 혼백을 운구하는 요여, 상여 장식, 제례 때 쓰는 제기. 죽음을 알리는 부고장, 각종 고가구가 있다.
2층에는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새, 까마귀의 모형이 공중에서 연출된다.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쉬고 있다.’고 하여 쉼 박물관으로 이름 지었단다. ‘쉼 박물관’ 박기옥 관장은 40년간 살던 집을 개조해 꾸민 공간으로 죽음을 터부시하는 인식을 바꾸고 우리 얼이 살아 있는 장례문화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박물관을 개관했다고 한다.
인간은 누구나 ‘탄생의 문’을 통과하여 이 세상에 나왔지만 결국 ‘마침의 문’을 한 번 더 지나야 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형체를 주었고, 삶은 우리에게 수고로움을 주었으며, 늙음은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었고, 죽음은 우리에게 쉼을 주었다.
삶의 아름다움이 죽음 또한 아름답다 해도 되리라.’ 〈장자의 내 편〉 구절이다. 행복하게 살다 간다는 것은 의미 있는 삶이라 할 수 있다. 긍정심리학자 칙센트 미하이 교수는 몰입하면 순간은 행복해 질 수 있다 했다. 서울 의대 정현채 교수는 〈죽음, 또 하나의 시작〉의 연재를 통해 죽음은 끝이 아니고 다른 차원으로 이동이라고 한다.
저마다 가는 길에는 사연이 많다. 행복한 길, 불의의 사고길, 가슴을 저미는 투병의 길, 애환과 분노가 얽힌 가시밭길, 가는 길마다 무수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떠난다. 이 세상에 남은 이들은 그들을 보내면서 슬퍼한다. 그러나 장례식장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관하게 하얀 국화꽃으로 그들의 삶을 장식하며 덮어버린다.
하얀 국화만으로 그렇게도 의미 있고 뜻 깊은 삶을 살고 간 영령을 위로할 수 있을까? 고인들이 평소 좋아했던 그 무언가를 한번 쯤 생각해 볼 방법은 없는지.
장례식장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축하 파티가 되었으면 좋겠다. 종교에 따라 의식의 차이는 있지만 파스텔 색조의 갖가지 꽃도 좋고 고인의 전공분야와 관계있는 장식도 좋다. 3일을 묵고 가는 장례식장에 고인을 기억해 주던 분의 따뜻한 격려와 글귀 한 줄도 좋다. 고인의 여행길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호사스런 장례식보다 손주들이 할머니의 깊은 마음을 읽어주고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영정 앞에 내가 좋아했던 젊은 날의 사진들과 예쁜 꽃, 나의 수필집, 즐겨 듣던 음악, 손때 묻은 청진기도 괜찮겠다.
나의 편안한 진료실에서 이 글을 쓰는 지금, 마치 내일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객처럼 마음이 바빠진다. 지금부터 찬찬히 준비해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