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일 년 만에 첫 딸을 낳았다. 시댁에서는 오래간만에 생긴 아기인지라 환영과 귀여움을 독차지하였다. 그런데 두 번째는 ‘당연히 아들이 나오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또 딸이었다.
그 무렵 시누이가 첫아들을 안고 집에 왔다. 시아버지는 ‘얘가 정씨가 아니고 조 씨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부러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세 번째는 꼭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남편이 장남인지라 더욱 부담감을 느꼈다.
그 후, 마음대로 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세 번째 아기가 생기자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은 성별검사가 금지되었지만, 그 당시는 드물게 시행되었다. 친구 언니의 소개로 어둑어둑한 저녁, 불안한 마음을 안고 양수 검사를 받으러 산부인과에 갔다. 그런데 초음파를 하시던 선생님께서 “어! 심장이 두 개가 뛰네. 쌍둥이잖아.” 하신다.
가슴이 철렁하였다.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딸이 둘이면 어쩌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결과는 며칠을 기다려야 한단다. 마침내 양수검사 결과 한 명은 아들 염색체가 나왔는데 다른 한 명은 아들인지 딸인지 모르겠단다. 시어머니께서는 “한 명이 아들인데 어쩌겠니. 내가 둘다 키울 테니까 낳아야지” 하고 반색을 하신다.
친정어머니는 “체구도 작은 네가 어떻게 쌍둥이를 낳을 수 있느냐”고 하시며 당장 유산을 권하신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되든 아기를 낳기로 마음먹었다.
내리 딸 둘 끝에 낳은 쌍둥이 아들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애지중지 키웠던 두 딸과 쌍둥이,
또 여덟 명의 증손자들을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5개월이 되자 병원 근무가 힘들었는지 하혈을 시작하였다. 유산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걱정하고 있는데 내가 근무하는 병원 내과 과장님은 “환자 걱정하지 말고 절대 안정을 해야 한다.”며 휴가까지 주셨다. 얼마나 감사한지.
둘째 딸을 출산할 때 오랜 시간 진통을 하고도 결국은 아기가 나오지 못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위험하다 하여 응급으로 제왕절개 수술을 하였다. 그러니 쌍둥이는 무조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만 했다. 임신 마지막 달에는 눈사람처럼 배가 불러 놀림을 받기도 하였다. 걷기도 어렵고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다.
드디어 제왕절개 수술을 시행하였다.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어렴풋이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가 쌍둥이 둘 다 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쌍둥이들이 미숙아인줄 알고 간호사들이 안고 인큐베이터가 있는 방으로 달려갔지만 3,020g과 2,750g이나 되어 쫓겨났단다.
시어머니는 너무 기뻐 춤까지 추셨단다. 그때만 해도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구호가 한창일 때였다. 하지만 우리 집은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여 야만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출산을 감행했다. 하루는 퇴근하고 오니 시어머니께서 “한 녀석이 찡찡대서 보니 우유 먹인 놈을 두 번 먹였지 뭐야” 하고 막 웃으신다. 또 어느 더운 날엔 같은 녀석을 두 번 씻기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두 딸과 쌍둥이 아들을 두고 나는 덴마크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공무원 신분이라 아이들은 같이 갈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엄청난 짓을 한 것 같다. 같은 시기에 남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의과대학 심장내과에 교환 교수로 갔으니 말이다.
그때는 휴대전화도 없는 시대라 너무나 아이들이 보고 싶어 전화 통화 한번 하면 울다가 끝이 났다. 딸들은 엄마 보고 싶다고 나의 홈드레스를 잡고 엄마냄새 맡았고 쌍둥이 아들은 TV에 나오는 여자는 모두 엄마라고 불렀단다. 나는 덴마크에서 독일로 합류한 후 그나마 한국말 할 수 있는 남편이 있으니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독일에서 귀국하는 날 세 살 된 쌍둥이가 1년 만에 나를 보더니 “우리 엄마 아니야. 우리 엄마는 서독에 있어.” 하고 울면서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는데 난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쌍둥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이웃사람이 우리 애들을 쌍둥이인 줄 모르고 “저 집 애들은 너무 부산스러워요. 위층에 있다가 금방 아래에 내려오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네요.”라고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웅변대회를 하게 되었다. 각각 반이 다른 쌍둥이가 결승에 올라가 누구를 최우수상을 줄지 몰라 문의가 왔다. 난감하지만 형에게 주라고 하였다. 중학교도 같은 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때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반장이 된 동생이 자랑하면 형은 풀이 죽어 말도 안 하고, 성적표를 받는 날은 더욱더 긴장하게 된다.
항상 두 녀석의 눈치를 살피고 성적이 떨어진 아들을 위로하느라 바빴다. 이렇게 고민을 하다가 소아신경정신과 선생님과 상담을 했더니 “쌍둥이를 묶어서 키우지 말고 개체로 키우라”고했다. 고등학교를 각각 다른 학교로 입학시켰더니 서로 경쟁하지 않고 비교도 하지 않으니 둘 다 행복해했다.
그러나 대학 수능 시험에서 두녀석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았다. 실망한 나머지 나는 경고했다. “너희 인생은 너희가 책임을 져야 해. 공부하겠다면 얼마든지 뒷바라지를 해주지만 그 이상은 엄마가 해줄 수 없어” 하고. 그러나 마음속으로 ‘그래 나의 아들들이 담을 그릇은 그 정도밖에 안 돼’ 하고 포기하며 ‘유학이나 보내지’하고 도피처를 생각하였다.
쌍둥이가 중학교 방학 때 캐나다 어학연수를 갔었다. 그때 쌍둥이는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민박하면서 먹을 것이 넉넉지 않아 배고픔도 느껴보고 허허벌판 깜깜한 캐나다 시골길에서 집을 못 찾아 고생도 해보아 집을 떠나면 힘들다는 것을 알았는지 유학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 후 두 녀석은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동생은 밤새도록 화장실에서 칼날이 무딘 면도 칼로 형의 머리를 빡빡 밀어주었다. 무언가 굳게 작심을 한 듯 두 녀석이 열심히 공부하더니 각각 다른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3년 후 시아버지도 이 세상을 하직하셨다. 시아버지께서는 쌍둥이들이 의과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 듣고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쌍둥이들은 6년 동안 같은 교실에서 공부한 여자 친구를 각자 사귀어 같은 날 태어날 때와 같이 30분 간격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들은 영화에서나 봄직한 이벤트 같다며 재미있어 했다. 지금은 쌍둥이와 두 명의 며느리가 모두 내과 전문의가 되었다. 큰 아이는 군 복무를 하고 두 아들의 아빠가 되었고 작은 아이는 군 복무 대신 카이스트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2개월 후면 아빠가 될 것이다.
이렇게 지금까지 쌍둥이의 운명은 거의 같이 가고 있다. 다른 부모들처럼 외국 연수 갈 때 같이 데리고 가지 않았다고 원망하던 딸들은 이제 아기 엄마가 되었다. 큰딸은 산업디자인 하는 남편, 두 딸과 함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며 전문직 여성으로 미국에서 열심히 잘 살고 있다. 둘째 딸은 치과의사인 남편과 아들딸 키우며 예쁘게 살고 있다.
전문 직업인으로서 네 명의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시부모님의 배려와 남편의 외조가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본다. 돌아가신 시부모님이 애지중지 키웠던 두 딸과 쌍둥이, 또 여덟 명의 증손자들을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난 오늘이 있기까지 시부모님이 주신 무조건적인 사랑과 아무 탈 없이 아이들을 잘 키워주신 수고에 대해 한없는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이글을 시부모님 영전에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