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며느리 인사 오던 날 (14화)

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내가 시댁에 처음 인사 가던 날 남편이 “이 집 맏며느리 인사 왔습니다.” 하고 큰소리로 외치던 생각이 난다. 그때 훤칠하신 시아버지가 거실로 나오셔서 “그래 잘 왔다. 어서 들어오렴.” 하고 반갑게 맞이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내가 시어머니가 되다니.

쌍둥이의 아내가 될 예비 신부들이 같은 날 집으로 인사 온다니 마음이 설레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식구 대접을 어떻게 할까? 차라리 밖에서 만날 걸 그랬나. ‘그래, 있는 그대로 보여 주고 어차피 같은 식구가 될 텐데’ 하고 집으로 초대하였다.

예비 며느리들은 쌍둥이와 의대 교우로 오랫동안 사귀었다고 한다. 지인으로부터 큰 아이의 예비 신부에 대해 인성과 품격을 전해 들어 호감을 갖고 있었다.

두 예비 며느리를 처음 만난 날 주옥같은 두 딸을 얻는 기분

귀한 집 딸들이 시집와서 해가 거듭할수록 아름다운 여인으로,

어머니로,전문직 여성으로, 성숙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

작은 아이 예비신부는 의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아들과 같이 연주한다고 들었다. 연주회가 있던 날 뜻밖에 혈액암 전공하는 교수를 만났는데 그분이 바로 작은 예비신부의 아버지였다. ‘정말 인연이구나.’ 하는 생각에 반갑기도 하고 한결 미더웠다.

예비신부들이 밝은 표정으로 집에 들어오자 난 주옥같은 두 딸을 얻는 기분이었다. 두 며느리는 똑같이 167cm의 날씬한 체격으로 나의 작은 키를 보상해 주는 듯하였다. 쌍둥이들은 여자 친구의 성적이 자기들보다 더 우수하고 마음도 착하다고 자랑하여, 콩깍지가 씌었다고 놀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범생이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고 가능한 환자이야기, 진료근무 분위기 등 의사들이 평소 주고받는 대화로 ‘시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 한날 30분 간격으로 쌍둥이 결혼식을 마치고 기념촬영

외국에서 오랜 친구나 지인이 오면 음식점보다 집으로 초대한다. 번거롭기는 하지만 시간에 쫓기지 않고 편안히 담소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쉽고 오래 걸리지 않는 음식을 준비하곤 한다. 나도 그때를 떠올리며 따뜻한 마음이 담긴 식탁을 꾸미기 위해 식탁보와 그릇, 특별한 날과 어울리는 냅킨, 포도주잔의 색깔, 음식의 종류 등을 구상해 보곤 한다.

언제가 살림 잘하는 친구 집 장식장에 진열되어있는 다양한 도자기를 보고 욕심이 생겼다. 갑자기 그릇과 음식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그때 장만한 그릇 세트는 연노랑 바탕에 과일이 그려진 앤슬리의 ‘오차드 골드’ 도자기이다.

귀한 손님을 맞이할 채비를 하며 그 도자기가 빛을 보게 되었다. 그릇을 꺼내놓고 보니 색깔과 무늬가 아름다워 별난 음식이 아니어도 분위기는 이미 멋진 맛을 내고 있었다.

평소 즐겨 요리해 먹던 1호 음식은 갖가지 채소와 키위, 토마토에다 살짝 볶은 전복을 올려놓고 식초, 간장, 설탕, 참기름, 마늘, 양파로 오리엔탈 간장소스를 만들어 버무린 샐러드이다.

가지, 양파, 버섯, 낙지를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 굴소스로 간을 하여 2호 한 접시, 신선한 미나리와 살짝 데친 오징어를 새콤달콤 초고추장에 버무린 3호, 왕새우를 포도주에 간을 한 버터구이 4호, 5호는 생선회, 살짝 구운 차돌박이를 깻잎에 싸 겨자소스와 함께 먹는 6호 한 접시… 짧은 시간에 식탁 가운데 큰 접시들을 모두 채웠다.

식사 후 디저트를 생각하고 있을 때 남편이 빠진 것이 있다고 하며 촛불을 등장시켰다. 은빛 나는 푸른색 초가 꽂힌 크리스털 촛대에 연분홍 장미가 장식되어 화려함을 더해 주었다.

크리스털 포도주 잔과 촛대가 어우러져 며느리들을 환영하는 식탁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은은한 촛불 밑에서 포도주잔을 부딪치며 한식구가 되는 것을 축하하는,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쌍둥이는 2008년 4월 5일, 30분 차이를 두고, 태어날 때처럼 같은 날에 결혼식을 했다. 두 아들 내외, 네 명이 모두 내과 전문의가 되었고, 큰며느리는 두 아들, 둘째는 딸 하나를 두었다.

나는 평소에 미처 못 한 덕담을 카드에 적어 생일에 전달한다. 며느리들도 따뜻한 사랑의 인사를 전해 오곤 한다. 귀한 집 딸들이 시집와서 해가 거듭할수록 아름다운 여인으로, 어머니로, 전문직 여성으로, 성숙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만 하다.

앞으로 오래도록 사랑의 향기를 가득히 뿜어내는 가정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