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더니 발가락으로 내 이름을 써 준다.
성구(가명)는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코가 오똑한 야무지게 생긴 12살 남자아이다. 의학서적에서만 보았던 포코멜리아(해표상지증), 즉 양팔이 없고 몸통과 짧은 두 다리만 있다. 발가락 사이에 연필을 끼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밥도 먹는다.
일상생활은 몸통과 짧은 다리로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한다. 신체적 장애는 있어도 언어의 소통은 정상이다. 도우미가 귀띔해주길 방송에도 나오고 재주가 많아 유명인사란다. 의학적으로 이 질환의 원인은 탈리도마이드라는 진정제를 임산부가 남용하여 태아 때부터 생길 수 있는 기형이다.
196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이 약물에 의한 기형이 알려지면서 소동이 났었다. 성구 어머니가 그 약을 먹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해맑게 웃는 성구 앞에 서면 안타까움과 미안함에 할 말을 잊곤 했다.
1960년대에 임산부들이 입덧 방지를 위해 사용한 약이 후세에 이렇게 큰 부작용으로 기형아들이 탄생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당시 독일에서 5,000명의 아기가 장애를 갖고 태어났고 50여 개의 나라에서 12,000명의 아기가 기형아로 태어나 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 그 후 사용이 금지되면서 부작용에 대한 기전도 밝혀졌다.
탈리도마이드라는 화학약품이 합성될 때 생긴 “광학이성질체” 때문인데 광학이성질체란 합성이 되는 과정에서 하나는 약의 효과를 나타내고 하나는 부작용을 나타내거나 효과가 없는 상태가 되는데 탈리도마이드는 바로 부작용을 나타내는 이성질체가 태아의 팔다리에서 혈관 생성을 촉진하는 단백질에 결합하여 기능을 억제하는 것이다. 결국, 혈관이 생기지 않아 팔다리가 없는 기형아가 되는 것이다.
성구는 양팔이 없고 몸통과 짧은 두 다리만 있다.
중생구제 정신으로 설립된 승가원에는 무연고 장애아동들이 생활...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더욱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부처님의 중생구제 정신을 근간으로 사회복지 구현을 위해 설립된 시설이 성북구 안암동에 있는 승가원이며 이곳에는 68명의 무연고 장애아동이 생활하고 있다. 성구는 수년간 이곳에서 생활하며 밝게 자라고 있다. 학교도 다니고 있지만 세 번째 방문 때는 성구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아 만날 수가 없었다.
이곳에 있는 아동들은 모두 장애 아동으로 다운증후군이 제일 많다. 이러한 아동들은 부모가 키울 능력이 되지 않아 위탁한 경우,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무연고 아동, 때로는 아예 나타나지 않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다운증후군의 유병률은 약 750명 중 1명 정도이다. 진료하는 동안 얼굴 외형이 거의 비슷한 아동들이 계속 들어왔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운증후군의 얼굴은 비슷하다. 대부분 사람은 46개의 염색체를 갖고 쌍을 이루어 23쌍의 염색체가 있다. 이 중 22쌍의 염색체는 상염색체라고 하며 1쌍은 성별을 구분하는 성염색체이다.
상염색체 중 21번 염색체가 1개 더 생겨서 이 염색체와 관련 있지 않나 의심하지만 확실한 원인은 모른다. 또한 상염색체가 융합하여 전위형으로 나오거나 일부 세포에만 보이는 모자이크형도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상염색체의 이상 정도에 따라 가볍게 나타날 수도 있고 심한 장애가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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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건의약단체 사회공헌 활동으로 승가원 진료활동과 기증품을 전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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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대기실이 소란해졌다. “어어…” 하고 괴음을 지르는 다운증후군 환자 은지(가명)가 왔기 때문이다. 진료실에 들어오면 혈압계를 가리키며 팔을 걷어 올린다. “넌 혈압이 정상이야.”라고 해도 혈압계를 가리키며 측정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면 배를 가리키며 “어어…” 하면서 찡그린다.
비록 말은 되지 않지만, 감정과 표현은 살아있고 상대의 말도 알아듣는다. 머리가 아플 땐 머리를 가리키며 소리 지른다. 가끔 정서불안이 있을 때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검사를 위해 피를 뽑거나 주사를 맞아야 할 때는 병원 식구 몇 명이 붙잡아야 한다.
은지의 비위를 맞추고 아기 다루듯 원초적인 질문과 칭찬을 하면 “네!” 대신 “으으…”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약속한대로 잘하겠다고 대답한다. 은지를 만난 지 어느덧 20년이 넘어 이제 34살이 되었다.
은지 어머니는 올 때마다 애처로운 표정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종합검사를 하면 이상이 없는데 염색체 한 개가 문제라며 “수술해서 없앨 수는 없나요?” 하고 묻는다. 수술할 병이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잘못되었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다음 환자를 젖혀두고 열심히 설명해 돌려보내지만 다시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와 “선생님, 나이가 들어 이성이 그리운가 봐요, 결혼시키면 안 될까요?” “짝을 맞춰 주고 싶은데… 서울대에서 장애가 없는 사람은 괜찮다고 하네요.” 하니 참으로 답답하다. 정상생활을 못 하는 은지에게 결혼은 힘들다고 해도 매번 같은 질문을 한다. 잘못된 결혼을 할까봐 걱정되어 어머니가 옆에서 평생 도와주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내가 먼저 가면 우리 은지는 누가 돌보느냐?”고 눈물을 글썽인다.
이 질환은 성인이 되면서 백내장, 당뇨병, 면역계 이상, 사시, 폐고혈압, 수면 무호흡증, 잦은 호흡기감염, 갑상샘 질환, 우울증, 강박장애 등으로 수명이 짧아질 수 있는 합병증이 오게 된다. 최근 보고에는 관리를 잘하면 50~60년으로 장수도 가능하다고 한다. 다운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1862년 처음 이 질환을 밝힌 영국 의사 존 랭던 다운(John Langdon Down)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처음에 다운은 19세기 중엽 다른 과학자들과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진화론의 영향을 받아 다운증후군을 원시 종족으로 퇴화한 예로 보고 다소 동양인의 용모와 닮은점을 들어 ‘몽고리즘-몽고리언’이라고 명명했으나 인종비하적인 명칭이 부적절하다 하여 바뀐 것이다.
은지 같은 아이들은 복지관, 생활 보호시설에 보내지만, 일정 시간학습하고 집에 오면 나머지 생활은 어머니가 돌봐야 한다. 하느님이 주신 선물로 생각하고 더욱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여러 장애시설에 방문해보니 그나마 부모가 있는 은지는 더없이 행복하다고 생각된다.
신체장애는 일반인도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이며 지적 능력의 상실도 나이가 많아지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얼마전부터 장애인 복지법에 따른 등급제를 시행하여 작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 다행이다. 좀 더 관심을 갖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