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텐포드 대학의 인간 생물학과 교수인 바이러스 전문가 네이선 울프(Nathan Wolfe)는 《바이러스 폭풍》에서 문명은 최첨단을 달리고 있지만, 대참사를 부르는 병원균에 대해서는 대처 방식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2001년 한 해 동안, 9.11 뉴욕테러 사건(2,977명)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약 8천 명이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2009년 3월 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신종 인플루엔자A(H1N1, 돼지독감)가 발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28만4천 명이 사망했다.
냄새 없는 바이러스는 공기와 물을 타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닥쳐올 새로운 바이러스 폭풍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말해 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파견근무를 했던 남자가 진료실로 찾아왔다.
“혈액 검사 다 해 주세요. 에이즈 검사도 됩니까?” 하고는 불안해한다. 서양 여자와 성관계를 하였기에 불안하여 귀국 즉시 병원을 찾았다고 한다. 평소 그의 가족도 잘 알고 있는 터라 더는 묻지도 못하고 검사부터 하였다.
1990년대 초, 전 세계는 에이즈로 몸살을 앓아
지속적인 약물 개발로 최근에는 ‘완치’라는 용어도 사용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나 증식억제와 면역기능 유지
환자는 최근 입맛도 없고 피곤하고 열감도 있고 림프샘도 부은 것 같다고 호소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에이즈 검사는 음성으로 나왔고 환자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1990년대 초, 전 세계는 에이즈로 몸살을 앓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암과 백혈병을 뛰어넘는 에이즈는 양지에서 말할 수 없는 무서운 질병으로 인식되었다. 에이즈의 발생 원인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다른 질병과 달리 동정을 받을 수도 없었다. 감염되어도 내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고, 공기가 아닌 성행위가 주 감염경로이고 치료약이 없다는 것이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병은 동성애를 통하여, 혹은 수혈이나 부모의 감염으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공포의 질병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댈러스 바이어 클럽〉은 에이즈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론은 독한 술과 마약, 문란한 성생활과 로데오로 매일 방탕하게 살던 전기기술자이다. 한마디로 ‘텍사스 마초’이며 전형적인 백인 보수주의자이다.
그는 동성애자를 혐오해 왔는데 병원에서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자 “내가 왜 에이즈에 걸려야 하냐?”고 몸부림치며 30일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절망에 빠진다. 우연히 알게 된 정보를 통해 멕시코로 건너가 면역력을 높이는 식품과 약을 건네받고 호전된 그는 미국에서 임상시험으로 치료받았던 AZT(azidothymidine)라는 약을 저주한다.
이 영화의 모델이었던 실존 인물은 실제 미국 식품의약청(FDA)과 제약회사에 맞서 에이즈에 관한 자율처방 권리를 주장했다. FDA 승인을 받지 못한 이 약을 미국으로 밀수입하여 ‘댈러스 바이어 클럽’을 만들어 에이즈 환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국 국세청에 적발되어 곤경에 처한다. 정부에 맞서 환자의 치료 권리를 위해 법정투쟁을 하면서 시한부 인생의 삶에 대해 인식을 바꾼다. ‘살기 위해 시작한 일’에 ‘신념을 갖고 하는 일’로 변화한 것이다.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이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면서 그는 말한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야 해.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결국, 삶이란 에이즈가 아니라도 언젠가 반드시 막을 내리기 마련이니까.”
2011년 말 기준으로 UNAIDS에서 발표된 통계는 전 세계적으로 3천400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1985년 국내에서 첫 환자가 보고된 이후 국립보건원의 통계로 2013년 말 국내 에이즈 바이러스 누적 감염자는 한국 국적자 9천 5백여 명, 외국인이 1천여 명으로 국가 공식 통계가 1만 명이 넘었다.
성별로는 남성이 91.9%, 여성이 8.1%이다. 감염 경로는 성관계, 소독되지 않은 주삿바늘 사용, 수혈, 감염된 산모의 출산과 모유 수유 등이다. 실제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의 80%, 국내인의 99%가 성관계를 통해 감염되기 때문에 성관계 시 콘돔 사용이 필수적으로 권장된다.
일반적으로 신체접촉이나 모기 등 매개 동물에 의한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즉 에이즈 감염은 농축된 정액, 질 분비액, 모유, 혈액이 체내에 들어와야 감염이 된다. 감염인의 땀, 침, 눈물로는 바이러스가 극히 미량이기 때문에 거의 감염되지 않는다.
연세대 감염내과 한상훈 교수는 에이즈의 가장 큰 특징인 ‘무증상의 긴 잠복기’가 문제라 하였다. 수년간 증상이 없다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의해 면역력이 떨어지고 관리를 잘 못하면 면역체계가 손상되어 감염, 암 등으로 사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인 약물 개발로 최근에는 ‘완치’라는 용어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에이즈 치료는 ‘고강도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이라 하여 항에이즈 바이러스 약제를 3종 이상 동시에 투여하는 치료법을 쓰고 있다. 바이러스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나 증식을 억제하고 면역 기능을 유지해 2차 감염을 막아 준다.
한 교수는 ‘한번 치료를 시작한 환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당뇨증, 고혈압처럼 만성 질환 개념으로 치료하면 30년 이상 무리 없이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미국 유명배우 록 허드슨은 1985년 에이즈로 사망하였지만, 농구선수 매직 존슨은 1991년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고도 아직 살아있다.
페니실린의 개발로 인류는 세균을 정복하였고,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하여 결핵균을, B형 간염 백신을 만들어 간염을 퇴치하고 동시에 간암도 예방하였다. 인류의 재앙인 각 장기의 암도 차츰 정복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말레이시아 여객기가 피격되었다. 뜻밖에 세계적인 에이즈 연구자 6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완치를 기대하는 에이즈 환자들에겐 비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세월이 에이즈를 완치시킬 날은 멀지 않았다. 또다시 새로운 불치병의 폭풍이 몰아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