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의 박진배 교수는 조선일보에 〈화장의 역사를 바꾼 두 여인〉이란 제목으로 아래 내용의 글을 게재하였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워 페인트(war paint)〉라는 뮤지컬은 1920년대부터 1960년대를 풍미했던 화장품 산업의 개척자 엘리자베스 아덴(Arden)과 헬레나 루빈스타인(Rubinstein)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 화장품 상표이기도 한 두 이름이 친숙한 이름이라 반가웠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없던 시절, 여성의 미를 타깃으로 사회에 진출하여 벤처 사업가로 등장했다는 것과 화장이란 개념이 희박한 시대에 여성의 외모를 아름답게 치장할 뿐만 아니라 색채에 관한 취향을 일깨워 본인에게 맞는 화장술을 개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못생긴 여자는 없다, 게으른 여자만 있을 뿐이다’라는 슬로건으로 미국인들에게 눈과 입술, 얼굴을 변신시켜 매력을 창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두 여인은 뉴욕 5번가에서 서로 상점을 마주하고 경쟁적으로 화장품 산업을 개척하였다. 얼굴에 분장을 하는 기술개발과 미(美)에 새 의미를 부여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발전시키고, 여성이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워 페인트〉 중에서 아덴은 ‘모든 여성의 얼굴에는 자신의 스토리가 새겨져 있다’고, 루빈스타인은 ‘깨끗하고 완벽한 화장에 진실이 있고 세계가 있다’고 말미를 장식한다.
"인생의 주인인 나를 어떻게 관리하고 내명을 살찌울까 고민...
한국 여의사회 주최 패션쇼에서 짙은 무대 화장과 바람머리, 보랏빛 드레스 차림의
모델 변신은 병원 진찰실을 벗어난 여의사로서의 새로운 경험과 추억의 활력소"
스무 살 시절을 돌아보면, 인생의 주인인 나를 어떻게 철저히 관리하고 내면을 살찌울 것인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50여 년의 세월 동안 거리의 멋쟁이들에 뒤질세라 습관적으로 화장을 했다.
화장하는 시간엔 나만의 즐거움이 있다. 나 자신을 포장하고 변신하였다가 저녁이면 다시 원판의 나로 돌아오는 묘미가 있다. 인간은 자신의 성품과 살면서 겪은 풍파가 조화를 이루어 얼굴의 표정으로 나타난다. 비록 주름이 늘어가더라도 때로는 화장이 그 나이에 맞게, 나름대로 볼품있게 꾸며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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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上) 의사협회 100주년기념 및 한국여자의사회 주최 패션쇼에서 당의를 입고 왕비로 변신한 필자와 무관 옷을 입고 왕으로 변신한 김록권 장군이 함께 걷고 있다. 김록권 장군은 의사출신으로 예비역 중장이다 / (下) 패션쇼에 참가한 여의사들과 함께. 가운데가 필자이고, 2번째 오른쪽은 대비로 변신한 이길여 가천대학교 이사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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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은 B.C. 5천년, 지금으로부터 7천 년 전 이집트의 제1왕조 묘에 서 화장수와 거울이 발견됨으로써 인류의 화장 기원은 이때부터 시작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우리나라 화장의 본격적인 기원은 삼국시대부터다. 삼국 중에서 신라의 화장기술이 잘 알려져 있고 특히 화랑은 아름다운 육체에 아름다운 정신이 깃든다며 여성 못지않은 화장을 했다.
이집트 여성들은 따가운 태양열을 반사하고 독충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고자 눈두덩이에 푸른색을 칠한 것이 눈 화장의 시초이다.
식욕, 성욕, 화장 욕구의 3대 본능을 갖고 있는 인간은 신체의 아름다운 부분을 노출하여 돋보이게 하고 약점이나 추한 부분은 감추려는 속성이 있다. 최초의 화장품은 열매, 식물, 재, 광물을 빻아 곰의 지방과 섞어 사용하였다.
통일 신라 시대의 화장 재료는 천연 식물을 사용하고 백합의 붉은 수술로 색분을 만들고 굴참나무와 너도밤나무의 재를 기름에 개어 눈썹을 그렸다. 이집트 여성들은 따가운 태양열을 반사하고 독충으로부터 채색을 통해 대담하게 꾸미거나 잃어버린 젊음을 되찾고자 화장을 하였으며, 이성이나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자신감을 느끼기 위해 화장한다고 했다.
‘의사협회 100주년기념 및 한국여자의사회 주최 패션쇼’ 무대에서 짙은 무대화장과 바람머리, 보랏빛 드레스를 입고 변신했던 내 사진들과 당의를 입고 등장했던 사진을 보면서 그 순간을 떠올려 본다.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 그 사진이야말로 나의 활력소가 된다.
그때 출연했던 여의사들은 무대에서 모델처럼 걸었고 배우들처럼 표정 연기도 했으며 눈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관객들의 환호와 찬사를 받았다. 어느 후배 여의사의 장례식장에는 환하게 웃으며 걷고 있는 패션모델 같은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놓여있었다. 참으로 마음이 아렸지만, 그 사진이 야말로 후배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으리라.
여성의 얼굴에는 개인의 스토리가 새겨져 있다. 기쁨과 보람과 더불어 수많은 좌절, 번뇌, 슬픔, 고통을 이겨낸 흔적이기도 하다. 갯벌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아낙네의 환한 웃음, 제주도 해녀들의 물질하는 모습, 농촌 밭에서 김장배추 수확하는 할머니의 푸근한 얼굴엔 살아온 이력이 담겨있다.
화장이라는 단어는 가면을 쓴듯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만의 즐거움, 타인에 대한 배려, 예의, 자기보호, 건강미 등 수많은 뜻이 숨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 세상에 못생긴 여자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