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베데르 궁전에서 이 부회장님 나무벌레에 쏘인 지 10여분 후 쓰러짐. 잠시 의식 소실, 구토와 안구충혈, 일어나지 못함. 궁전 응급처치로 회복이 안 되어 구급차 병원이송 대기 중’
박 전 감사님의 다급한 메시지가 왔다.
‘방금 또 다른 구급차와 상위 치료자 도착, 박OO 밀착 동행, 여행사 이 과장, 한국 여자의사회 주 과장 등 일행이 앞서 출발, 예정된 병원에 먼저 가서 계심, 구급차 사이렌 울리며 가고 있음.’
‘병원 주소 알려 주세요.’ 조금 후 윤OO 고문님의 보고 ‘혈압이 60에서 90으로 조금 올라갔어요.’ ‘다른 일행이 뒤쫓아 출발했어요.’ ‘오셔도 환자 볼 수 없습니다. 10시간 정도 병원에 입원해야 합니다. ‘이제 안정 되었습니다.’
긴박했던 상황을 알리는 휴대폰 문자가 요란한 알림소리와 함께 오갔다.
오스트리아, 빈 세계여자의사회에 참석한 선생님들은 잠시 점심시간을 이용해 볼거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감사와 함께 벨베데르 궁전(Schloss Belvedere)을 찾았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색채로 표현된 슈베르트의 음악’이라 불리는 작품세계를 보기 위해서이다.
이 부회장은 수돗물 뿜듯이 토하기 시작하였다
모두 긴장하면서 이 부회장 상태를 지켜 봐
모두 가슴 조이며 이 부회장이 깨어나기만 기다려
작품 속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고 신화적인 표현과 몽환적인 분위기로 관람객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사물을 평면적으로 묘사하면서 독특한 부위에 금박을 붙여 화려하게 장식한 그림은 소장하여 오래도록 감상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키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부인〉 등 많이 알려진 작품들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클림트의 작품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 부회장은 궁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 계단을 오르는 순간 어지럽다고 하더니 곧바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것이다. 마침 그때 동행했던 사람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수돗물 뿜듯이 토하기 시작하였다. 함께 했던 일행은 발 빠르게 움직였고 궁 관리인이 달려와 응급조치를 취하고 계단은 출입을 금지시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게 하였다. 주 과장은 등을 두드려주면서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숙인 채 토하게 하였다.
그러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관리인은 계속 휴지를 가져다주면서 주시하였지만, 눈은 충혈이 되었고 의식은 혼미하여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궁에 들어오기 직전 왕벌 한 마리가 이 부회장을 스치고 날아가자 “이게 뭐야!” 하면서 손사래를 친 후 불과 수분이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윤 고문님이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 주고 항히스타민제를 물 없이 그냥 삼키라고 하였건만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다.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곧바로 구급차가 도착하였다. 그때 혈압이 60/40, 의식이 없고 혈관이 나오지 않았다. 점점 호흡도 힘들어지기 시작하였다. 구급대원이 급히 의사를 호출하였다. 뒤쫓아 온 의사가 처치하면서 응급실로 데려가 바로 입원시켰다.
학회에 참석한 한국 여자의사회원은 저마다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세계 각 나라 회원이 기증한 물건을 자선 시장에 팔아 기금 마련 하느라 애쓰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박물관 하나라도 더 감상하기 위해 뙤약볕에도 빈 거리를 누비고 있었으며 강의하면서 국위 선양을 하고, 회의장을 지키면서 강의를 듣는 등 저마다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고, 모두 긴장하면서 이 부회장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박경아 세계여자의사회 회장은 총회와 폐회식을 준비하는 중책을 맡아 움직일 수가 없어 그저 마음 졸이며 기도했다.
궁금한 나머지 “택시 타고 가보자.”고 제안한 회원도 있었다. 그러나 ‘면회도 할 수 없으니 오지 말라’는 메시지가 왔다. 회원들은 가슴을 조이며 이 부회장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담당의사의 어머니가 한국인인데 아주 친절하고 극진히 돌봐준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곧이어 의식이 돌아왔고 혈압도 정상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치 악당과 싸워 승리한 것처럼 마음이 가뿐하였다. 그 긴박했던 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밤 10시에 퇴원하라는 의사의 지시에도 이 부회장은 오후 6시쯤 퇴원한 것이다. 평소 꾸준히 체력을 관리하여 자신 있다고 하였지만, 의사 특유의 고집과 ‘나는 괜찮아’ 하는 기질을 엿볼 수 있었다. 그토록 긴박했던 순간을 이겨 내고 다시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든 회원이 손뼉을 치며 환호하였다.
사태는 아나필락시스 쇼크(Anacphylactoid shock)가 왕벌 독소에 의해 생긴 것이다.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국소적 반응으로 생기는 알레르기가 심하여 전신성 반응으로 나타나는 쇼크 상태를 말하며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을 응급 처치한 의사의 처방은 스테로이드 1,000mg, 에피네프린, 항히스타민제였다.
이곳 의사는 에피네프린 주사와 함께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약물의 용량보다 10배 양의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하였다고 한다. 혈압이 너무 낮아 에피네프린을 먼저 투여하면서 혈압을 올린 후 전신상태가 호전 되었다고 한다. 당시 얼마나 위급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사회 보장 제도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 이곳 오스트리아 빈에서 발 빠른 처치로 살아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왕벌(Hornet) 다섯 마리가 쏘면 말 한 마리가 사망한다고 하니 왕벌 한 마리의 위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하는 아나필락시스 쇼크는 주로 방사선 촬영 시 사용하는 조형제, 페니실린 등의 항생제와 마취제, 음식물(메밀, 계란, 땅콩, 고등어, 복숭아, 은행 등), 곤충, 특히 왕벌, 꽃가루 등에 의해 발생한다.
영상 검사를 할 때 환자에게 문진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또 벌침 맞고 그 부위에 물집이 생기거나 빨갛게 부어오르는 경우, 벌초하다 벌에 쏘여 발진이 심해 쇼크가 오는 경우, 진달래술 먹고 부정맥이 생겨 응급실을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 증상은 개인마다 다르므로 한마디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각자의 체질에 달린 것이다. 알레르기 반응이 천의 얼굴을 갖고 나타나기 때문에 항상 각자가 자기 체질에 대해 잘 관찰해야 한다.
빈에서 긴박했던 순간을 뒤로하고 회원들의 빡빡한 여정은 계속되었다. 언젠가는 옛 추억의 한 토막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