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 해의 진주
발칸의 하이라이트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불리는 크로아티아 드브로브니크에 입성하였다. 이 지역의 붉은색 지붕은 민간인의 집이니 폭격을 하지 말라는 의미인데 드브로브니크의 상징이 되었다.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필라 게이트는 입구부터 발 디딜 틈이 없는데 ‘인종 전시장’ 같은 풍경이다. 하얀 대리석이 깔린 플라차 거리를 걸으며 이 도시의 역사를 되새겨 본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중세에는 베네치아공화국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만 튀르크, 나폴레옹, 오스트리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침략과 지배가 이어졌다. 곳곳마다 수난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벽에 올라오니 하늘과 바다는 내 것이 되었다. 성벽으로 가는 길은 지난 시절의 애환이 서려 있어서인지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성벽 군데군데 적을 감시하는 사각 구멍은 관광객들이 인증 사진을 찍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일행과 나무다리를 지나니 해맑은 호수가 펼쳐져...
그 속에서 무리 지어 놀고 있는 송사리 떼와 한가히
헤엄치고 있는 오리는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청록색 지평선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드보르니크의 상징인 산위 전망대에 올라오니 넓은 아드리아 해 속에 촘촘히 박힌 붉은 지붕을 배경으로 한 커트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그 풍경이기에 유람선을 타고 아드리아 해 속으로 들어가 성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바다 속에서 솟아오른 듯, 수만 개의 돌조각으로 쌓아 올린 성벽은 마치 신에 의한 조각 같다. 저 멀리 손을 흔들며 누워 있는 누드촌의 사람들, 젊고 싱싱한 남녀가 아니라 아쉽다고 동반자들은 입을 모은다. 순간을 맘껏 즐겨도 여운이 남는 매력의 도시 드보르니크는 고대, 중세, 현대를 아우르는 가장 축복받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아드리아 해는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가 포구 어귀에 자리한 아드리아라는 마을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발칸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에는 전쟁과 폭력에 얼룩진 거칠고 무법적인 나라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레베카 웨스트(1892~1983)는 발칸 여행기 《검은 양과 회색 매》의 서두에 ‘폭력이야말로 발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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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브로브니크 성벽에서 내려다 보이는 올드타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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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6세기 때부터 슬라브인과 터키인의 침입이 시작되면서 파란만장한 역사가 시작된다. 문화와 종교가 다른 민족 간의 갈등은 분쟁을 유발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있었던 순간만큼은 평온한 분위기에 낭만이 흐르는 아름다운 나라였다.
프리모스텐(Primosten)은 그야말로 동화 속의 그림 같은 해변 도시이다. 수평선이 아련히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던 우리는 군데군데 좌판을 펼친 가게들을 지난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하얀 돌 벽을 끼고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다 보면 성 조지 성당이 보인다. 사방을 바다로 병풍을 두른 이 명당자리에는 지역에 공헌을 많이 한 성인들의 묘소가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촘촘히 자리 잡은 장신구 가게에 들렀다. 크로아티아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절친한 친구와 같이 둘러보다 마침내 골라잡은 것은 강낭콩 크기의 푸른 오팔 반지와 목걸이였다. 이 보석은 방향에 따라 수십 가지 코발트색 빛이 감돈다.
친구는 새빨간 산호 반지와 나와 같은 오팔 반지를 골랐다. 난 모르겠는데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한다며 보석 값을 몽땅 지불하였다. 기대치 못한 선물에 감사했다. 어수룩한 크로아티아 시골 어촌 마을의 때 묻지 않은 가게 아저씨는 네 개의 보석을 건넨다. 요즘도 착용하는데 무어라표현할 수 없는 친구의 깊은 정이 느껴진다.
자연이 선물한 크로아티아의 가장 큰 축복은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이어지는 전쟁으로 척박한 땅덩어리로만 생각했던 이곳에 예상하지 못했던 자연의 보석이 숨어있었다. 줄지어 가는 일행과 함께 나무다리를 지나니 해맑은 호수가 펼쳐진다. 그 속에서 무리 지어 놀고 있는 송사리 떼와 한가히 헤엄치고 있는 오리는 한 폭의 동양화 같다. 개울 물소리에 발걸음마저 리듬을 탄다.
90여 개의 폭포 중 가장 웅장하고 장엄한 폭포를 만났다. 폭포소리가 너무나 세차게 울려 퍼져 옆 사람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거대한 폭포 앞의 우뚝 솟은 바위에서 손을 흔들며 자세를 취해 본다. 웅장한 폭포는 가장 멋진 배경이 되어 수많은 관광객을 모델로 만들고 있었다.
흙내음 나는 오솔길을 걷다 보니 물그림자를 만들며 잠겨있는 갈대는 또 다른 자연의 하모니이다. 수많은 계단식의 자그마한 폭포가 쏟아내는 물줄기는 방울방울 거품을 만들고 금세 사라진다. 오솔길을 따라 숲속으로 들어갈수록 청명한 물속은 점점 오묘한 빛깔로 변한다. 짙푸르다 못해 청록색이 되고 연한 연두색에서 보라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빛깔의 정체는 플리트비체 일대의 지질의 특징이다. 카르스트 지형의 석회분이 침전되어 단단히 석회화 되고 그 퇴적물은 댐 역할을 하여 여러 개의 호수가 만들어진다. 호수는 물속의 미네랄과 유기물량의 증감에 따라 녹색, 옥색, 청록색, 회색의 빛으로 나타난다. 이 속에서 놀고 있는 송어 무리와 청둥오리는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과 물 향기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순간 일만 보를 걸은 터라 그런지 갈증과 함께 허기가 밀려온다. 바삭하게 튀긴 송어요리는 레몬즙과 함께 떠먹되 절대로 뒤집어 먹지 말아야 한단다. 포크로 살살 걷어 올린 송어의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일행은 자그레브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꿀맛 같은 단잠으로 피로를 푼다. 여정의 막바지에 접어드니 그토록 청명하던 지중해에 주르륵주르륵 쉬지 않고 비가 내린다. 자그레브 구 시가지를 거쳐 신시가지에 들러 우리는 빗속을 거닐다 몸과 마음이 싸늘해져 카페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몸과 마음을 녹였다. 그러고는 여행을 되짚었다.
이번 여행은 발칸의 역사를 이해하고 자연의 신비를 체험한 값진 여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