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아 해의 슬픔과 축복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발칸반도의 경이로운 풍광과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이 지역은 신비로운 매력을 가진 곳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 땅에 왜 ‘유럽의 화약고’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분열된 이유는 뭘까? ‘아드리아 해의 보석’이라 불리는 축복받은 이 지역에 비운의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지도를 펴고 발칸반도에 소속된 9개국을 찾아보았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이다. 이 중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를 제외한 나머지를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라 부른다. 발칸은 반도의 북동부에 있는 산맥 이름이다. 발칸의 중심은 옛 유고슬라비아(Yugoslavia)연방인데 이 말은 현지어 ‘Yugo’와 슬라브 민족의 나라 ‘Slavic’란 말을 합한 것이다.
1943년에 나치 치하 소련의 지원 아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된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이 탄생했다.
아픔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잠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슬로베니아의 아침은 인상 깊었다.
1943년 유고슬라비아를 이끌던 강한 리더십을 가진 티토는 이 지역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을 ‘민족의 화합’이라는 슬로건으로 통치하였다. 연방의 최대 주주는 세르비아 민족인데 티토는 세르비아인에게 다른 민족을 향한 관용과 양보를 주장하고 설득하면서 연방을 이끄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후임자인 밀로셰비치는 편협하고 잔인한 지도자로 ‘위대한 세르비아’만을 주장하고 다른 민족을 배려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인간 청소를 한다며 타 민족을 무차별 학살하여 ‘발칸의 도살자’로 불렸다.
결국, 그는 2006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1991년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가 유고 연방에서 독립하고 그 후 마케도니아도 독립을 선언하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또 독립을 선언하자 화가 난 세르비아는 보스니아 수도인 사라예보를 폭격하였다.
보스니아에 사는 세르비아계도 민병대를 조직해 1만여 명의 보스니아계의 이슬람 교인을 살해하였다. 이 사건은 3년 6개월간 지속되어 ‘보스니아 내전’으로 명명되고 있다. 유혈 분쟁이 계속되면서 이 지역은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게 되었다.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인 이 지역은 갈등과 분쟁이 현재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아픔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잠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슬로베니아의 아침은 인상 깊었다. 저 멀리 율리안 알프스의 만년설을 배경으로 숨을 멈춘 듯 평온한 블레드 호수는 아름다웠다. 유유히 노를 젓는 3대째 뱃사공을 한다는 사람과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호수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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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레드 호수 [출처 ; raintree의 산행,여행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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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100개나 되며 신랑이 신부를 안고 이 계단을 올라가야 잘 산다는 전설에 무거운 신부는 신랑이 끌고서라도 올라간다고 한다. 호수 오른쪽 절벽 위에 고즈넉이 앉아있는 블레드 성은 동화 속에서 볼 법하다. 성곽에 들어서자 고성의 운치와 역사의 고뇌가 곳곳에 간직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돌산 지하에는 수백만 년 동안 거대한 강물이 스며들어 장관이 펼쳐지고 있었다. 포스토이나 동굴의 도시이다. 인간의 힘이 닿지 않고, 건축설계도 없이 암흑 속에서 한 방울씩 떨어진 석회석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 놓을 줄이야.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 동안 굴속을 달리다 보면 천정에 머리를 부딪칠 것 같아 절로 비명이 터진다. 천정에서 내려오는 각양각색의 샹들리에, 땅에서 솟아오른 석탑이 자연의 신비를 절감하게 한다. 2km를 달리고 동굴 속 중간 역에서 내려 1km의 등반이 시작된다. 계곡을 지나면 절벽이 보이고 다리를 건너자 광장이 펼쳐지는가 하면 1만여 명을 수용하는 콘서트홀도 자리하고 있다.
찬찬히 사방을 둘러보면 어두운 굴속은 마치 오색찬란함 가득한 황홀한 미술관이다. 10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는데, 특이한 것은 이 동굴 속에서만 산다는 도롱뇽(올름)이다. 생긴 모양은 도마뱀 같고 깜깜한 동굴에서 살다 보니 눈은 퇴화되었다. 피부로 명암을 느끼고 햇볕을 보지 못해서인지 백색이다. 마지막 2km를 달리기 위한 기차역에 올름은 이 동굴의 마스코트가 되어 큰 사각 어항에서 독특한 외모를 선보이고 있다.
햇볕을 온몸으로 받고 오묘한 파도의 리듬을 즐기면서 자다르 해변을 걸었다. 크로아티아는 흐르바츠카라고도 하며 HRV로 표기한다. 햇빛의 파편이 부서지는 해안가 관람석에 앉았다. ‘파이프 바다 오르간’을 심은 이곳은 36개의 파이프가 파도의 세기에 따라 연주를 한다. 넘실거리고 철썩거리며 아스라이 들려오는 파도는 수만 가지 소리를 만들어낸다.
스프리트에 도착하니 디오클레시안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대문자로 ‘SPLIT’이라고 세워 놓은 큰 간판이 인상적이다. 디오 클레티아누스 왕궁은 로마 후기 건축양식으로 모질고 긴 역사 속의 전쟁과 풍파를 겪고도 온전하게 버티고 있다. 미로 같은 성의 중간 공간에서 남성 보컬합창단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선율은 지친 우리에게 신선한 휴식을 선사하였다.
보스니아 모스타르로 이동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계(이슬람교), 세르비아계(세르비아 정교), 크로아티아계(가톨릭)의 복잡한 민족 구성과 종교 갈등으로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장시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작은 도시 모스타르에 도착했다. 평온해 보이는 거리를 지나노라면 폭격을 맞아 만신창이가 된 건물도 보게 된다. 이 도시의 상징인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다리는 16세기 오스만 튀르크 시절 건설되었다. 보스니아 내전 중 크로아티아 방위 평의회 부대의 포격을 받아 파괴되었으나 유네스코의 지원을 받아 다시 복구되었다.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아군 사이였는데 크로아티아가 포격하였으니 그들의 민족, 종교, 문화의 갈등과 충돌의 방향은 예측하기 힘들다. 지금은 민족 간 화해의 징표인 ‘평화의 다리’로 불리며 화합하여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로 가는 미로 같이 좁은 골목 바닥은 조약돌로 장식되어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선물 가게들은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다리 위에서 네레트바 강 속으로 다이빙을 하는 청년들에게 관광객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지만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몸을 던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