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Aloha)
하루만이라도 진료실을 닫고 나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한 해방감을 맛보는데 하와이 유람선 여행을 무려 10일 간 한다니 얼마나 가슴이 설렜는지 모른다. 남편의 대학 졸업 35주년 동기회 행사에 배우자 자격으로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친구들은 유람선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부러워하면서 춤을 배우라, 화려한 드레스를 준비하라고 야단이었다. 의협 100주년 기념행사패션쇼에 입고 등장했던 드레스 한 벌을 가져갔다.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관광을 하고 알로하 타워 선착장으로 이동하였다. 2,000명이나 탑승한다는 거대한 배 ‘프라이드 오브 알로하(Pride of Aloha)’라는 바다 위의 특급호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타려는 순간, 카메라맨은 입구에서 사진기를 들이대며 멋진 자세를 취해 보라고 한다.
미지의 세계로 가는 듯 흥분되었다. 오하우 섬을 제외한 나머지 섬을 향해 저음의 고동 소리를 일으키며 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새 수많은 여행객의 꿈을 안고 거친 물살을 가르며 항해하고 아침이면 섬에 도착하여 관광이 시작된다.
밤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배는 계속 나아가고
아침이면 또 다른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도착한 섬은 태초의 밀림지대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카와이 섬, 영화에서나 봄 직한 큰 나무줄기가 여기저기 널려 있고 금방 타잔이 줄을 타고 괴성을 지르며 휙 내려올 것만 같은 풍경이다. 페론 그롯이라고 하는 고사리 동굴을 찾아가기 위해 하와이 특유의 나무로 된 나룻배를 타고 강 주위에 빼곡히 우거진 숲과 나무들의 물그림자를 헤치며 와일루아 강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태초부터 그대로 번식하여 아무도 따지 않은 소나무 기둥만큼이나 굵어진 고사리 줄기를 볼 땐 놀라울 뿐이다. 고사리와 이끼 낀 바위로 장식된 동굴 속에서 폴리니시안 원주민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아무나 올 수 없는 이곳이 성스러워야 할 의식의 장소로 사용된다니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돌아올 때는 원주민 여성들이 하늘거리는 몸짓, 손짓으로 민속춤을 추었는데 의미는 몰라도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짧은 하루를 태초의 길고 긴 시간을 간직한 카와이 섬의 밀림에서 보냈다.
미국 친구들에게 맛보게 하려고 한국에서 갖고 온 오징어구이, 김, 소주 팩, 양주 등을 돌리며 버스 안은 잔치 분위기가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학교 다닐 때 쌍권총(유급, F 학점 2개)을 면하려고 발버둥 치고, 학교 뒷산에 올라가 심각한 인생철학을 논하던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을 상기하면서 술잔은 멈추지 않고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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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이드 오브 알로하(Pride of Aloha)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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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가 승선 전에는 철저한 가방 검사가 있었다. 남은 소주 팩과 양주를 보여 주는 순간, 모두 압수당하고 말았다. 흥에 취해 기꺼이 “그래, 너희들 먹어라” 하고 주었더니 “땡큐!”를 연발한다.
하와이 섬, 혹은 가장 큰 섬이라고 하여 빅 아일랜드라고 하는 섬, 가장 늦게 생성된 섬이며 휴화산과 활화산이 동시에 존재하여 아직도 용암을 분출해 내는 불안한 섬이다. ‘Volcano National Park(국립 화산공원)’는 장관이었다. 달나라에 온 것 같이 거대한 분화구가 눈앞 시야를 뒤덮고 유황 냄새를 풍기는 뜨끈뜨끈한 돌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그 사이로 뽀얀 연기가 화롯불에 불을 지핀 듯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우리는 진귀한 풍경을 놓칠세라 여기저기서 자세를 취하기 바빴다. 또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반짝반짝한 까만 용암들은 마치 옛날 무쇠 솥뚜껑이나 거북이 등껍질 같기도 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파란 하늘과 온통 까만 돌덩이로 가득해 우주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그 사이로 오히야 나무가 굳세게 생존하는 것을 보며 생명력의 위대함을 실감한다. 화산 박물관 입구에 눈을 부릅뜨고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는 펠레 여신상은 이 화산의 주인인 듯 박물관을 지키고 있으며 펠레여신은 눈에서 불을 한번 뿜으면 화산이 터지고, 자기가 선택한 남자는 잡아간다고 하는 전설을 듣더니 부인들은 남편을 뺏길까 조심하는 듯하다.
11층 갑판은 저녁 식사 후 만남의 장소이다. 저녁 만찬 때는 부인들이 예쁜 정장차림으로 이탈리아 식당, 프랑스 식당, 아시아 식당을 돌며 식사를 하면서 유람선 여행의 진가를 맛보았다.
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각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 단체로 폴리니션 발리 춤을 추는데 미국에서 오신 선생님이 머리, 양팔, 목에 갖가지 꽃으로 치장하고 돌아가지 않는 엉덩이와 어깨, 허리를 우스꽝스럽게 흔들면서 춤을 추어 배꼽 잡고 웃었지만 제법 볼만했다. 밤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배는 계속 나아가고 아침이면 또 다른 새로운 세계에 도착했다.
마지막 섬이 마우이 섬, 비교적 활기차고 리조트다운 인상을 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와일리야 골프클럽, 우리나라 최경주 선수가 출전하여 챔피언이 된 바로 그 골프장이다. 시선이 닿는 곳은 수평선이며 끝없이 펼쳐지는 에메랄드 빛깔은 눈을 시리게 한다. 축축 늘어진 야자수가 하늘거리고, 멀리 바다 끝이 보이는 언덕에서 마음 같아선 바다 속으로 공을 날려보고 싶다.
한 홀, 한 홀 만날 때면 새로운 바다 풍광이 나타난다. 출렁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예술적으로 설계된 코스에서 싱그러운 바닷바람과 함께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장면이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보이는 이곳에 나지막하게 줄지어 있는 콘도미니엄의 숙박시설도 평온해 보이고 언젠가 꼭 다시 방문하리라 생각해 보았다.
등이 약간 굽은 사람의 형상을 한 이 섬은 해변을 따라 계속 달려도 보이는 곳은 태양과 함께하는 여행객들과 모래사장, 고래는 이따금 하늘 높이 춤추고, 사람들은 인어가 되어 수영을 즐기고, 바다낚시, 수상스키로 이글거리는 태양 속에서 한나절을 불태우고 있다. 텐트 속에는 오수를 맛보는 관광객들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진정 천국 같은 휴양지이다. 할레야 칼라 국립공원은 그랜드 캐니언 같이 내려다볼 수 있는 한없이 넓은 태초의 땅이 터져버린 분화구가 있는 곳이다. 이러한 자갈밭 사이에 도저히 아무도 살 수 없다고 생각되는데 은 색깔의 칼과 같은 은검초가 살고 네네구즈라는 새가 산다고 한다. 생명을 굳세게 지켜나가는 것에 대한 의지에 저절로 터지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휴식도 투자다’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 이번 여행은 하와이 태초의 짙은 향기와 자연을 속살까지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또한 동기간의 끈끈하고 깊은 우정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한 배를 타고가는 영원한 길동무라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