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혼자 눈물을 흘린다. 나라의 지도자는 국민을 위해, 회사의 지도자는 직원을 위해, 학교의 지도자는 학생을 위해, 집안의 어른은 자녀들을 위해, 저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있다.
리더는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에너지를 결집하고 분출시켜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군인은 승리, 종교인은 포교, 기업은 성장, 국가 지도자는 번영이라는 목적을 향해 리더십을 발휘한다. 리더십은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에 단련되어 실전에서 빛이 나고 결과로 평가받는다.
이대의대 15대 동창회 회장의 자리를 맡으며 스스로 돌이켜 본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학교와 동창회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이다. 이 둘 사이는 언제부터인가 불편한 사이가 되었다.
동창회란 학교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내 생각은 확고하여 학교를 위해 헌신하자고 마음먹었다. 때마침 이대의대 창립 60주년 행사를 앞두고 있었다. 나는 그 행사에 이대 교수님 20여 명을 초청하였고 학교 발전 기금 2,000만원을 기부하였다. 윤견일 의료원장님과 한운섭 학장님 그 외의 많은 교수님과 역대 동창회장님들이 한마음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응어리가 있다면 누군가는 풀어야 한다.
여자의사회장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로 가시밭길
의견이 달라도 껴안고 환하게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다짐 덕분에 마음의 상처 아물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분을 맞아
학교와의 관계는 60주년 행사 이후 완전히 복원되었다. 이후 16대 우경숙 회장을 비롯하여 김태임, 배순희, 윤석완, 오혜숙 회장, 21대 이남희 현 회장에 이르기까지 학교와 동창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김태임 회장은 100분의 1 나눔 장학금 모금을 시작하여 학생들에게 최대 규모의 혜택을 주고 있다. 오혜숙 회장은 서울 이대병원 건축기금 마련에 10억의 후원금을 쾌척하였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동창회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견고히 심어주며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목동을 넘어 마곡을 향해 힘차게 질주하고 있는 이화의료원에 일이 터졌다. 이화의료원 미숙아 사망 사건이다.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다. 아끼던 후배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그 소식이 연일 TV화면을 장식한다.
마음이 아프다 못해 찢어지는 것 같다. 각계 인맥을 동원하여 도와 달라고 호소하고 애원해 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탁상행정의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의협회장과 소아청소년과 회장은 시위를 넘어 소송도 불사하며 투쟁하고 있다. 모순된 의료제도를 바로 잡겠다는 지도자의 진정한 의지와 깊은 동료애의 발로(發露)이다. 불구속으로 풀려났지만 그들의 가슴에 박힌 대못은 누가 뽑아 줄 것인가?
긴박한 상황 속에서 한계를 느끼며 기도와 눈물로 호소하고 있었을 뿐이던 나 자신의 무력함을 자책해 본다. 이화의 식구들은 저마다 최선을 다해 모금 활동을 하고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의료계의 관심과 격려는 물론이고 사방에서 전송되는 메시지는 이화 구출을 위한 SOS 같았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떠올려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한국 여자의사회 27대 회장을 맡은 나는 참된 지도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인정해 주는 원로 선배님의 지속적인 격려와 지지 속에서도 잠시 혼란스러운 시간이 있었다.
여자의사회장을 추천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참으로 힘든 가시밭길이었다. 그러나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마음속 눈물을 삼킨 채 절실히 배우고 깨달은 것이 있다. 나와 의견이 달라도 이를 껴안고 환하게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 이런 다짐 덕분에 마음의 상처는 아물고 열린 마음으로 모든 분을 맞이하고 있다.
역대 여자의사회 회장님들의 업적은 감히 한마디로 평가할 수 없다. ‘참된 의사로서’, ‘현명한 여성으로서’, ‘건강사회의 지도자’로서 한국여자의사회의 미션은 그 목표가 뚜렷하다. 지금까지 그 임무를 수행하신 역대 회장님들은 한마디로 대단하시다고 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또 다시 한국여자의사회 창립 60주년 행사는 나를 바쁘게 만들었다. 불과 2년의 임기 동안 할 일이 너무 많아 가슴이 벅차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세상을 떠나시는 원로 선배님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그분들의 흔적은 점점 사라져 가는데 그 업적은 자손들이 일일이 챙기지 못한다. 60주년의 주요 행사로 한국여자의사회의 역사를 담는 타임캡슐을 만드는 것이다. 그 속에 한국여자의사회의 역사를 넣어 보관하는 것이야말로
여자의사회가 할 일이다. 그날의 행사는 참으로 의미 있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먼 훗날 후배들은 여자의사회의 역사를 곱씹을 것이다.
60주년 행사 제2탄은 외국인 근로자와 다문화가정, 해외이주민을 위한 의료봉사 건이다. 단순한 의료봉사 차원을 넘어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그들을 위한 축제였다. 우리 여자의사회의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었으며 분야별로 진료와 검사, 물리치료, 영양수액 투여, 치과 진료, 혈액 검사, 산부인과 암 검진, 초음파 및 엑스레이 검사 등 종합병원 수준의 진료를 하였다. 미용과 따뜻한 점심을 대접하며 한국의 정서를 보여줄 수도 있었다.
이 또한 60주년이라는 기념행사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행사를 치를 때마다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 태어난다.
매월 열리는 학술 월례회는 학구적인 내용으로 회원들이 무언가 얻어가야 한다. 의료계가 아닌 전문직 여성 단체들과 협업해야 한다. 여자의사회는 어머니 같은 인자함과 여성 지도자의 카리스마로 또 여의사로서 따뜻하게 정을 주는 봉사활동 등 많은 일을 한다.
2013년에 세계여자의사회 학술대회가 이화여자대학교 캠퍼스에서 열렸다. 세계에서 유일한 여자의과대학이 있는 이화 캠퍼스에서의 잔치는 세계여자의사들에게 환호를 받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행사에 대한 찬사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여자의사회는 어느 단체보다 정통성과 역사가 있고 질서가 잘 정립된 단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여자의사회원은 점점 늘고 있으며 그만큼 우리의 역할은 많아지고 있다. 미래의 후배를 위해, 한국 의료의 발전을 위해, 현재의 한국여자의사회는 더욱 열심히 뛰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