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행
- 김화숙(20회) 선생님과의 만남 -
인터뷰 – 2016년 이화여자대학 의과대학 회보
10월의 끝자락에 접어들면서 약간은 쌀쌀해진 가을날 저녁, 덕수궁 옆 달개비에서 김화숙 선생님과의 아름다운 동행 만남 시간을 가졌다. 선생님 제안으로 얼마 전 서거하신 권분이 회장님 영전에 올리는 묵념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김화숙 선생님은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박사학위를 받으셨으며 국립의료원에서 14년간 근무하셨다. 혈액종양내과를 전공하셨다. 서초구여자의사회장, 대한의사협회부회장, 15대 이화의대 동창회장과 27대 한국 여자의사회 회장을 역임하셨다. 1985년에 서초구에서 김화내과를 개원하여 현재까지도 왕성한 진료를 하고 계신다. 선생님의 화사한 미소와 이화의대 창립 70주년 기념 동창의 밤에서 전 동창회원의 이름으로 전달한 기념 브로치가 썩 잘 어울렸다.
“선생님은 대구에서 태어나셨나요? 가족과 어린 시절이 궁금합니다.”
약목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 큰아버지 세분도 의사셨고, 아버지는 제가 세살 때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와 언니, 오빠, 저 삼 남매입니다. 한학자이신 외할아버지로부터 서예, 수묵화를 배우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 송 범 선생지도로 발레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4명의 자녀와 함께 손주들은 8명이나 됩니다.
쌍둥이 아들 두 살 때 덴마크와 독일로 1년간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시부모님이 4명의 손주를 키워주셔서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두 며느리 역시 내과 의사라 소통하고 서로 이해하는 면이 많아 좋습니다. 큰 쌍둥이 며느리가 저의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고 있지요. 제가 대외적인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벌써 70이 넘었네요. 하하
“선생님이 의사가 된 계기, 혈액 종양학을 선택한 계기는, 개원을 하게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큰댁 올케가 의사였는데, 큰댁 병원에서 가운 입고 진료하면 여의사,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서 요리하면 완벽한 주부였어요. 그 당시 나는 멋진 여의사라 생각하면서 의사의 꿈을 키우게 됐습니다. 국립의료원에서 전공의 과정 5년을 보내며 현미경 보는 것이 참 좋았어요. 자연스레 혈액종양내과 staff로 9년간 일했어요. Hairy cell leukemia를 우리나라 최초로 보고했고, Mixed connective tissue disease 역시 처음 학회에 보고했습니다.
오빠는 서울치대 학장으로 재임 시 59세 젊은 나이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저에게는 아버지 같은 오빠이기에 온 집안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제가 개원을 한 동기는 오빠의 조언입니다. 한 사람은 교직에 한 사람은 개원하는 게 좋겠다고 권하셨습니다. 아이 넷을 키우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화를 선택하게 되신 건가요?”
중학교 3학년 재학 시 학원사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고1부터 대학까지 등록금을 지원한다는 장학생모집신문 공고를 보고 응시하였습니다. 우선 전국적으로 교장추천을 받아 72명을 선발하는 1차 서류심사에 합격하였습니다. 다시 서울로 상경하여 치른 필기시험으로 20명이 합격하였어요. 그때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학원 장학금을 받으려면 그해에 대학 시험에 합격해야 하니 이화의대로 안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학원밀알장학재단’으로 명칭을 바꾸어 설립자이신 김익달 선생의 장학 정신을 계승하고 있으며 배출된 장학생들이 무려 852명이나 됩니다.
밀알 정신은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많은 밀알이 되어 이사회를 밝게 할 수 있다는 고 김익달 선사님의 철학입니다. 나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사회에 갚으라고 하셨지요. 지금은 사회인이 된 장학생이 장학금을 쾌척하여 후학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저도 그 대열에 끼어 동참하고 있답니다. 현재 많은 인재가 정치계, 법조계, 의료계,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올해 8월 <김익달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하였습니다.
저 자신이 그토록 이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채플 시간의 교목님 설교, 아름다운 캠퍼스, 여성들만이 곱게 간직할 수 있는 이화특유의 품격을 지니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인격수양이 되어 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아름다운 학교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3년 세계여자 의사 학술대회가 우리 이화 캠퍼스에서 열린 후 지난 8월 빈에서 개최된 세계 여자의사회에 참석했을 때 많은 세계여자의사들이 이화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 시간 관리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전공의 시절, 내과 의국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영어회화를 시작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Staff이 된 후도 지속하였고, 세월이 지나고 보니 국제 학회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초가 된 것 같습니다. 글 쓰는 모임을 만들어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다 보니 글을 쓰게 되었어요.
저는 화장하고 옷매무시 단정하게 하는 것이 환자에 대한 예의이고 자신의 젊음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들도 기분 좋게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깔끔, 단정, 그게 제 소신입니다.
“건강유지는 어떻게 하시나요?”
가능한 하루 30분 이상은 걸으려고 노력 합니다. 무릎이 손상되어 관절경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무릎이 좋지 않아 ‘물속에서 걷는 것이 좋다’고 추천해 주어 시작했답니다. 나이 관계인지 체중이 늘고 운동시간은 할애가 안 되어 고심한 결과,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훌라후프이더라고요. 30분에 128Cal 소모된다고 하네요. 저는 아침에 10~15분 돌리고 출근하면 몸이 훨씬 가벼워지는 기분입니다.
“바깥 어르신은 어디서 만나셨나요?”
KMSC에서 만났어요. 서울에 있는 5개 의대가 클럽 활동을 했어요. 몇 명이 모여 국가고시 공부를 함께 하면서 내과 분야에 대한 요약을 해서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친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미국 가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 나도 미국 간다고 했다가 남편이 무척 화를 낸 기억도 나네요.
잠시 서먹한 시간도 있었지만, 결국, 오빠가 세브란스에서 전공의로 일하고 있는 남편을 만났습니다. 한마디로 결혼의 허락과 함께 미국행을 포기하였지요. 결국, 전공의 2년 차 때 결혼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심장내과 교수로 정년퇴임 후 지금은 강남 차병원과 차움 검진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동창회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동창회장할 때 그동안 학교와의 유대관계가 좋지 않았어요. 동창회는 학교를 위해서 존재해야 하고, 학교는 동창을 위해 모든 편의를 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이화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내 판단을 믿고 노력한 결과 해결이 되어 현재는 동창회가 열심히 학교를 위해 도와주면서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동창회장 재임 시 동대문 병원이 공원으로 변한다고 했어요. 그 당시 병원장님, 학장님과의 회동이 있었을 때, 이대 동대문 병원의 흔적이 없어질까 봐 옛 자리라는 표시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간청을 드렸습니다. 그 후 저는 확인도 안 한채 세월이 흘렀는데 얼마 전, 제 동기가 동대문병원이 없어졌다며 사진을 스마트폰에 올렸어요. 궁금하여 정성애 교수께 문의했더니 동대문 병원 터가 동대문성곽공원이 되었으며 동판에 사진과 함께 글이 새겨진 내용을 보내 왔어요. 참으로 의미 있는 사진과 글이었습니다.
우리 동창회의 모금은 현재 130억 이상이 됩니다. 특히 오혜숙 회장이 10억을 쾌척하여 더욱 빛이 납니다. 날로 발전하는 이화의대 동창회는 가슴이 찡할 정도로 잘하고 있지요. 대외적으로 더욱더 단합된 모습을 보이며 몇 배 노력하여 더 강한 동창회로 나가야 합니다.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지나온 세월이 후회 없도록 살기 바랍니다. 항상 틈을 내어 취미생활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쁜 일이 생기면 빨리 잊으시고 좋은 것만 기억하세요. 후배들은 재능이 뛰어난 분들이 많아 이화의 장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TRUST 동창회 집행부를 보니 점점 노하우가 생겨서 전문가적인 기질들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올해 송년회가 기대됩니다.
집행부 이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동창회를 더욱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습니다. 동창회장 재임 시, 의과 대학 건물로 교수실을 이전하면서 동창회 사무실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여 지금의 동창회 사무실 두 칸을 배정받은 것이 행운이었어요. 또한, 60주년 행사하고 남은 비용으로 동창회사무실의 인테리어와 사무용품, 소파, 컴퓨터 등 시설에 투자하여 번듯한 동창회 사무실로 탈바꿈한 것이 지금도 마음에 큰 뿌듯함을 느낍니다. (선생님은 사회공헌협의회에서 10년 간 헌신하신 공로로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하셨다.)
“아름다운 가을날 선생님 모시고 말씀을 들어보니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학문적으로 모든 면에서 우리의 귀감이 되시는 분으로 그동안 열심히 살아오신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동창회를 더욱 사랑해주시고 도와주세요.” 라고 하는 오혜숙 회장님의 인사에 김화숙 선생님은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화답하면서 2시간의 인터뷰를 마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