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시절, 수술 방에서 보조 의사로 수술을 하는데 키가 작은 나는 수술 침대가 너무 높아 발판을 놓아야 했다. 수술이 끝날 무렵, 선배 외과 선생님이 말했다.
“김 선생은 다 좋은데 한 가지 단점을 찾았어. 말해도 될까?”
나는 긴장한 나머지 작은 목소리로 “고칠 것 있으면 고칠게요. 말씀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키가 작아서 말야.” 하고 놀리셨다.
사실 내 고민은 언제나 작은 키였다. “키 크는 주사가 있다는데….” 하고 진료실로 문의가 쇄도한다.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퍼져있는 성장 호르몬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외모지상주의로 가고 있는 요즘, 자녀들의 키에 대해 엄마들은 관심이 많다. 나도 손주들을 보면서 예상키가 얼마나 될까, 은근히 계산해 보곤 한다.
성장 호르몬은 대뇌 밑에 위치한 콩알만 한 크기의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체내에서 뼈, 연골 등의 성장과 단백질을 합성하며 지방분해를 한다. 성장기에 뼈의 길이와 근육의 증가 등 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에 성장에 중요한 호르몬이다.
자녀의 키가 자라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나는 잠만 잘 자도 키 큰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성장기에
잠 안 오는 약을 먹고 밤샘 공부로 씨름하지는 않았을 것...
성장 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시간은 오후 10시~오전 2시 경이다. 이 호르몬은 55세까지 우리 몸에서 생성되는데 운동, 영양, 스트레스, 수면 등의 환경적인 조건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20대까지는 왕성하게 분비되지만, 점점 감소하여 60대가 되면 20대의 절반 수준까지 저하된다.
아이들에게만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던 성장 호르몬은 성인에게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녀의 키가 자라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성장은 유전적인 인자가 일차적이지만, 추가 성장은 환경적인 인자에 의해 결정된다. ‘가족성저신장’이란 부모 중 한 명, 혹은 양쪽이 키가 작은 경우이다. 유전의 영향을 크게 받아 또래보다 항상 적게 자라며 사춘기에 급성장을 해도 성장 격차가 지속되다가 성장기가 끝나는 경우이다.
체질성 성장지연이란 체질적으로 성장이 늦게 나타나는 경우로 골 나이에 비해 2년 정도 지연되며 사춘기도 여자나 남자 모두 2~4년 정도 늦게 시작된다. 현재 키는 작지만, 성장이 늦게까지 지속하여 성인이 되었을 때는 정상 범위에 도달하는 경우이다.
성장 호르몬 주사를 7세 때부터 2년간 주사하고, 24세가 된 여성 환자가 진료실을 찾아 왔다. 이 환자는 성장 호르몬의 투여로 근육이 너무 발달하여 허벅지와 팔이 평균보다 매우 두꺼웠다. 그러나 그녀의 키는 어머니의 작은 키와 비교해 거의 같았다.
이 환자처럼 저 신장의 치료는 먼저 생활 습관과 행동을 교정해야 한다. 운동은 성장판을 자극하여 성장 호르몬을 분비하며 잠을 충분히 자면 스트레스가 감소하기 때문에 성장에 도움을 준다. 오후 10시 이전 취침하여 8시간 이상 푹 자야 한다.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성장 호르몬 투여를 권한다.
성장 호르몬은 나이, 몸무게에 따라 용량이 정해지며 매일 집에서 직접 주사할 수 있다. 주삿바늘이 보이지 않고 투약 용량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어린이도 쉽게 투여할 수 있다. 성장판이 닫히기 전, 즉 사춘기 이전까지 치료해야 효과가 있다. 그러나 성장 호르몬의 효과는 개인마다 다르며 최소 2~4년간 꾸준히 받으면 5~6cm는 기대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확실한 보장도 없이 년 1,000만원의 비용과 2~4년 장기 투여해야 하는 조건을 따진다면 무리가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0세가 지난 여배우들도 탱탱한 피부와 몸매로 등장한다. 미국 언론들은 이들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성장 호르몬에 있다고 보도하였다. 성인에게 성장 호르몬은 이제 ‘노화방지 호르몬’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간은 불로장생을 원한다. 이 호르몬이야말로 인간이 원하는 노화방지에 근접한 약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장호르몬이 단백질 합성과 체지방 분해를 하므로 성인에서는 노화 방지 효과에 도움을 준다. 나이가 들면 단백질 합성이 감소하여 근육의 양과 강도가 줄고 뼈가 약해진다. 지방 분해의 감소로 복부비만, 혈관의 동맥경화와 심혈관계통의 질환도 온다. 피곤함, 무력증, 우울증, 집중력 저하, 자신감 결여, 불면증 등이 발생하여 삶의 질이 떨어진다.
실제 성인용 성장 호르몬은 저용량으로 안전하게 개발되어 있지만, 고비용과 저녁 시간에 본인이 직접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식약청의 임상 시험을 거쳐 국내에서 개발된 성인용 성장 호르몬이 현재 쓰이고 있다. 그러나 암을 진단받았거나 치료 중인 환자, 고혈압, 당뇨병 환자, 망막에 염증이 있는 환자는 금기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성장 호르몬을 알지도 못하고, 주사도 물론 없었다. 잠만 잘 자도 키 큰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성장기에 잠 안 오는 약을 사 먹고 밤샘 공부로 씨름하지는 않았을 텐데…. 후회한들 무엇하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