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딸 서양화를 하다 (35회)
  제6장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재직시절2

첫 딸 서양화를 하다

첫 딸인 선호가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합격이 되었다. 

서울의 창덕여자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수학과 과학 과목 등의 성적이 우수한 편이므로 일반대학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지 않겠느냐고 권해왔으나 3학년 8월이 되어도 고집을 꺾지 않고 한사코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니 난처하기 짝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전국학생미술대회에서 특선을 하는 등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 같기는 하나 미술을 시키려며는 특별히 화실에 가서 개인지도를 받아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아 그냥 공부를 하여 일반대학에 가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으나 끝까지 우기니 부모로서도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그림을 배울 개인화실이나 찾아볼 생각으로 서울에 올라갔는데, 그때 마침 통근 버스를 타고 같이 간 박진환 교수와 이야기가 되어 그 사모님의 소개로 어떤 화실을 소개받았다. 그리하여 급하게 3개월간 개인교습을 시켜 서양화과에 시험을 쳤는데, 그날 그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다. 

합격이 되었으면 그날 신체검사를 하러 오라는 통지가 오기 마련인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이제 틀렸구나 생각되어 실망한 나머지 딸은 이불을 덮어쓰고 밥도 먹지 않은 채 누워있었는데 학교에서 신체검사 통지가 왔으니 이럭저럭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 1954년 군복무시절 첫딸, 둘째 딸과 / 어느덧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고 미술 전공을 택했다 

1974년 1학기에는 농화학과 4학년 학생에게 식량공학2를, 식품화학 및 식품영양실습을 식품공학과 3학년에게, 그리고 농산가공과 동실습을 농화학 및 농교육과 4학년 학생에게 가르쳤다. 2학기에는 영양화학을 식품공학과 및 농화학과 3학년 학생에게 그리고 농산가공학을 농가정학과 4학년에게 가르쳤다. 

1972년 1학기에는 식품공학과 3학년 및 농화학과 4학년에게 식품화학 및 농산식품가공과 동실습을, 식품공학과 4학년에게 식품영양실험을 가르쳤다. 

이밖에 유주현 교수의 청을 받아 3월 9일부터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식품공학과에 출강하여 3학년 및 4학년에 식품가공 강의를 하였다. 

4월에 식품공학과 4학년 인솔 졸업여행 차 남해를 다녀왔다. 

7월에는 필자가 지도교수로 되어 있는 그 당시 중앙공업연구소의 박계인 과장이 제출한 <청국장 메주 중의 Peptide에 관한 연구>논문을 심사하여 통과시켜 8월에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하였다. 

전에도 자동차 운전은 한 적이 있었으나 오랫동안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학과 시험도 있고 하여 다시 수원 자동차 학원에 다녀 72년 7월 22일에 시험을 쳐서 정식 1종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받았다. 

2학기에는 일반화학 및 동실험을 농학과, 식품공학과 및 원예학과 1학년 학생에게, 농산식품가공2를 식품공학과 4학년에게, 그리고 농산가공학을 농가정학과, 농학과, 농교육학과 4학년 학생에게, 또한 식품공학과 3학년 학생에게 영양화학 강의를 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의데모로 10월 17일 계염령이 선포되어 학교가 전면 휴교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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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학기에는 식품화학을 식품공학과와 농화학과, 그리고 농교육학과 3학년 일부 학생에게, 농산식품가공1을 식품공학과, 농화학과 및 농교육학과 4학년 학생에게, 일반화학 및 동실험을 농생물학과, 농가정학과 1학년 학생에게 가르쳤다. 

2학기에는 영양화학을 식품공학과 3학년 학생에게 농산식품가공2를 식품공학과, 농화학과, 농교육학과 1부 4학년 학생에게, 농산가공학 및 동실험을 농가정학과, 농교육학과 및 원예학과 4학년 학생에게, 그리고 일반화학 및 동실험을 농가정학과, 수의학과, 농교육학과 및 농생물학과 1학년 학생에게 가르쳤다. 

1974년 이후에는 1학년에 대한 일반화학 등을 담당하지 않고 주로 3, 4학년 에 대한 전공과목만은 맡게 되었는데, 그 담당과목 및 강의대면학생은 대체로 73년도와 같다. 

그러나 이해에는 여러 가지 일이 많았다. 1월 27일에 서울대학교 교수 일부가 방어진에 있는 현대조선에 초청되어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현대조선 설립에 따른 여러 가지 어려움을 듣고 실제 현대에서 처음 건조하는 배 내부를 둘러보기도 하였다. 

집안일로는 장남인 중호가 경희대학교 한의학과에 합격한 것이 2월 28일 발표되었다. 

74년 6월 18일부터 78년 11월까지 농촌진흥청 농공이용 연구소의 겸직 연구원으로서 이것저것 농산물 이용 분야의 연구를 지도하게 되었다. 

74년 6월에 가서 서울여자대학의 박성오 교수와 충북대학의 김교창 교수의 박사논문 심사를 하여 통과시켜 8월에 농학박사학위를 취득케 하였다. 

10월에 가서 학생들의 교내외 데모가 격화되어 22일부터 학교가 전면 휴강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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