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 여행 (30회)
  제5장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재직시절1

제빵 기술을 배우다 1959년 겨울이 되었다. 그 미네소타대학 생화학과는 그 당시로서는 구미인이 주식으로 하는 빵 관계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중심지로 되어 있어 전 세계에 통용하는 밀가루 품질을 평가하는 표준방법이 이곳에서 나왔고, 미국의 곡물관계협회가 그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기회에 제빵 기술을 배우기로 하였다. 지하실에 제빵 시험소가 있었는데 과장의 지시에 따라 그곳에 갔더니 기술자로서 흑인남자가 있었는데, 과장한테서 특별지시를 받아 나 혼자만을 집중적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아침부터 밀가루 몇 가지를 받아 그 사람의 지시에 따라 재료를 배합, 혼합하고 발효, 가스빼기를 하여 재우기 다음에 성벽하여 굽게 되는데 이 전 과정을 거치자면 하루 종일 걸린다. 

완성된 제품을 밀가루 종류별로 빵의 부피를 재고 기타 몇 가지 점으로 평가를 한다. 매일 매일의 결과를 보고하니 똑같은 실험을 일주일이 지나고 한 열흘 정도를 되풀이 하여도 그냥 그것을 되풀이하란다. 참다 못 하여 과장한테 가서 매일 똑같은 것을 되풀이해왔는데, 이만하면 이것은 다 배웠으니, 다른 것을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과장이 기술자인 흑인을 불러 내가 만든 빵의 결과표를 계산을 해보랬다. 그가 계산한 결과를 보더니 하는 말이 아직 기술이 밀가루의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수준까지 미치지 못하였으므로 더 계속 하란다. 내용인즉 빵을 만드는 공정에서 손으로 하는 몇 가지 공정이 있는데, 같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었을 때 그 빵의 부피의 차이가 표준편차 이하가 되어야만 제빵기술이 밀가루의 차이로써 날수 있는 부피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흑인 기술자도 일 년 중 다른 일을 하다가 겨울이 되면 전국의 각 시험장에서 보내온 밀가루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평가하는데, 밀가루가 오기 전 한달 이상을 어떤 표준 밀가루로 연습을 되풀이 하여 그 기술이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된 다음 시험할 밀가루로 시험을 하여 품질을 평가한다고 한다. 얼마나 철저한 과학적이고 안전한 방법인가.

우리들이 적당하게 빵을 만들어 품질이 어떻고 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제빵 시험으로써 미국인의 국민성을 잘 알 수 있는 과학적인 한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아마 이러한 철저하게 안전한 제빵시험법은 한국인으로서 필자가 처음 취득하였으리라 생각되고 훗날 이 방법을 연구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60년 여름이 되니 뉴욕에서 학회가 있어 거기에 갔다. 올 것을 허가해달라고 했더니 모든 경비 일절은 자기 부담 조건으로 승낙이 내렸다. 사실 이대로 가다가는 다른 선생님이 그러하듯이 미국갔다 왔다 해도 미국 수도인 워싱턴이나 뉴욕도 못가보고 돌아갈 판이다. 그리고 엽전이 언제 다시 미국에 올수 있을지 정말 기약 없는 일이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그간 꼬기꼬기 아껴서 모아두었던 돈을 이때 풀어서 이때 써보기로 하였다. 마침 미국 학생 두 명이 뉴욕가는 편이 있어서 동승하였다. 필요한 돈을 같이 내고 두 미국 학생이 교대교대로 운전하여 뉴욕에 왔다. 돈을 아껴야 하므로 주로 YMCA호텔에 유숙하였다. 

마침 열려 있는 American chemical society 학회에 2일간 참석하고 나서는 관광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구경하였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등등 다음에는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워싱턴으로 갔다. 
 
▲ 미네소타대학 학생회관 앞

호텔 측의 안내를 받아 가장 긴 코스의 관광버스에 타서 국회의사당, 링컨메모리얼, 알링톤 묘지 등을 구경하였다. 그 후 다시 뉴욕에 왔다가 이번에 보스톤을 항하였다. 보스톤은 원래 떠나올 때 예정에 없던 코스이나 이번 말고 언제 또 다시 올수 있겠는가. 이때 구경할 때로 해야지 하는 심보이다. 

보스톤에 가서 보니 건축양식이 많이 다르다. M.I.T Havard 대학의 조류 박물관, 그리고 보스톤 박물관 등을 구경하였다. 박물관의 규모가 너무나 큰 것에 놀랐고, 종국, 일본에 관한 진열 들에 비하여 한국 것은 너무나 빈약할 뿐 아니라 귀퉁이에 있는 세계지도에 보니 서울이 Keijo라고 붙어 있어 기분이 언짢아 항의 시정시킬까도 생각하였으나 단체 일행이 함께 바삐 움직이므로 그렇게도 할수  없이 지나갔다. 

에따 모르겠다. 이왕 내친 걸음이니 갈데 까지 끝까지 가보자, 보스톤에서 버팔로를 거쳐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다. 엄청난 물량에 감탄은 되지만 폭포가 캐나다 쪽을 향하여 떨어지므로 캐나다 쪽에 가야 진짜 폭포 떨어지는 장관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일행이 캐나다 쪽에 가기 위해서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 있는 다리를 건너가는데 다른 일행에 끼어 나도 그냥 갈까 하다가 아니야 이곳은 조직사회인 미국이야 하는 생각이 들어 줄에서 떨어져 그곳에 있는 세관원 같은 사람에게 신분을 밝히고 캐나다에 가서 몇 시간 구경하고 오겠다는 말을 했더니 가라는 것이었다. 

다만 그쪽에 가니 그쪽 세관원이 전화를 받았다 하면서 그 자리에서 여권에 비자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 아닌가. 역시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급행료나 기름을 칠 필요가 없이 일사천리식의 봉사가 아닌가. 

캐나다의 인상은 여러 가지가 산만한 기분이 드는 미국에 비하여 모든 것이 깨끗하고 정연한 느낌을 준다. 이리저리 5~6시간 구경을 하고 다시 미국에 건너와 학교가 있는 세인폴시를 향하여 떠났다. 그 중간에 시카고에도 들러 구경을 하였다. 

학교에 돌아오니 마침 김호식 선생님이 와 계셨는데, 내가 예정보다 늦게 오니 어느 귀신도 모르게 납치나 당해 없어지지나 않았는지 걱정을 하고 야단이 나서 있었다. 하여튼 돌아왓으니 피차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미네폴리스에 있는 메인 캠퍼스의 School of Chemisty에서 Organic Qua-litative analysis라는 실험과목이 Summer Session으로 offer되는데 이것은 Ag. Biochemistry과 학생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과목이었다. 이것은 방학 중에 이 과목만을 아침부터 밤까지 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 과목은 미지의 물질을 주고 그것이 무슨 화합물인가를 용해도와 원소분석을 하여 그 화합물명을 알아맞히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단연 두각을 나타내어 “역시 실험은 내가 낫구나.”하는 자신이 들었고, 그 후 지도교수나 다른 대학원 학생들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주었다. 

 
  미국의 1년차 연구생활 (29회)
  고국에 돌아오다 (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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