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돌아오다 (31회)
  제5장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재직시절1

1960년 2월 17일에는 돌째 딸인 순호가 출생하였다는 편지가 왔다. 

1960년 Foll Quarter에는 비타민, 식물생화학, 생화학실험법, 세미나를 들었고, 1961년 Winter Quarter에는 고급 동물영양학, 연구실험, 유기화학특론, 세미나를 들었으며 마지막 1961년 Spring Quarter에는 고국에 돌아와서 혹시나 믿을지 모를 여러 과목의 노트를 만들기 위하여 학부강의를 여러 가지 이것저것 들었다. 

유기화학, 무기화학 등등, 2년 동안 유기화학 내용을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효소 등으로 각각 나누어 세분하여 강의를 듣고 공부하다보니 이제 미국교수와 같이 교과서와 노트를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강의를 해나갈 수 있는 자신이 생겼다. 

학기 도중에 날마다 새벽 1시까지 과도서실에 남아 있으니 어느 날 마침 그 과의 직원 하나가 가까이 와서 이것저것 이야기 하다가 가족은 어떻게 하고 지금 이 시간까지 여기에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 대답이 가족은 먼 고국에 있고 단신으로 와있다고 하였더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혼사유가 안되느냐고 놀리면서 묻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어려운 미국 연구도 우리들 엽전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로서 얻어지는 행운인데, 미국사람은 이러한 것은 있을 수도 없는 무리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예 생각하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르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

1961년 8월 2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갈 때도 동해이었으나 올 때도 이은진 선생과 동행으로 하와이에 들러 섬을 일주하는 관광도 하였다. 

미국에서 돌아오니 한국에서는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서 사회 온도가 삼엄하기 짝이 없다. 고향인 경북 구미에 가서 구미초등학교 교장인 집안 형 뻘되는 김삼원 교장에게 인사를 하였더니 “너 정치해보지 않을래?”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가끔 박정희 각하를 만나는데, 옛날부터 허물없는 사이이니 격의 없이 부탁하는데, 혁명을 하고 난후 사람이 모자라니 인재를 추천해달라고 하더란다. 나는 생각하였다. 혁명에 잘못 끼어들다가는 목숨마저 부지하기 어려운 것이 옛 역사에서 보아온 것이고, 나는 이미 학문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이니 사양한다고 하여 거절하고 말았다. 
 
▲ 미국유학 중 세인트폴 고모파크에서 (1960.)

후에 알고 보니 그때가 김종필 씨가 전국의 대학에서 인재를 모으고 있는 시기였고, 만일 내가 정치를 하였다면 어깨에 힘을 주고 한 자리 해먹었을지 알 수가 없겠으나 지금쯤은 별 볼일 없이 옛 시절만을 되새기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고향 구미 보통학교부터의 친구인 신호식 군의 부친(제1대 국회의원)의 말을 들으니 옛날 박 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했을 때 돈이 없어 구미 유지셨던 필자의 선친께서 서둘러 여러 사람에게서 돈을 거두어 학자금까지 대주셨다하니 이것까지 어느 기회에 알려지면 톡톡히 덕을 보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이것이 보다 긴 인생에 무슨 의의가 있겠는가. 

종이 하나 차이로 나의 일생이 달라질 수도 있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선택은 현명했었다는 것으로 자위해보기도 한다. 
 
▲ 미국에서 귀국 시 (1961. 8.)

귀국한 1961년 2학기에는 축산학과, 임학과, 농경제학과 및 농가정학과 1학년에게 일반화학을, 농화학과 3학년에 식품화학을 강의하였다. 그리고 이리농과대학에서 부탁을 받아 격주에 한 번씩 이리에 가서 농화학과 4학연 40명에 대하여 영양화학 강의를 하였다. 

1962년 1학기에는 일반화학을 잠사학과, 농가정학과, 농생물학과 1학년에게, 그리고 농산가공을 농학과, 축산학과와 농가정학과 4학년에 강의를 하였다. 2학기에는 일반화학을 농학과, 임학과, 농공학과, 농생물학과와 농화학과 1학년에, 그리고 농산가공2와 영양화학을 농화학과 4학년에 가르쳤다. 

1962년 11월 23일에 셋째 딸인 영호가 수원 평동집에서 출생하였다. 

1963년의 1학기에는 일반화학을 농교육학과, 농가정학과, 농생물학과와 축산학과 1학년 학생에게, 식품화학과 식품영양실험을 농화학과와 농가정학과 4학년에게, 그리고 농산기공을 농학과, 축산학과 및 농가정학과 4학년 학생에게 강의하였다. 2학기에는 일반화학을 농학과 1학년 학생에게, 그리고 농산가공2와 영양화학을 농화학과와 농가정학과 4학년 학생에게 강의하였다. 

1963년 여름방학부터는 해마다 새로 실시되는 정국의 농업고등학교에서 온 농업실업교사교육에서 농산가공을 실습과 함께 가르치기 시작했다. 

1964년도의 강의도 63년과 대동소이하였다. 

1965년 1학기에는 일반화학을 임학과, 잠사학과, 축산학과와 농생물학과 1학년에게 강의하였고, 농화학과 4학년 학생에게 농산가공, 식품화학, 그리고 식품영양실험법을 가르쳤으며, 식품화학은 농가정학과 4학년 학생에게도 가르쳤다. 

또한 농산가공개론을 농화학과 농가정학과 4학년의 농생물학과 3학년 학생에게 강의하였고, 2학기에는 일반화학을 농화학과와 농학과 1학년 학생에게 가르치고 농화학과 4학년 학생에게 영양화학과 농산가공2를 강의하였다. 

이밖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식품공학과에 가서 강의를 하였다. 

1966년 1학기에는 화학을 자연과학개론2 라는 과목명으로 바뀐 것을 1학년을 여러 반으로 나눈 반 중에서 51명 되는 한반 학생에게 강의하였고, 식품화학을 농화학과 및 농가정학과 4학년 학생에게, 농산가공1을 농화학과 4학년 학생에게 그리고 농산제조학 및 오산제조학 실험을 농학과 3학년 학생에게 가르쳤다. 

2학기에는 자연과학개론2를 1학년 1개 반에게, 그리고 농화학과 4학년 학생에게 영양화학, 농산가공2 및 농산가공실습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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