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졸업 여행의 인솔 (38회)
  제6장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재직시절2

학생졸업 여행의 인솔

매년 봄이 되면 4학년 학생이 졸업여행을 가는데, 이때는 반드시 인솔교수가 따라가게 되어 있어 이것이 문제였다. 아마 교수 재직 중에 가장 구차하고 싫어하는 것이 학생인솔일 것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찌나 가난한지 아예 떠날 때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숙박비를 절약하게 마련이고, 그리고 인솔교수의 호주머니에도 관심이 크니 언제나 학교에서 약간 주는 교수 개인의 인솔여비는 아예 미리 학생에게 주기 마련이다. 현지에 가서도 자동차를 대절하는 수는 없고 시내버스에 뒤섞여 타서 덜컹거리면서 가게 마련이다. 

1977년 4월 14일 4학년을 인솔하여 동해안을 가게 되어 시외버스를 타고 강능에 가서 오죽헌을 구경한 후 경포대에 가서 민박을 하게 되었다. 밤중에 학생들이 유숙한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와 조용히 하라고 하였더니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평소에 불편한 관계에 있던 학생이 교외에 나온 결과를 이용하여 손을 좀 본 모양이었다. 

다음날 경포대에서 시외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 상당한 거리를 걸어 갔다. 도중에 비가 오는데 준비한 우산도 없으므로 비를 맞으면서 가는데 어떤 학생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구두를 벗어 끈을 매여 어깨에 둘러메기도 하였다. 이것이 거지의 행렬이 아니고 무엇이랴. 다행히 우리학교 학생이 어느 학교 학생인지 몰라보니 마음은 다소 편안했다. 

다음날 설악산을 구경하고 하룻밤 잔 다음날, 떠나야 할 텐데 학생들이, 태도가 불투명하더니 결국 하루 더 있다가 가잔다. 밖에 나와 너무 우길 수도 없고 하여 하루 더 있다가 다음날 떠났는데, 무엇인가 이상하다. 버스가 양평인가를 지나 점심시간이 지난 지 이미 오래 되나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이 아닌가. 

눈치를 보니 밑천이 바닥이 나서 점심을 굶으면서 꿀 먹은 벙어리 모양으로 허기진 배를 참으며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급한 대로 내가 빵을 사서 점심을 때우게 하여 그냥 서울까지 왔다. 

이와 같은 여행이고 보니 인솔교수로 동행하는 것은 여간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근래에 와서는 교수의 학생인솔에 대한 강제규정이 없으므로 학생여행에는 대부분 교수는 별로 따라가지 않으니 이것도 교수생활에서의 민주화의 한 혜택이리라.   
 
▲ 맥류연구소 정책연구관 발령장

윤호가 사고를 내다

여름방학도 지났다. 74년 9월 4일 날 아침 학교에 출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집에서 전화가 왔다. 부산에서 해양대학교 항해과에 다니고 있는 둘째 아들 윤호한테서 전화가 와서 아내가 받았는데 전화에서 말소리가 멀어서 중부인지 충무인가 분간이 되지 않으나 여하튼 경찰서에 있는데 어젯밤에 친구들과 어울려 한탕 먹고 나서 그들이 경찰을 때렸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우선 서울의 치안본부에 있는 질서에게 연락을 하여 도대체 전화로 잘 듣지 못하였으니 “현재 어느 경찰서에 있으며 무슨 일이 있는가, 자세히 알아보라.”이르고 곧바로 서울에 올라갔다. 

치안본부에 가서 질서를 만났더니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학생들 몇 명이 술을 마시고 여관에 들어가서 고성방가를 하니 여관주인이 경찰에 연락을 하였고, 출동한 경찰을 구타하였으니 이것은 별수 없이 퇴학대상이라는 것이었다. 여하튼 벌어진 일이 어떻게 수습할 방도를 질서에게 부탁하고 바로 부산해 기차를 탔다. 

누구든지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이때의 나의 심경이 어떨까 생각 좀 해보시라.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더니 나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해양대학을 가겠단다. 자기와 같은 반에 해군참모총장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집에 드나들면서 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아이의 성질이 남달리 활달한 면도 없지 않았고 당시 해양대학은 잘 모르기는 하나 장래성이 괜찮게 보이기도 하여 본인의 뜻대로 그 학교에 보낸 것이 잘못인가? 

옛날 1학년 초에 처음부터 ROTC로써 기합을 하도 세게 받자 보따리를 싸가지고 학기 중에 돌아와 해양대학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하여 다른 학교에 시험치겠다고 하므로 혼을 내서 되돌려 보낸 것이 잘못된 것인가! 차라리 그때 다른 대학을 시험 쳤더라면 1년이 늦더라도 이러한 일이 얼어나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해양대학은 외촐 갔다 돌아오는 시간이 조금 늦어도 징계 운운하는 곳이니 2학년 1학기를 마친 상태에서 틀림없이 퇴학은 퇴학인데 지금이 9월이니 편입을 어느 대학에 시킬 수 있을 것이며, 재수를 한다 해도 금년은 이미 늦은 것이 아닌가,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기차가 부산에 도착하자 마치 평소에 자식의 일을 부탁하여 둔 고향 후배이고, 서울대 농과대학의 동창인 동아대학교의 손현수 학생처장의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사모님이 받고 “어떻게 오셨느냐? 윤호 때문에 오셨느나? 윤호 문제는 잘 되지 않았느나?” 등 오히려 묻는 것이 아닌가! 

잘 되지 않았느냐하는 소리를 들으니 약간은 마음이 진정되나 하여튼 손 처장이 들어오면 내가 묵고 있는 여관으로 연락하라고 일러두었다. 다음날 손 처장을 만나 내용을 알아보니 사건이 나던 날 용산고등학교 출신 해양대학 학생과 진해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학생이 한데 모여 동창회 비슷한 것을 하고 여관에 가서 시끄럽게 소리 지르니 여관 주인이 연락을 하였고, 출동한 경찰관이 학생들의 신분을 물으니 해사 학생이 신분을 잘 대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관이 약간 성격적으로 다시 물으니 그 학생이 경찰관을 때린 것이 사건의 시발이었다. 상황이 불리함을 짐작한 학생들은 그 여관에서 급히 피해 나왔으나 이미 때가 늦어 비상이 걸려 달려온 여러 명의 경찰관에게 일망타진되어 경찰서에 끌려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

다음날 학교에 연락이 가게 되어 학생과 직원이 나와 화해시키려 해도 기물파손을 당한 여관 주인이 해양대학이나 해군사관학교의 교복이 비슷하여 누가 하였는지 잘 분간할 수 없고 해서 전 학생이 다 같이 했다는 것이고 구타당한 경찰도 맞은 감정이 있어 화해해주지 않으니 꼼짝없이 처벌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고, 따라서 학교에서도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손 처장도 크게 애를 썼고 서울에서도 손을 쓴 덕분에 이럭저럭 해결되어 가고 있었다. 손 처장과 함께 부산 중부경찰서에 가서 인사 겸 사례를 하여 경찰문제는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으나 해양대학에 가니 학장이 완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백배사죄할 뿐 자식의 잘못에 대해 부모로서 다른 정도가 있겠는가. 

이때의 심정을 생각해주시라. 그리고 교수되시는 분도 참고하시라. 나 자신도 젊었을 때 학생이 잘못하면 처벌해야지 강경했던 한 사람으로서 세월이 가서 나이를 먹어 여러 아이를 거느리게 되고 이런 일 저런 일 당하고 보니 그냥 처벌소리만 할 수 없게 되었다. 상대의 부모 입장이 되어 그 처지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 같은 것은 인간사에서 잘잘못을 다루는 검사, 판사도 크게 다를 바 없으리라. 경우에 따라서는 30세 내외의 약관의 젊음에 벌써 명검사, 명판사 운운하니 실제로 그 나이에 인생의 깊이를 얼마만치 터득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참! 넋두리가 삼천포로 새니 그만하고 불투명하였던 학교 처벌건도 나중에 여러분들의 힘을 입어 이럭저럭 수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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