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용을 사다 (39회)
  제6장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재직시절2

1978년이 되었다. 

강의는 대체로 전 해와 같고 그밖에 대학원 학생에게 단백질 식품학을 강의하였다. 

봄이 되어 또 학교가 시끄럽게 되더니 학생들을 비상소개 시키라 한다. 4월 16일에 학생들을 인솔하여 대전에서 동학사에 들어가 산을 넘어 갑사에 이르러 1박하고 다음날 돌아왔다,

별로 과거 등산한 일이 없어 학생과 같이 산을 넘는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나 객기를 부려 억지로 선두를 달리다시피하여 오르내리니 학생들은 내가 산을 잘 탄다고 숙덕대는 모양인데, 이것을 들으니 속은 죽을 지경이나 더욱 오기를 과시할 밖에 더 있겠는가. 

78년 7월부터 85년 5월까지 농촌진흥청맥류연구소의 겸직 연구관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품질과의 제빵시험을 하는 여러 가지 기구, 그리고 밀가루품질 평가방법을 지도하여 맥류품질의 평가법을 확립시켰다.

필자의 지도로 되어 있는 한양대학교에 있는 양구범 교수의 박사논문을 심사하여 8월에 농학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자가용을 사다

1978년 가을이 되어 우리집의 생활문명에 혁명이 일어났다. 먼 지나간 세월 점심 굶기를 밥 먹듯이 살아온 우리들 엽전으로는 꿈에도 생각 못하던 자가용차를 10월 18일 구매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도 학장차가 있고 같은 과에 있는 김재근 교수가 몸이 약간 불편하여 남보다 일찍이 차를 가지고 있을 뿐 다른 교수는 차가 없을 때이므로 내가 상당히 일찍이 차를 장만한 셈이다. 지금으로는 별것이 아닌 배기량 1300cc 포니1이나 그 당시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가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자가용을 갖다 놓은 밤에는 잠이 잘 안 올 지경이며 다음날 새벽 어둠이 걷히기 전에 몰고 서둔동을 한 바퀴 달려왔다. 꿈같은 일이다. 그 후 매주 주말에는 여러 가족을 가득 태우고 동서남북 안가본데가 별로 없을 정도로 돌아다녔다. 

우리들 엽전 신세가 지난날의 어려운 세월을 돌이켜 볼 때 자가용을 타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이것으로 지난날의 인고의 세월을 약간이나마 보상받은 기분이 들기도 하여 정말 어떤 별다른 의미로서 크게 출세한 것 같이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너도 나도 자가용을 굴리고 있으므로 교통이 크게 정체되나 그때는 도로에 차가 별로 많지 않았을 때인지라 가족을 태우고 이곳저곳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쳐다보는 것도 가세하여 천지가 내 세상같이 괜히 신바람이 났다. 

학회장을 맡다

79년 5월에 한국농화학학회장으로 피임되었다. 이 학회는 식품관계는 물론 토양비료 및 농약분야를 총 망라한 우리나라에서 농학분야로서는 처음 설립된 학술학회로서 1960년 창설된 때부터 김호식 선생님이 회장을 맡고 계시다가 선생님이 작고하신 후 1970년부터 이춘녕 선생님이 회장을 맡아오셨다. 
 
▲ 한국농화학회 회장 취임 인사 (1979. 5.)

두 분이 다 같이 이 분야의 대가이므로 회장으로서 여러 면에서 많은 회원이 존경하여마지 않았으나 한분이 오래하고 계시는 것에 대해 약간의 말이 없이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이 회장께서 회장을 필자에게 인도한다는 말을 가끔 모임 등 공개석상에서 비친 바는 있었으나 창설 20주년이 되어서야 내 놓으시므로 이 어려운 시기에 와서 내가 회장직을 맡고 보니 약간의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간 한국토양비료학회나 식물보호학회와 한국식품과학회가 새로 생기는 등으로 학회 회원 수도 상당히 줄었다. 내가 학회회장을 맡는 동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원 수를 늘려야겠고 당장 눈앞에 닥쳐온 20주년 기념행사도 성대히 치러야겠다. 걱정이 안 될 수 없다. 

나는 학회장은 요번 임기 2년만 하고 다음은 다른 사람 예를 들면 지방의 회원에게 돌린다고 선언하였다. 학회의 회원 수가 줄어든 한 가지 원인 중에 한 사람이 오랫동안 회장을 장기집권을 하다보면 어떤 학교의 대표적인 회원이 그 학교의 회원을 동원하는데 성의가 덜하여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회장직을 돌리고 나면 다소나마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또한 이것이 하나의 명예직의 감투라면 다른 사람도 돌려가면서 써야 옳ㅎ을 것 같았다. 그래서 2년 임기를 마친 다음에는 경북대학교 홍종욱 교수가 회장을 맡게 되었다. 

20주년 행사를 무사히 치루자면 지금이 필요한데 우선 찬조회원에게 대체로 예년의 약 2배되는 액수를 배정 통고하였으나 그것이 잘될지 염려가 되어 여러 선생님들과 몇몇 찬조회원 회사를 순방하였더니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어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과거에 회비가 미납된 회원에게는 그때까지 보내지 않았던 학회지를 미리 보내주는 등 여러 가지 친절을 다한 결과 미납된 회비로 납부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원 수도 전에 비하여 상당히 늘었고 20주년 행사도 성대히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원만한 학회운영은 여러 회원님들의 절대적인 협조가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특히 간사 일을 치밀하게 보아주신 유순호 교수의 헌신적인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면을 빌러 감사하는 바이다. 

O O O

1979년, 1980년 및 1981년도에 학부강의는 전해와 같으나 대학원 강의는 79년 1학기에 곡물이용학, 2학기에는 관태검사법을 강의하였고, 80년 2학기에 단백질식품학을, 81년 2학기에는 품질관리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80년부터는 식품분석 실험을 식품공학과 3학년 2학기에 하게 되었으므로 81년만은 식품분석 실험을 1학기에는 4학년에, 2학기에는 3학년에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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